2명의 작가와 1명의 음악가
E.T.A. 호프만(E.T.A. Hoffmann)의 무덤에 다녀왔다. 주말 오후 남편과 산책을 하기로 했는데, 늘상 다니던 곳 말고 새로운 장소를 찾고 싶었다. 우리는 베를린에 살았던 유명한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누가 누가 여기 살았나 살펴보던 중, E.T.A.호프만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책이라고는 <모래사나이>외 몇 편의 단편을 읽은 게 다였지만, 워낙에 이야기가 기이하고 인상적이어서 그를 내 마음 속 작가 중 한 명으로 모신 터였다.
E.T.A.호프만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하자면, 그는 1776년 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1822년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그의 본업은 판사였지만, 작가이자 음악가, 예술가로도 활동한 르네상스적 인물이었다. 그의 소설은 낭만주의 색채를 띄고 있으며, 환상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문학은 에드거 앨런 포를 거쳐 도스토예프스키, 보들레르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호프만이라는 사람이 생소할 수는 있겠지만, 아마도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은 대부분 알 것이다. 이 이야기의 원작자가 바로 호프만이다. 그는 음악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도 그의 작품들을 주제로 한다. 뿐만 아니라, 프로이트는 <Das Unheimliche(섬뜩한 낯설음)>이라는 에세이에서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를 분석하며 인간 심리의 불안을 해석한 바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에 있는 공원 묘지 “Friedhof III der Jerusalems- und Neuen Kirchengemeinde”를 찾아갔다.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다. E.T.A. 호프만의 무덤이 어디쯤 있는지 보려고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니, 그곳에 묻힌 많은 유명인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리스트가 생각보다 길었지만, 재계인사나 정계인사들이 많아서 우리가 알 만한 문화계 인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몹시 놀랍게도 거기에는 아델베르크 폰 샤미소(Adelbert von Chamisso)의 무덤도 있었다. 이 작가가 누구인지까지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혹은 <그림자를 판 사나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책의 작가이고, 내가 이 책을 무지무지하게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라는 사실만 알려주겠다. (즉,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 그 외에도 작곡가 멘델스존과 그의 가족무덤이 바로 인접해 있는 또 다른 공원묘지에 있었다.
호프만의 무덤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지나가던 한 할아버지가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이 공원묘지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묻혀있으며, 일요일 오후에는 방문객을 위한 묘지 가이드도 있다고 그 분이 얘기해 주었다. (아마도 직접 가이드를 진행 하시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일요일 오후에는 시간이 없으며, 지금은 호프만의 무덤을 찾는 중이라고 하니, 바로 우리 왼쪽을 가리키며 저쪽이라 알려준다. 감사를 표하고 호프만의 무덤 쪽으로 갔다.
이미 200년이 지난 무덤이라 그런지 무척 오래된 폐허의 느낌이 났다. 옛날의 영화라고나 할까. 묘비에는 그의 본명인 E.T.W. Hoffmann 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무덤 앞에는 <Ehren Grab(명예 무덤)>이라고 적힌 표식도 있었다. 아마도 사회에 공헌한 바가 있다고 여겨지는 예술가,과학자, 정치인 등의 무덤을 지정하여 시에서 관리하는 것 같았다. 그의 무덤 앞에 섰지만, 내가 그의 책을 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 남편에게 설명하고, 밤베르크에 갔을때 그의 작은 박물관에 들렀던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몇 장 찍는 거 외에는 별도로 할 일은 없었다. 그리하여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잠시후 자리를 떴다.
그리고 주변의 무덤들을 보면서 사이 길을 걸었다. 그 중에는 엄청나게 화려하고, 심지어 작은 교회처럼 보이는 무덤도 있었고, 희고 커다란 천사가 지키고 있는 가족묘도 보였다. (천사가 지키는 묘는 필시 부자의 묘인가 보다 했는데, 역시나 독일의 재벌 지멘스 가문의 조상들의 묘였다.)
쭉 걷다가 일종의 경계선을 넘어 이웃하는 묘지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멘델스존 가문의 묘지가 있었다. 총 6개의 봉분이 있었지만, 명예무덤의 명예는 오로지 작곡가 펠리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에게만 주어져 있었다. 슬프게도 유전병 때문에 이들 가족 대부분은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아까 그 할아버지를 여기서도 만났고, 그분이 그렇게 설명해 주셨다.)
다시 원래 묘지로 돌아와서 샤미소의 무덤을 찾았다. 그의 무덤은 좀 기이한 곳에 있었다. 우리끼리 찾으려 했으면 결코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비석에 적힌 이름이 나무에 가려져 있어 그 앞까지 가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근처에서 헤매다가 멀리 그 할아버지가 보이길래, 샤미소의 무덤이 어딨는지 여쭤보았다. 그 분은 샤미소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려주셨다. 그가 작가였을 뿐 아니라 식물학자였고, 여러 종의 새로운 식물들을 독일에 들여왔다고 했다. 그의 무덤 근처에는 의사였던 그의 아들의 무덤도 있었다.
이렇게 짧은 공원 묘지 산책을 마친 우리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여름 같지 않은 선선한 날씨였다. 호프만과 샤미소의 작품 내용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재밌었다는 느낌 외에 구체적인 내용은 희미했다. 그래서 무덤까지 찾아온 김에 책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났다. 이렇게 해서 읽을 책이 또 늘어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