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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Dec 05. 2021

재회

비포 선셋이 좋은 이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시리즈'는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무릇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이성과의 낯선 도시 여행하기'라는 로맨틱 판타지를 심은 영화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는 바로 두 번째, 제시와 셀린이 다시 만나는 '비포 선셋'이다.

프랑스 여성, 셀린이 사는 파리의 작은 서점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두 사람의 재회를 암시하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다시 만나 커피 한 잔 하며 내내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 마지막 제시가 셀린의 집에 가는데 이 장면에서 다 느꼈을 것이다. 제시는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못 탔을 것이라는 것을.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래도 낭만적인 만남이 시작되는 '비포 선라이즈'를 제일 좋아하지만 난 아무리 생각해도 선셋이 더 좋다. 우연한 만남이 인연이 되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 


우연하게 만난 사람과 얘기를 하며 서로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호감을 느끼며 다음을 기약하다 다시 만나게 되는 그 순간은 소중한 경험이다. (물론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그러한 만남이 종종 있어고 현재까지도 만남을 잘 이어오고 있다.

파리에 갔을 때 집에 초대해준 민박집 사장님, 나와 같은 다락방을 쓰던 동생, 함께 개선문을 본 한국 사람들, 터키 패키지여행을 함께한 중년 부부, 제주도 애월에서 카페를 하는 젊은 부부, 일 년에 한 번 네이버 쪽지로 연락을 하는 그녀 등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이 끝이 아닌 '재회', 다시 만남을 통해 인연을 이어 가는 게 정말 좋다. 삶이 다채로워진다는 걸 느끼는 경험.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라는 건 자주 일어나지 않고 쉽게 오는 기회도 아니며 운명이란 굴레에 속하지 않으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 같다. 제시와 셀린은 운명이기에 다시 만나고 결국 쌍둥이 딸을 낳고 가끔은 행복하고 자주 싸우는 중년 부부로 영화는 끝나지만, 그게 현실이고 삶이라는 걸 알기에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마무리다.


이 시리즈를 보면 나와 다시 만나서 인연을 이어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떠오른다. 주인공들처럼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우정을 이어나가는 그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땐 그랬지, 우리가 그렇게 만났지.' 이렇게 될 줄 몰랐던 사람들과의 만남은 웃기고 신선하다. 


제시와 셀린은 9년이란 시간을 거친 후에 다시 만난다. 다행히도 내게는 아직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사람은 없다. 1년~2년의 주기를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 요즘. 


(이건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식당이나 카페, 옷 가게, 학원 등등 한 번 마음에 들면 그곳만 간다. 여러 곳을 탐험하는 것도 재밌지만 한 곳에 자주 가서 단골이 되는 게 더 좋다. 그러니까 자주, 그곳만 가서 그 사장님과의 유대감?을 가지는 게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그런 듯하다. 새로움이 주는 신선함과 특이함도 좋지만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을 더 좋아한다.)


다시 만나고 또다시 만나서 관계의 뿌리를 내리는 그 과정은 나이를 먹을수록 길어지고 기회의 횟수도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래서 '재회'라는 건 새로운 만남보다 어쩌면 더 힘들지도 모른다. 찰나의 순간, 즐거움은 이벤트지만 상대적으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5-10년의 반복되는 관계의 루틴을 만들어 가는 것.


열심히 노력해야지. 좋아하는 관계가 끝나지 않게.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다해서 지켜나가고 싶다. 




(헤더에 쓰인 사진은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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