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호스피스 병원에서 임종을 맞은 분들의 가족과 만났다. 남편과 사별한 다섯 분, 그리고 어머니를 보내드린 한 분이 모였다.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바란 건 단 하나였다. 이곳이 그분들에게 안전한 공간이기를! 통곡하기 좋은 장소이기를!
먼저 컬러테라피와 아로마테라피, 색채와 향기로 감정을 알아차리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최근에 사별을 경험한 분이 울음을 터뜨렸지만 다른 분들은 모두 절제된 모습이었다. 감정적으로 많이 정리가 된 느낌이었다. 다들 평온하니 울음이 터져 나온 분도 금세 감정을 추스르고 프로그램에 참여하셨다.
모든 게 너무 깔끔했다. 진행도, 반응도.
이게 아니잖아!
여전히 애를 쓰고 있잖아. 감정을 절제하려고.
컬러별로, 감정별로 블렌딩 한 에센셜 오일로 셀프 마사지하는 시간을 가지며 향기가 이들의 몸속에서 제 할 일을 해주기를 기다렸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났지만 바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라도 향기가 제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며 소감을 한 마디씩 부탁드렸다. 다행히 여기서 진짜가 시작되었다.
소중한 이가 암 선고를 받고 호스피스 병원을 추천받았을 때의 마음, 사별 이후 표현하지 못하고 삼킨 슬픔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사람이 시작하니 연쇄반응처럼 열린 마음들 사이로 눈물이 쏟아졌다.
"어디에서도 마음껏 울 수가 없었어요. 아직까지 저러나 싶은 눈빛들 속에서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자식에게도, 가족에게도, 주변에도 제가 계속 슬퍼하면 안 될 것 같았는데 이렇게 만나니 좋아요. 우리는 그 마음을 다 아니까."
가장 유쾌하고 씩씩하던 분이 울먹이며 말씀하셨다. 사별 이후 몇 달이 흘렀지만 사람들과 만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괜찮은 척하는 게 힘들어서 그냥 혼자이기를 선택한 것이다.
'나의 슬픔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생각에, 여기 모인 분들은 제 마음을 한없이 삼키고 있었다. 그게 너무 힘들면 그냥 혼자이기를 선택하고 있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슬퍼하면 어떤가. 그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호들갑인가.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대로 살아가는 걸. 아직 애도의 터널을 빠져나가지 못한 이들이 만나는 사별가족모임, 이곳에서 눈물은 보이지 않는 끈이 되어 서로를 연결해준다. 여기서는 자신이 아직 애도의 터널 안에 있다는 걸 들켜도 괜찮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 터널이 생각보다 길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소중한 이를 먼저 보내고 슬픔에 잠긴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겁이 나기도 한다. 언젠가 나도 경험하게 될 일이니. 상상하기도 싫은 일을 상상하며 주책맞게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제발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어쩌면 내가 통과해야 할 애도의 터널은 아주 길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행인 건, 그래도 괜찮다는 걸 지금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호스피스 아로마테라피를 통해, 사별가족모임을 통해 두려움이 괜찮음으로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