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할 수 없는, 베냉의 공주

민속박물관에서 다시 만난 조각상

by 우주진


한번 만난 이후 계속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예술 작품에도 그런 경우가 있는데, 내게는 아프리카 베냉(Benin) 왕국의 공주 조각상이 그러했다.


그 조각상을 처음 본 것은 2018년 베를린 보데 박물관(Bode Museum) 특별전 <비교할 수 없는(Unvergleichlich)> 에서였다.

이 전시는 아프리카와 유럽의 조각을 나란히 세워 두 대륙의 예술을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된 자리였다.

작가 미상의 배냉 왕국 (현재 나이지리아) 공주의 조각상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가 도나텔로의 “탬버린을 든 푸토”와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자연스러운 포즈와 사실적인 얼굴을 한 어린아이 천사 푸토와는 달리, 공주의 조각상은 경직된 포즈와 굳은 얼굴, 부릅뜬 눈으로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에서 나는 힘을 가진 여성의 카리스마를 느꼈고, 강렬한 인상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런데 이 공주의 조각상은 어떻게 베를린에 오게 되었을까?

19세기 말 영국군은 베냉 왕국을 침공해, 수많은 유물을 약탈했고, 일부는 런던으로 보내졌으며, 또 다른 것들은 상인들에 의해 유럽 각지로 흩어졌다.

공주의 조각상도 한 영국인에 의해 판매되어 1900년에 베를린에 오게 되었다.


이후 베를린 민속박물관의 아프리카관에서 전시되다가, 민속박물관이 장소 이전 문제로 잠시 휴관하게 되면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보데 박물관의 특별전에서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공주의 조각상은 르네상스 거장 도나텔로의 조각 옆에 놓여있어도 예술적 탁월함에서 전혀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공주의 등 뒤에 하얀 페인트로 적힌 일련번호는, 이 작품이 유럽에 온 이후 오랫동안 예술품이 아닌 약탈품으로 취급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이 조각상이 고국에서는 귀한 보물이었을 텐데 유럽에 와서는 민속 유물로 전시되고, 지금은 잠시 보데 박물관에서 예술품 대접을 받지만, 언젠가 다시 민속박물관으로 돌아갈 운명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전 새롭게 개관한 훔볼트 포럼 내 민속박물관에 갈 일이 있었다.

원래는 다른 박물관에 가려고 했는데, 마침 월요일 휴관이라 별다른 생각 없이 맞은편에 있는 민속박물관에 가게 된 것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베냉 공주가 떠올랐고, 안부가 궁금해졌다.

민속박물관이 새로 문을 열기 전부터 약탈 문화재 전시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거세졌고, 이에 따라 문화재 반환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공주의 조각상은 더 이상 이곳에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주는 여전히 그 곳에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독일은 2022년, 베를린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중 500점이 넘는 베냉왕국 유물의 소유권을 나이지리아 정부에 반환했다.(현재는 20점의 유물이 우선적으로 반환되었다.)

그리고 유물 중 약 3분의 1은 우선 10년간 대여하는 것으로 전시 중이었다.


떠나기 전에 이렇게 다시 한번 보게 되니 너무나 반가우면서도, 아직 자기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공주의 모습을 보니 좀 씁쓸하고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에 보데 박물관에도 전시회가 있어 보러 갔었는데, 그 때 도나텔로의 푸토도 한 번 더 봤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건 나는 푸토보다 공주가 더 기억에 남았고 더 보고 싶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궁금하다.

유럽에 오래 살다보니 서양 예술품을 많이 접해서 르네상스의 조각상이 더 이상 새롭게 다가오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식민지 역사를 공유하는 나라의 사람으로서 아프리카의 예술에 심정적으로 더 끌렸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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