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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Jan 11. 2021

코로나 함구령

더블린 코로나 투병 일기#3

더블린에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치료를 위해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픈 시기가 지나가고 일상이 조금 지루해질 때쯤 이런 생각을 했다. '주변에 같은 처지(?)의 아픈 동료가 없이 혼자서 싸워내는 사람들은 정말 외롭겠다.' 나는 우리 집에서 3번째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다. 총 4명의 거주인이 사는 우리 집, 하루 차이로 모두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 아일랜드 보건 당국은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안내하길 철저한 자가격리로 동거인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다 양성 환자인데?' 하면서 초기 며칠을 빼고는 같은 공간에서 티비도 보고 밥도 먹으며 지루함을 달랬다. 각자의 몸에서 어떤 증상들이 일어나는지 공유하고 누군가 너무 아파서 힘들어할 때는 서로 챙겨주기도 했다. 이런 작은 소셜 활동이 집에 머무는 10일을 제정신으로 버티게 해 준 것 같다. 다시 한번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다. 


평소 연락을 주고받던 아이리쉬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1월에 만나자고 했던 친구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꼭 봐야 한다고 다짐했던 친구들... 외국인의 신분으로 타국에서 코로나에 걸려 고생하는 나를 안쓰럽게 여기는 친구가 많았다. 또 건강 관리를 잘하라며 신신당부하는 친구, 심심하면 언제든 전화와 문자를 하라는 다정한 친구, 빨리 나아서 한국 가기 전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친구까지. 몸이 약해져서 마음도 약해졌던 걸까? 그들의 다정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큰 힘이 되었다. 한동안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품은 내 몸둥아리가 싫었고 앞으로 어떤 후유증이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무기력하기도 했었는데, 내 주변엔 코로나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나와 관계를 이어가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한국에 있는 친오빠에게 연락을 했다. 

"나 코로나 양성이래. 한국에는 계획보다 좀 늦게 갈 것 같아."

카톡에서 느껴지는 오빠의 반응에서 알 수 있었다. 조금 많이 놀랜 눈치였다. 오빠는 주변 사람 중에 코로나 양성 환자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부모님께는 말씀을 안 드리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특히 우리 엄마는 걱정이 워낙 많은 사람이라, 내가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한 숨도 제대로 못 주무실 거라고. 나는 고민 끝에 일단은 부모님께 말씀을 안 드리기로 했다. 어차피 3주 뒤면 한국에 가니깐. 그때 멀쩡한 모습으로 지난 간 이야기처럼 이야기하면 엄마가 심적으로 받아들이기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런데 오빠는 이어서 말했다. 


"주변 사람들한테 말했어? 코로나 걸렸다고? 되도록이면 말하지 마. 여기 사람들 색안경 끼고 볼 거야. 다 나았다고 해도 네 옆에 가기도 꺼려할 거야. 은근히 피하고 뒤에서 계속 이야기할 거야. 그러니 말하지 마."


나는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랐다.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평생 감염력을 지니고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것도 아닌데.... 왜 이걸 비밀로 해야 하지? 저렇게 이야기하는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미 나는 몇몇 친한 친구들에게 근황을 알린 상태였다. 그때마다 사실 기대치 못한 리액션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직장 동료는 나를 보고 "코로나로 사람 죽어나가는 뉴스만 보다가, 혼자서 아무 조치 없이 이겨내신다니 생각보다 코로나는 이겨낼 만한 놈이구나 싶네요."라며 나를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만들었다. 또 나는 초반에 코로나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을 때 네이버 블로그 검색을 많이 했는데, 한 해외 체류자가 쓴 코로나 감염 후기 글에 달린 댓글은 이랬다. "해외에서 코로나 걸린 게 무슨 자랑이라고... 한국으로 돌아오지 말고 거기서 죽으세요!" 이 글을 보고 꽤나 충격을 받았었다.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는 치료될 수 없는 병이고, 걸리면 큰 확률로 죽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고작 몇 명의 반응이 한국인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큰 것은 사실이다. 모르겠다. 경각심을 가지고 항상 조심하는 건 좋지만 무조건 적인 두려움과 잘못된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는 건 잘못된 것이다. 일단 두려움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정을 지배해서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한다. 한국의 미디어들이 연일 쏟아내는 코로나 뉴스는 충분히 사람들로 하여금 코로나 공포를 갖게 할 만하다. 보통 뉴스는 최악의 케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니깐. 그런데 더 문제는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데 있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진리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사실 조금만 찾아보면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 




한국과 외국에서 코로나 양성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다르다니!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내가 코로나에 걸렸었다는 이유로 가까이 오지 않는다면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잘 설명해줄 자신이 있다. 애정을 바탕으로 보면 미움에 가려져 있던 진실이 보인다는 것을. 어쩌면 코로나가 이 세상을 다 휩쓸고 지나갈 때쯤 개인과 사회의 회복을 위해 한번쯤 고민해볼 만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코로나를 경험한 환자들의 심리적 사회 복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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