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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Eyre Dec 19. 2020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2020년

2020년을 마무리하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편식이 있지만 여전히 을 사랑한다. '특별한 일이 없다' 핑계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내가 쓰는 글들에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나만의 정제된 감정을 담고 싶다. 좌절과 불평도 욕심에서 비롯되지만, 불평 가득한 글은 누구에게나 건강하지 못한 불량식품 같은 글이다.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고 내세우고 싶지 않아 망설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글이 쓰일까 두려웠다. 누군가에게  위로나 감동 또는 공감을 사지 못해도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이전의 글처럼 내가 만족하는 글을 쓰고 싶다. '2020년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용기 내어 다시 펜을 잡는다.



책 읽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하다


우리 인생에는 가끔 또는 빈번히 그런 일이 일어난다. 설명이 안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말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은 어려운 파도라는 위기를 직면했다. 혹자는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을 한다. 서점을 가면 코로나 시기를 겨냥한 솔깃할 만한 제목으로 출간된 책들을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기회를 보며 느리더라도 조금씩 전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누구가는 어려운 시기에 무너지고 지쳐 오랫동안 쌓아온 것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방관자 자세로 안주하며 지내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한국에도 이제 좋은 책들이 참 많다


귀국한 지 4개월이 지났다. 나도 내 인생에서 난생처음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다. 칠흑처럼 어두운 터널 끝에 무엇이 나타날지 아무것도 모른 채. 번민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시간. 그러나 문득,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가 아녔어도 느꼈을 감정이었을지 모른다.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고 바뀌지 않으니 내가 변화해야 할 문제는 아닌지 말이다.




최선과 최악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존재한다




코로나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좋지 못한 문제나 상황을 합리화시키기에 적당한 변명거리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분명 어려운 시기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에 맞춰서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아간다. 이례적으로 미슐랭 레스토랑들의 예약이 연속적으로 취소되고 서비스를 제외한 채 배달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각광받지 못했을 어떠한 직업들이 떠오르는가 하면, 새로운 직업도 생겨나고 어떤 직업은 사라져 간다. 세상은 어느 누가 예측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좋은 시간들


연말은 제과제빵업계에서 성수기라는 것은 제과제빵사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직원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고 한해에서 매출이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다. 몇 달 전부터 준비해야 하는  행사다. 코로나 단계별 수칙에 의거해 서울 기준, 제과점영업으로 등록된 업체들은 매장에서 취식이 불가능하다. SNS 통해 발 빠르게 그들은 제품을 전량 택배로 전환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어떤 곳들은 12 일정 기간 동안 매장 문을 걸어 잠갔다. 상황은 내가 발버둥 치고 노력한다고 절대 변하지 않는다.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상황에 대해 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제과점 문을 닫아도 되고  참에 직업을 바꿔도 된다. 정답은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비단 코로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한 답은  마음속에 있고 나의 문제다. 물론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대부분의 최악과 최선은 대부분 나의 어떠한 선택으로 인한 결과물이다. 선택이 때로는 현명하지 않아도 빠를수록 좋을 때가 있고, 조금 늦더라도 현명할 때가 좋을  있다. 하지만 모두 어디까지나  만족이다. 인생은 새옹지마 - 인생에 있어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어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 - 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소리에  기울여 보라. 답은  멀리 있지 않다.




면접을 통해 마주한 것들



퇴사를 하고 프랑스로 떠나기로 결심했을 , 내가 다시 한국에 들어오면 승승장구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살면서 한 가지 직업만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도 아닐뿐더러, 나보다  오랜 기간 유학을 하며 공부하고 일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매년 귀국한다. 내가 그들과 사회적 위치나 급여적 차별을 두기 원했더라면 오히려 프랑스를 가지 않고 한국에 머물렀음이 맞다. 나는 과거의  자신과 차별을 두고 싶어서 프랑스로 떠났다.  습관처럼 말하지만  나은 기술을 배우고자 간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국의 제과제빵 기술은 불과 몇십 년 전 보다 월등히 좋아졌다. 하지만 내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배운 프랑스의 제과제빵 문화를 한국에 전파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에 있다. 장인정신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지 상업의 수단으로 강의를 하고 제품을 대하고 강의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한국의 제과제빵 기능사 자격증과 프랑스의 제과제빵 CAP 자격증이 시험의 난이도를 떠나 가치적으로 매우 차이가 크다는 것은 그들이 후배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다닌 제과점 투어


기업과 제과점 54곳을 지원했고 5 면접의 결과는 전부 불합격이다. 면접이 잡히지 않은 것에 대해 내가 함부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채용했던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일단 나이와 성별, 경력이 제일 걸림돌이라 예상한다. 그리고 이것은  문제점이 된다. 한국의 디저트 매장은 오너 셰프의 성별에 상관없이 경력이 5년 미만인 20대의 여성들을 선호한다. 내가 면접  곳의 5  4곳이 그런 곳이었다. 심지어 어떤 오너 셰프는 나에게 대놓고 고객들은 여성 직원분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말하면 알만한 제과점이다. 나이와 노력에 의해 가득 매워진  이력서보다 사람 자체로 나를 봐주는 곳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찾기 힘들었다.



결코 내가 쉽게 일을 배우거나 시간에 몸을 던져둔  경력을 쌓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자랑은 아니지만 어느 누구와 빗대어도 힘들었고 어려웠으며 매우 치열한 20대를 보냈다고 자부한다. 면접을 보면 개인 제과점들은 세후 200만 원 언저리 급여를 -경력에 따라 다르나 3년 이내 경력자는 20-30만 원 추가 - 제시한다. 내가 10년 전에 제과제빵을 시작했을 때 급여와 비슷하다. 10년이 지났는데 달라진 것이 없다. 기술을 알려준다는 명목 하에 워라벨이 무시된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모습이 매우 흡사하다. "내가 일을 배울 때는 말이야" 같은 말을  일삼고, 최소한의 급여로 직원들에게 미안한 감정조차 없는 셰프들을 볼 때면 그들이 셰프의 자질이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같은 제과제빵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부끄럽고 미안하다.


