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빌라
8월의 어느 주말 우리는 베를린 남서쪽에 있는 호수 반제(Wannsee)에 갔다.
전 날에는 기온이 37도까지 치솟더니 그 날은 아주 선선하고 산들바람까지 부는 쾌적한 날이었다.
너른 호수가 틈새로 보이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 우리가 도착한 곳은 “리버만 빌라(Liebermann Villa am Wannsee)”였다.
그곳은 유럽 미술사의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막스 리버만(Max Liebermann, 1847-1935)의 여름 별장이었다.
그의 이름과 몇몇 작품은 신국립미술관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사실 나는 그를 잘 알지는 못했다.
다만 이 빌라가 좋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서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다.
호수가에 있는 화가의 여름별장이라니, 상상만해도 근사한 이미지가 아닌가.
입구에 들어서니 과연 그러했다.
건물의 입구를 향해 길게 뻗은 화단이 여러 줄 놓여 있었고, 거기에는 다채로운 꽃들 그리고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화단 사이사이 통로에는 이미 단체 관광객 및 개별 관광객들로 붐벼, 이 빌라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정문 쪽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많아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겨우 몇 장을 남길 수 있었다.
빌라는 지하, 1층, 2층으로 이루어진 아담한 건물이었다.
1층엔 카페가 있었고, 2층엔 리버만의 작품들과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리버만의 작품 대부분은 이 별장의 풍경을 담은 것이었는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과 거의 똑같았다.
이 여름별장의 하이라이트는 1층 카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이었다.
테라스는 건물 뒤쪽으로 오픈되어 있었는데, 거기에서 바라보면 너른 잔디밭이 호수가 까지 쭉 펼쳐져 있었고, 그 오른쪽에는 자작나무가 거의 숲을 이루고 있는 산책로가 있었다.
잔디밭 왼쪽에는 관목으로 울타리를 친 미로같은 정원이 있었다.
잔디가 끝나는 지점부터 바다처럼 보이는 푸른 호수가 시작되고 있었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별천지가 있는데 인간세상이 아니다) 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는 풍경이었다.
카페 테라스는 만석이었다.
우선 카페 실내에서 기다리다가, 바깥쪽 자리가 나서야 겨우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뒤에 오신 할머니 두 분이 합석을 해도 되는지 물어오셨다.
오늘 같은 날은 누구라고 실내보다는 테라스에 앉고 싶은 것이었다.
막스 리버만은 자신의 여름 별장을 “호수가의 궁전”이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는 이 곳에서만 20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당대에도 명성이 높았고, 베를린 미술 아카데미 회장까지 지낸 이 분의 삶이 너무 부러웠다.
이런 그림 같은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딜 그려도 바로 예술이 되는 풍경이라니…
남편과 관목울타리 정원 벤치에 앉아, 입구에서 받은 안내 브러셔를 펼쳐보았다.
뭐라도 더 알고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그의 말년이 무척 비참했다는 것을 읽고 말았다.
나치가 정권을 장악한 이후, 유태인이었던 그는 가혹한 박해를 받았던 것이었다.
아카데미 회장직을 박탈당했고, 자신이 열성적으로 수집한 인상주의 그림들을 다 몰수 당했다.
1935년 그는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나치는 그의 부인인 마르타에게서 이 별장을 강제로 매입했다.
부인 역시 1943년 유태인 강제이송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뒤 정원은 완전히 훼손되었다.
그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읽고 나니 이 평화로운 공간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1995년 설립된 막스 리버만 협회의 노력으로 이 별장은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다.
한 장소는 현재의 모습만으로는 다 알 수 없다.
호수 위에 반짝이는 햇살, 길게 서 있는 자작나무,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행복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이 평온함만 바라본다면 그 밑에 숨은 나치 시대의 폭력을 상상하기 어렵다.
나는 한참동안 정원과 호수를 바라보았다.
이 예술가의 정원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으로 사랑받는 것은 아닌 거 같았다.
이곳은 개인의 목가적 이상이 깃든 곳인 동시에, 지난 폭력의 역사를 극복하고 예술적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현대 시민사회의 이상이 덧입혀진 곳이었다.
평온함과 폭력, 아름다움과 비참함이 공존했지만
끝내 평온함과 아름다움이 자리를 지킨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