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지난 9월 중순, 초록별쌤이 보내준 링크를 클릭하자 ‘프라우스심리상담센터’ 지도가 펼쳐졌다. 약속 시간에 맞출 수 있어 설렘이 차올랐다. 혼자 나서는 길은 홀가분하지만 어딘가 허전해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다. 모처럼 주어진 시간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즐기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초록별(생략하겠음)쌤을 실제로 만나니 첫 대면인데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친밀감이 먼저 스며들었다. 브런치 화면 속에서 얼굴을 익혔고 댓글과 답글을 통해 소통을 해 오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쌤은 나이의 흔적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관리의 힘인지, 타고난 유전자의 덕인지 알 수 없지만.
점심을 먹기 위해 유명하다는 생선구이 집으로 향했다. 아담하고 정갈한 분위기였고, 생선 구이 냄새가 식욕을 지극해 왔다. 손님들도 꽤 많았다. 우리는 고등어구이와 제육볶음을 시켰다. 반찬이 식탁을 가득 메우고 청국장까지 합세하자, 소박하면서도 풍성한 잔칫상이 차려졌다. 격식을 차리며 조심스레 식사를 하던 중, 생선 가시가 내 이 사이에 몹시 불편한 위치에 끼고 말았다. 순간 10년 전 조기구이 가시가 목에 걸려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의사가 가시를 빼주었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손가락을 이용해 빼내고 말았다. 첫 식사자리에서 민망함과 가시의 당황스러움이 뒤섞여, 글을 쓰는 지금도 얼굴이 뜨겁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쌤이 운영하는 센터로 향했다. 건물의 절반은 남편이 치과로 쓰고, 나머지는 쌤의 공간이었다. 부부가 같은 건물에 있으면서도 일을 철저히 분리해 운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많은 소품(인형)으로 꾸며진 센터 공간은 마치 엄마 품처럼 아늑하고 포근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였다.
브런치라는 공통 관심사 덕분에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렀다. 쌤은 사전에 ‘자기소개를 해 보자’고 제안했었다. 쌤은 나에게 세 가지 심리 검사지를 건넨 뒤, 마지막에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상대방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라는 두 가지 그림이었다.
상대가 보는 나를 ‘여신’으로, 내가 보는
나는 ‘수박’으로 표현했다.
지금 그린다면 수박 대신 정수기를
택할 것 같다.
정수기의 특성이 유해물질을 걸러 내주 듯이 나는 서운함이나 화가 날 때, 곧바로 드러내지 않고 감정의 찌꺼기를 정제한 뒤 내놓는 방식을 취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방식이다. 감정을 걸러내는 데 마땅한 시간을 필요로 하고 그 시간만큼의 고통도 따르지만 나는 그렇게 살도록 설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자존감 검사, 우울증 검사지와 그림을 그렸던 것을 근거로 나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쌤이 보여주었다. 큰 틀에서 자존감은 높지만, 우울증은 시작 단계라 했다. 그 후 그림 평가는 꽤 흥미로웠다. 그림을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는 나는 그림으로 평을 할 때 살짝 긴장이 되었다. 내 우려와 달리 쌤은 그림을 잘 그렸는지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그림 속 여신의 표정에만 주목했다. 여신의 얼굴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나는 책 표지를 따라 그렸을 뿐이라고 핑계를 대며 얼버무렸다. 그렇지만 그림 속에는 내 무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쌤과 헤어지고 걷다가 불현듯 깨달음이 왔다. 그림 안에는 내가 인지하지 못한 마음이 들어 있었다. 타인들이 나에게 여신이라는 칭호를 붙여줬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톺아보면서 무릎을 탁 쳤다. 남이 보는 나는 척척 해내는 여신 같지만, 그 이면에는 늘 상흔과 고통이 따랐다. 나에 대한 부러움 보다는 여신 속 짠함이 곧 상대방이 나를 보는 모습이었다. 그림 속 여신의 표정은 내 무의식을 비춘 거울이었다.
심리상담가와의 만남은 단순한 오프라인 교류를 넘어,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고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단순한 점심과 수다가 아니라, 내 안에 마중물이 되어 보이지 않는 뿌리를 내리게 했으며, 삶을 보는 새로운 창을 하나 더 얻었다. 남들이 보는 나와 내가 느끼는 나는 다를 수 있다. 그 간극 속에서 나 자신을 이해하고 마주하는 힘이 자란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거울 속 내 모습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나를 더 온전하게 바라보게 하고, 나만의 표정을 찾아가게 한다. 이를테면 진정한 성장은 남의 눈이 아닌, 내 마음 안에서 시작된다. 스스로를 돌보고 삶을 받아들이며, 작지만 의미 있는 순간들 속에서 나만의 뿌리를 내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귀한 시간을 내어 준 초록별쌤께 감사드린다. 쌤이 미국에 다녀오면서 챙겨 온 깜짝 이벤트, 아기자기한 선물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무려 다섯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할애하고, 세세하게 시간을 배치한 진심과 배려에 내 마음을 담았다.
초록별쌤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