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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돈과 새벽 1시까지 폭풍 수다, 왜냐면요

친정언니가 있었다면 이런 느낌일까(...)마음으로 쌓은 인연의 탑

by 능수버들

지난 9월 12일 오후 다섯 시경, 카카오톡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 작가님들과의 만남이 마무리됐을 때 사돈 마님께 전화를 했다.


“저, 지금 의정부예요.”

“예, 정말요? 어쩐 일로 온 거예요?”

“사돈마님 보고 싶어서 왔지요.”

“호호 그래요. 지금 어딘대요?”

“의정부 역 쪽이에요.”

“아, 거기서 우리 집 가까워요. 가게 문 닫고 곧장 갈 테니 집으로 오세요.”


사돈댁으로 가는 길에 주유를 했다. 그 사이 사돈마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착 시간이 지났다면서 어디쯤이냐고 묻는다. 열 번도 넘게 갔던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니 사돈 내외가 정답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 가득 번진 반가움이 내 마음을 와락 덮치며 뜨거운 것이 차 올랐다.


의정부까지 무슨 일로 왔냐고 묻다가, 왜 남편이랑 같이 오지 않았느냐고 힐책 아닌 힐책을 던진다. 바깥사돈은 남편이 온다고 하면 만사를 제쳐 두고 함께할 수 있다며, 다음엔 꼭 같이 오라고 신신당부한다. 남편의 몸이 불편해진 뒤로 사돈 내외의 마음 씀씀이가 한층 깊어졌다. 자식을 나눠 가진 사이라는 건 단순한 인연이 아니라 애틋함이 깃든 든든한 울타리다.


허물없이 웃고, 농담까지... 상견례부터 더할 나위 없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상견례 자리 ⓒ jenandjoon on Unsplash



우리는 첫 대면부터 특별했다. 약속 장소에 주차하고 나오니 맞은편에, 예비 사위 가족이 보였다. 우리는 뜻하지 않게 주차장에서 준비 없는 인사를 나누고 말았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한정식집에 가는데 묘하게 편안했다. 양가가 처음 마주한 자리였는데도 서로 잘 아는 사이처럼 허물없이 웃고 농담까지 주고받았다. 상견례라는 어려운 자리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때 나는 상견례의 무게를 잘 몰랐다. 그저 아이들이 사귀니 부모도 인사하는 자리라 여겼다.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어가는 사이 본격적인 상견례의 목적이 언급되었다. 날짜야 문제 될 게 없었지만 장소가 문제였다. 의정부와 서울, 우리 동네까지 세 후보지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우리는 어디든 상관없다고 했지만, 예비 사위는 단호했다. 마치 우리 딸한테 지령을 받은 듯이 결혼식은 신부가 사는 곳에서 해야 된다고 주장하였고, 사돈은 의정부를 원했지만 아들한테 밀리고 말았다. “아들놈 키워 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라는 농담 같은 푸념 속에 애정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 어느덧 7년을 훌쩍 넘었다.


사돈은 늘 말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보여주었다. 남편이 쓰러졌을 때도 내 몸부터 걱정하며 “간병하느라 고단하지요. 몸이 너무 축이 나서 안쓰러워요”라던 눈빛에는 동정이 아닌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내며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자만이 건넬 수 있는 시선이었다. 두툼한 금일봉과 함께 1등급 한우를 대접받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그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따뜻한 정은 오늘 밥상 위에서도 스며들었다. 삼겹살 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웃음과 일상을 나눴다. 손녀 앓이를 하는 우리는 손녀가 얼마나 깜찍하고 귀여운지에 대해 끝도 없는 에피소드를 주고받았다.


아이고 어쩜 말을 그리 잘하고 그림을 빼어나게 잘 그리는지, 천재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손녀가 젊은 외삼촌이랑 고모만 좋아해서 우리가 좀 밀려서 속상하지요!

라며 사돈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 보니 친정 언니가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안온한 자리


포식을 마친 우리는 빗속에 팔짱을 끼고 집에 도착했다. 바깥사돈은 곧장 잠자리에 들었고, 사돈과 나는 거실에 나란히 누웠다. 이런저런 일상사부터 속마음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새벽 한 시가 훌쩍 넘었다. 별것 아닌 얘기에도 미소가 절로 나왔고, 마음속 깊은 무거움도 술술 흘러나왔다. 그 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안온한 자리였다.

다음 날, 우리는 사돈의 매장으로 향했다. 사돈은 매장 문을 열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목소리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섞여 있었고, 최근 옆 가게에서 겪은 에피소드가 밀물처럼 터져 나왔다. 사돈은 나눔을 좋아하는 성정이라, 옆 가게 주인에게 음식을 건네며 살갑게 지냈다. 며느리와 동갑이라는 이유로 애정도 더 갔다. 그런데 작은 말들이 꼬이고 오해가 쌓이면서 일이 커졌다.

인간의 갈등은 멀리 있는 타인보다, 가까운 이웃과 더 치열하게 일어난다. 거리는 좁고, 생활은 겹치며, 작은 불편이 큰 파문으로 번지기도 한다. 가까움은 애틋함을 낳기도 하지만, 때로는 잔인한 상처로 변한다. 사돈은 “옆 가게 주인이랑 잘 지내보고 싶었는데 요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기는 어려운 일 같다.” 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였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관계란 늘 상처와 위로를 동시에 품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사돈이 가족처럼 다가오듯, 반면에 피보다 가까운 이들이 원수가 되기도 한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것은 피가 아니라 마음이고, 그 마음이 모여 인연의 탑을 쌓는다.


우리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존재다. 서로의 삶에 스며들어 마음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버티어 내면서 살아내고 있다. 그렇게 쌓아 올린 시간은 어느새 하나의 탑이 되었다. 결코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의 탑. 그것이 나에게 사돈이라는 이름으로 든든하게 서 있다.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에 채택 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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