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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Sep 17. 2023

작은 것이 전부다

소진되지 않는 우리의 시간

11살이 되던 무렵, 다니던 학교에서 좀 더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간 동네의 아이들은 집 근처의 다른 학교에 다녔지만 이전 학교의 익숙함을 놓지 못해 매일 20분가량을 걸어 통학하기로 했다. 매일 아침과 오후의 햇살, 계절의 풍경, 날씨의 감각은 내 안에 살아 나를 이루고 키워냈다. 겨울 방학이 끝나 개학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오후, 새 학년을 그저 조심스레 기대할 뿐 피어나지 못한 봉우리 같은 마음으로 움츠린 채 걷다 보면 거리의 화단과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나뭇가지 끝에선 어느새 새하얀 목련 부리가 보드레한 꽃눈 껍질을 밀어내고 있었다. 하트 모양으로 벌어진 목련 눈껍질과 나뭇가지를 주워 손안에 꼭 쥔 채로 집에 도착하면 날개가 보송보송한 나비를 만들었다. 다가올 봄, 여전히 작고 약한 나의 몸과 마음이 가득 성장하길. 그렇게 눈앞의 작은 것들이 나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냈다.

운동장 모래에 섞인 조개껍데기, 흙 조각을 밀어 올리며 집을 짓는 개미 떼, 보송한 참새의 몸에서 떨어진 깃털. 작은 것들은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스스로 몸과 집을 만들고 사라진 후에도 세상의 일부가 되는 생물의 순환, 오늘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과 행위를 묵묵히 일구는 인내심, 나도 모르는 새 나로 살게 하는 내 안의 질서와 생김, 가능성, 그리고 사랑의 마음을 움트게 하는 아름다움. 가만히 바라보면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되고 그 작은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었다.

십 대를 지나 대학에 입학하니 오래된 캠퍼스의 숲은 덤으로, 나와 세상을 탐구할 수 있는 멍석이 여기저기 깔려 있었다.

호기심에 찾아간 심리상담지원센터에서는 마침 MBTI 세미나를 홍보하고 있었다.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찾아 고군분투하던 시절이라 반가운 맘으로 신청하였다. 심리검사를 마치고 상담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거울에 낀 김서림이 조금이나마 닦이는 듯했다. 나는 에너지가 내면을 향하며, 사람의 감정에 관심이 많고 외부세계를 판단적으로 바라보는 성향이구나. 다만 내가 세상을 경험할 때 숲을 보는 사람인지, 나무를 보는 사람인 지는 명확하지 않아 더욱 스스로를 살피게 되었다.

공강 시간에는 도서관을 찾아 취향대로 밥상을 차려 편식과 포식을 반복했다. 문학 작품을 읽다 세밀한 묘사나 틈을 파고드는 서술을 발견하면 두근 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행여나 놓칠까 허겁지겁 메모를 하고, 다른 작품과 작가의 생애를 파고들었다. 작고 하찮은 것에 집중하는 작가의 안목을 섭취한 후, 과제를 하고, 시험을 보고, 아르바이트를, 데이트를 하다 보면 곧 그 사소한 것들이 세상을 꿰뚫는 은유가 되고 나다운 방식으로 세상을 ‘잘’ 살게 하는 통찰력이 되어 뒤통수를 때리곤 했다. 집에 돌아올 때면, 혼자서 먼 길을 걸어 하교하던 열한 살의 초봄처럼 쓸쓸한 아름다움이 온몸을 감쌌다. 한숨 잘 자고 아침이 되면 알 수 있었다. 어젯밤 그것이 삶에 대한 위로와 응원이 되었음을. 내겐 보잘것없고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이 바로 삶이었다.

두 딸과 교실 속 아이들의 안전한 배움과 함께 성장하는 행복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일상을 잠시 떠나 있는 요즘, 보잘것없고 사소한 자신의 순간을 온전히 바치며 친구의 삶을 비추고, 또 이웃의 삶을 구해 낸 ‘모모’의 이야기가 그리워졌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모모는 신발도 없이 남루한 차림으로 허물어진 옛 극장터에서 살아가는 말 수 적은 소녀이다. 집도 가족도 없는 이 소녀는 이웃들이 빛나는 생각을 하도록, 꿈같은 이야기를 해내도록, 일터에서 돌아와 보람 속에 하루를 마무리하도록,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도록 그저 곁에 머물러 준다. 소박한 삶을 온전한 내 것으로 살게 해주는 것. 그녀는 시간 그 자체이다.

 

‘더욱 보람찬 인생을 사는 법- 시간을 아껴라!’

 

어느 날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의식을 지배하며 ‘시간은 아껴 써야만 하는 것’으로 세뇌하는 시간 도둑이 마을을 점령하고 마을 사람들은 외로움과 죄책감, 고단함 속에 병들어 간다. 누구보다 작은 것을 보고 조용히 살아가던 소녀는 마침내, 친구들의 삶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이 책은 우리의 삶에 대한 우화이며, 시간에 대한 비유이고, 현대인을 위한 작은 혁명이다. 어떤 이야기들은 어릴 때엔 당연한 교훈이었다가 어른이 되면 자꾸만 잊어, 자주 펼쳐 보게 되는 조언이 되기도 한다. 오랜 듯, 지금인 듯한 나와 우리의 이야기. 그것이 ‘모모’이다.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놀이하기에도 지쳐버린 어느 저녁,

“엄마 지금 피곤해.” 하고 아이를 밀어내며 넷플릭스를 보는 밤 시간을 기다리면 내 안의 모모가 나를 두드린다.

 

내가 하는 일은 결국, 누군가를 돌보고 미소 짓게 하는 것. 모모는 나를 다그치거나 슬프게 하지 않고 묵묵히 일으킨다. 너의 시간이 여기 있다고, 곁에 앉아 물끄러미 지친 나를 바라본다. 빛나며 흐르는 우리의 시간. 나는 그림을 그리는 아이의 곁에 가 기대어 이 ’모모‘를 펼친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질러진 거실에 엉켜 함께 책을 읽는 저녁. 그곳에 모모가 함께 있다. 작고 사소한 순간. 아름다움. 온전히 함께인 찰나 속에 우리는 영원하다.

 

너는 시간이고, 여기 우리의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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