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향집을 달라고 기도했다. 네 아이들 방 하나씩 줄 수 있도록 방은 다섯 개이길 바랐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가득찬 도서관 세 곳의 삼각지대를 달라고 했다. 물고기를 사랑하는 큰 아이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집 앞에 개천을 달라고 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부엌 쪽에 창문을 주시고 놀이터를 달라고 했다. 층간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필로티를 달라고 했다. 게다가 교회도 훨씬 집에서 가까워지니 하나님이 진짜 계신다면 하나님께도 좋은 거 아니냐고 물었다. 어린아이같이 기도했다. "이 집 주시면 믿을께요!!" 간절한 기도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해봤고, 이 집을 주시면 진짜로 진짜로 하나님 믿겠다고 서원했다.
그런 집을 기적처럼 딱 주셨다. 기적이었다. 당시 그 집이 운으로 당첨이 됐다고 하기엔 350대 1의 경쟁률이었고 그 중 필로티를 받을 확률은 극히 드물었다.
그 때 기도하고 그 집을 받고는 너무 좋았지만 잊었다. 그게 하나님이 주셨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의 탕자같은 생활은 지속되었다. 불평, 불만에 쌓인 하루하루들. 자녀들에게 폭언을 일삼고. 딸과의 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됐고.
이사 오기 몇 달 전부터 불안증에 시달렸다. 환경 변화가 두려웠다. 10년 동안 살았던 곳을 떠나기 마음과 몸이 너무나 힘들었다.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 이사를 반대하는 아이들을 끌고 새 동네에 가는 게 맞나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몸과 마음이 많이 울었다.
모든 안정된 환경을 벗어나고 이 예비하신 곳에 와서 나는 기도하지 않았다. 불안에 떨었고 아이들이 잘못 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범불안장애에 극심한 우울증, 강박증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살았던 곳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강박증에 시달렸다.
불안장애와 우울장애는 몸까지도 아프게 했다. 야간빈뇨, 두통, 이명, 도저히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가장 힘든 점은 불면이었다. 걱정과 불안에 싸여 잠을 잘 수 없으니 일상생활은 마비가 되어버렸다.
그 지경까지 가고서야 정신건강의학과를 다시 찾았다. 약을 먹어도 아무 호전이 없었다. 그래서 한약을 찾게 되었다. 양약, 한방 치료 실패 후 기도의 골방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역사하심이 있었다.
지난 1년의 아픔을 어찌 다 글로, 말로 할 수 있으리. 하지만 회복하고 있다.
남향집에서 바라보는 날마다의 태양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태양은 변함없이 동에서 서로 진다. 그러나 단 한 순간도 똑같은 모습의 날이 없다. 5시 20분에 눈을 떠서 남향집 거실에 앉아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새벽예배를 날마다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남향집의 매력에 푹 빠졌다. 동이 트는 모습을 시시각각, 석양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축복을 주셨다.
아이들은 깨서 여기, 이 동일한 곳에 앉아 예배드리는 나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찬양이 집 안에 울려퍼진다. 평안하다. 나의 평안이 생명수처럼 아이들에게도 흘러가고 있다.
평생 못 누려본 감사함, 평안함의 축복, 예배의 회복을 위해 이 집을 예비하셨다. 나에게 딱 맞는 집이다. 감사합니다. 넘치는 은혜에 감격합니다. 주님 따라가는 인생 살겠습니다. 이제는 인생이 허무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살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44년 만에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왜 운동을 하는지, 왜 첼로를 하는지, 왜 노래를 하는지, 왜 글은 남기는지, 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지, 왜 자녀를 이 땅에서 잘 양육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