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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mupet Dec 27. 2021

내가 하고 싶은 건 타인도 하고 싶은 것

뜻밖의 블루오션

'이제 좀 일찍 일어나 볼까?'

연말이 다가오면서 든 생각.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조직생활에서 떨어져 나온 후 약의 힘을 빌리지 않은 멀쩡한 상태로 새벽에 일어나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도 새벽이 있긴 있었다. 이상하게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새벽에 잠이 깼다. 의지라는 게 거의 사라진 상태였기에 눈이 떠지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게 생각보다 괜찮기도 했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이 편안하기도 했고, 어차피 금방 잠들어버릴 테니 불안할 이유도 없었다. 

동굴에서 나와 다시 세상과 섞여서 살기 시작하면서 새벽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좀 일찍 일어났겠거니 생각하며 시계를 보면 늘 10시 몇 분. 세상에는 잠이 많은 사람도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내온 지 2년째, 뜬금없이 일찍 일어나 보고 싶어졌다. 동굴 생활이 그리워진 건 아닌데 그때 경험한 새벽이 그리워졌다. 밤이 무서운 사람도 별은 좋아하듯 동굴로 다시 들어가긴 싫어도 그때 만난 새벽의 평온함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굳이 새벽에 일어나서 뭘 하지?

조깅? 겨울이라 너무 추운데.

매일 아침 나는 무얼 하더라?

아침에 하기 좋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매일 아침 아로마 인사이트 카드가 알려주는 대로 에센셜 오일의 뚜껑을 열어 향기를 맡은 걸 좋아하지! 

향기 속에서 눈을 감으면 몸으로 퍼지는 향기가 그 속에서 움직이는 마음의 경로를 알려주는 것 같아. 

이거 꽤 괜찮은 아침 리츄얼인 걸!


그래서 SNS에 프로그램을 공지했다. '미라클 모닝'에서 힌트를 얻어 '아로마 모닝'으로.

아로마세러피 자격 과정을 수료하고 민간자격증 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강사 자격이 부여된 뒤에도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지 일 년이나 되었을까, 나 같은 햇병아리에게 수업을 듣겠다고 오는 사람이 없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의기소침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괜히 올리는 거 아니야? 새벽에 하는 프로그램을 누가 신청하겠어?'

공지를 올리까 말까 망설이다 '이 좋은 걸 신청 안 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마음으로 그냥 올려버렸다. '신청자가 아무도 없으면 그냥 이대로 매일 늦게 일어나도 괜찮은 걸로, 신이 허락해준 걸로 알지 뭐!'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까지 덧붙였다. 일종의 정신승리였다. 사실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매일 10시가 넘어서 일어나던 사람이 새벽 6시 반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지, 대책 없이 사고를 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그래도 일단 업로드!


'어 이게 뭐지?'

신청자였다. 매일 새벽 6시 반, 20일간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는 신청자가 나타났다. 멀쩡한 시간(?)에 프로그램을 연다고 공지할 때는 신청자가 한 명도 없더니 말도 안 되는 시간에 프로그램을 열겠다니 신청자가 있는 거야? 이제는 좀 일찍 일어나라는 신호인가? 신기함과 어이없음이 뒤섞여 헛웃음이 나왔다. 

인사이트 카드 자격증 과정을 시작한 지 이 주째, 0명을 예상했으나 그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이 시간에 이런 프로그램을 열어주어서 고맙다"는 예상 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어! 이거 블루오션이었어?'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다른 사람도 하고 싶은 것이라는 것! 

사람마다 저마다의 취향과 욕구가 있다지만 제각각의 욕구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완전히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서도 우리는 희한하게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그러니 나처럼 새벽을 그리워하는 이가 없으리란 법이 없었던 것이다. 나처럼 새벽을 의미 있게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무언가 새롭게 결심하고 싶어지는 연말연시가 아닌가.


새벽과 다시 만나니 좋다. 

약의 힘으로 어쩌다 만나게 된 새벽이 아니라 즐거운 시간이 기다린다는 기대감으로 눈을 뜨는 새벽이라 더 좋다. 당분간은 새벽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낼 것 같다. 새벽의 매력에 퐁당 빠져버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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