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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Jul 10. 2023

감정의 탄생 2

두려움


오프마스크 시대를 맞아, 겨울 방학을 마치고 학교와 유치원 생활에 적응한 두 딸은 차례로 고열을 동반하는 후두염에 걸렸다. 며칠 후 남편 역시 같은 증세로, 아이들 보다 더 오랫동안 몸살과 기침으로 고생을 하였다. 1학년 담임을 하면 알게 된다. 전염병이 돌 때 내 한 몸 사리는 것이 뭣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내가 없으면 요 발바리들은 우짜노. 땡땡이는 낯선 사람에게 센 척하느라 못된 말을 하고, 또 띵띵이는 지켜보는 눈길이 없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친구들에게 괜한 시비를 걸텐데. 선생님 사랑해요, 하며 매일 아침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러 오는 똥똥이는 또 어쩌나... 아니다, 너는 강사 선생님과도 첫눈에 사랑에 빠질테니...” 스물 여섯 명을 머릿 속에 되뇌어 보는 눈물 겨운 책임감으로 가족들의 간병으로 인한 고단함은 크게 두렵지 않을 정도였다.

 매일 아침 침 튀기며 오늘이 형, 누나, 오빠, 동생, 아빠, 엄마 생일이라고 자랑하는 우리 반 아이들, 부둥켜 안고 재워줘야 하는 두 딸과 함께 하는 내 몸은 결국 바이러스로부터 내 몸을 지켜 냈다. 가장 시달리는 사람은 나인 것 같은데 나만 안 아픈 아이러니. 나는 ‘매우 건강’ 체질이었던 것이다. 건강은 자신하면 안 된다고 하고, 나 역시 암이나 뇌졸중과 같은 큰 병을 생각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징조가 가득한 느낌이 온 몸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듯하다. 그러나 작은 병- 지나가는 감염병 쯤은, ‘나야 이번에도 별일 없겠지.’하고 자신하며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내가 어렸을 때에는 가족 모두가 공인하는 허약체질이었다. 입이 짧아 작고 말랐으며 만성변비에 시달렸다. 이유 없는 열로 등교 못 할 때가 잦았고, 한번은 ‘알러지 성 홍반증’이라는 (엄마가 의사에게 무엇에 대한 알러지냐고 물으니, 스트레스에 대한 알러지라 하였다.) 이상한 증상으로 붉은 반점이 가득한 다리를 살피며 몇 주간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순발력과 근력 등, 체력과 관계된 능력이 모두 수준 이하로, 달리기, 공놀이를 비롯한 모든 운동에서 희열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다 자신감의 결여와 수줍음으로 늘 주눅든 표정까지. 할머니가 오실 때면 내 뒷모습을 보며, 에구... 저래 몸이 약해서 우짜노... 하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의 허약함을 걱정하던 엄마는 아빠의 회사에서 나온 건강검진권을 어린 나를 위해 쓰게 된다. 어느 아침, 나는 엄마와 함께 학교 대신 버스정류장에 갔다. 오빠 없이 엄마와 둘 뿐, 학교도 안 가니 설레는 맘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병원에 간다고 했지만 ‘건강 검진’이니까 나를 위해 주는 좋은 것들만 가득한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아침식사를 거르고 버스를 오래 타 멀미가 밀려 왔고 그렇게 도착한 시내의 병원은 크고 사람들은 너무 바빴다.

원 안내 데스크 옆 나무 벤치에 기대어 불편한 울렁임을 가라 앉히는 동안 엄마는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 주사실에 들어가 엄마 무릎에 앉자 간호사는 내 자그마한 팔뚝에 노랗고 굵은 고무줄을 칭칭 감았다. 낯선 공간, 불안한 냄새, 고무줄의 압력으로 뻐근해진 팔 위에 기다란 주사바늘이 몇 번이나 오가고 나는 공포에 질러 자지러졌다. 마른 팔뚝에 가느다란 핏줄은 찾기가 어렵고 혈압도 낮아 채혈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각적 감각적 두려움으로 가득찬 내겐 모든 자극이 통증이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채혈을 마친 후 엄마가 의사와 몇 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나는 병원 입구의  나무 벤치에 다시 누웠다. 공포에 맞서 기력을 (더불어 피 100cc쯤도) 모두 써버린 나는 춥고 두렵고 메슥거리는 상태로 잠이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엄마는 하얗게 질린 내가 안쓰러웠는 지 먹고픈게 있는 지 물어왔지만, 난 그저 무기력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고통, 이 후 나는 바늘 공포 비슷한 것이 생겼다. 엄마의 사전 설명에 대한 불신(별거 아닌 것처럼 말했는데 죽는 줄 알았잖아), 주사를 맞기 전 의료진의 실력 대한 의심(여러번 찌르는 거 아냐), 맞고 나서 속이 뒤집히는 불편함(집까지 직립보행 할 수 있을까). 공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교내 단체 건강 검진에서 친구들과 함께 채혈을 하고 나서야 극복 되었다.(뭐야, 별로 안 아프고, 한번에 끝나고, 안 어지럽잖아?)

엄마의 사전조사와 친절한 설명, 간호사의 능숙함이나 배려, 고무줄의 압력, 검진 후 바로 혈당을 높일 만한 음료수 등. 그날 나의 감정과 통각을 바꿀 수 있었을 수많은 조각들. 채혈 자체가 가져오는 통증이 대단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공포심을 통제하는 법을 연습하게 되었다. 더이상 어린 아이가 아닌 몸과 맘으로 스스로의 긴장을 낮추기 위해 미리 알아보고 준비하고 나를 안심 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창 실기평가를 앞두고, 임용고사 면접을 준비하며, 산부인과 검진, 그리고 출산을 앞두고 긴장, 나아가 공포에 사로잡힐 때 나는 어릴 때 피검사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럼 생쥐로 변한 거인을 잡아먹은 옛 이야기 속의 고양이처럼, 공포에서 분리되어 보잘것 없어진 통증을 맞이하게 된다.

미리 준비하고 연습하고 예상하고 다독이면, 어떤 두려움과 고통은 그저 지나갈뿐, 닥쳐올 큰 시련과 통증도 맞이하고 또 보낼 용기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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