불과 4년 전쯤만 해도  역시 유학을 다녀온 동료들이 직업을 바꿀 때면 "의지가 약하다"라며 혀를 찼지만, 이제 내가 그들의 상황이 되어보니 어쩌면 몇몇의 선배 제과제빵사들 또는 오너 셰프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안타깝고 슬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5번째 면접 본 회사에서 재밌는 대화를 나눠서 글로 남긴다.

면접이 끝나갈 무렵, 면접관이 마치 면접자들에게 수백 번은 물어봤을 듯한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마지막 꿈이 어떻게 되세요?" 나는 여유 있게,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면접관의 눈을 바라보고 대답했다. "우리는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나는 미래의 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살아가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 가치관과 그때의 나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약간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들, 좋은 친구, 좋은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이것이 내 마지막 꿈이에요"


그들이 원하는 답변이 아니라 황당할 수 있는 답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면접에서 내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좋다'는 것이 뭔지 추가적으로 물어봐 주길 원했지만 그들을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았다. 소모품이 아니라 내 자신의 색깔과 가치관을 존중해 줄 수 있는 곳에서 나도 그들을 존중하며 도약하고 싶은 마음이다.




현재를 통해 미래를 그리다


내가 일할 제과점 또는 회사를 선택하는 것에 있어 내 가치관은 확실하다. 그곳의 나아가야 하는 목표가 확실한지, 셰프나 사장의 가치관이 내 가치관을 포용해줄 수 있는지 중점적으로 본다. 그리고 직원들과 사장과 원만한 소통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유심히 관찰한다. 지인들은 혹 이런 따분한 이야기에 "가게 차리는 게 답이에요"라고 말한다. 그들이 상상조차 못 할 만큼 머리와 종이 위에 수천번은 내 제품을 만들어 본다.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셰프가 되는지에 있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지원과 면접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웠다. 내가 흔들리지 않을 때 나의 가게를 가지고 싶다. 오픈 매장을 통해 미리 오너 셰프를 경험해봤다.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서 실패란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나는 한 가지만큼은 더 뚜렷해졌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야하는지'. 장소나 환경을 더 이상 탓하지 않고 내면을 다스릴 수 있는 원동력, 주변의 모든 현상을 이해하려는 넓은 마음가짐. 재료는 어떤 것을 사용하고, 매장은 어디에 구하며, 제품은 몇 가지로 할지 등등의 나머지 문제는 부딪히면서 충분히 조율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20대에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기술이 좋고 사업에 탁월한 안목이 있는 사람만 훌륭하고 대단해 보였다. 사무실, 주방, 공장, 재료처, 대기업, 강의실 어디든 좋다. 올바른 생각과 맑은 정신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이 기본이 되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 미래다.



그리운 프랑스


내가 하는 모든 활동과 언행에 숨기려 해도 내 기분이 묻어 나온다. 취업을 했다거나 취업 예정인 상태에서 이 글을 썼으면 순간적으로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거만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글이 쓰였을 것이다. 반대로 몇 번이고 읽어보며 수정하는 지금 쓰는 이 글이 미래의 나에게 불평과 불만으로만 느껴지지 않도록 세심한 정성을 기울인다.




2020년의 8개월은 프랑스에 있었고, 나머지 4개월은 대부분 고향인 광주에 머물렀다. 무너지고 힘들 때마다 프랑스가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곳이 행복했다기보다 내가 한 명의 제과사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존중받았기 때문이다. 거칠고 엉성하고 한 없이 부족한 나를 확실하게 변화시켜 준 곳이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에 문득문득 그때의 사진을 보며 추억 여행을 떠난다.



프랑스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끌림



Tuileries 공원 벤치에 앉아 입 근처에 크림과 부스러기가 묻은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던 호텔 디저트, 주말이면 장 보고 오는 길에 다 먹어버린 바게트 한 개, 날씨 좋은 날 어학원 안 가고 낮 맥주 마시고 Luxembourg 공원에서 침 흘리고 잤던 낮잠, 날씨 상관없이 센강에서 피스타치오와 젤리에 마셨던 와인 병나발, 몽마르트르 언덕을 자전거 바구니에 바게트 넣고 올라가다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포기했던 순간,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처럼 밤 12시에 Pantheon 뒷골목에서 혼자 시간여행 마차 기다린 시간, 비 오는 파리가 매력적이라며 우산 안사고 2년을 넘게 지낸 시절, 매일 같이 출근했던 Place vendom, 100m 걸으면서 사진 20장씩 찍었던 파리 곳곳의 모습, 크리스마스 기간에 길거리에서 호호 불면서 마시던 Vin chaud, 불어를 몰라서 한여름 프랑스 햇살로 화상 입은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 대신 세안제 바르고 다니던 모습 등등



도시 자체가 예술이었던 프랑스 파리의 모습들


말하려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런 추억들이 있기에 문득문득 피식 웃으면서 또 힘내고 살아갈 수 있지 않나 싶다. 한국과 분명한 다른 매력의 프랑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많지는 않지만 따뜻한 인연들. 참 귀하고 또 귀하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하나씩 꺼내서 위로받고 싶은 나의 그리운 프랑스 생활.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들



의도하지 않는 멈춤의 시간으로 민낯의 나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본다. 프랑스에서 불어난 몸무게와 거듭된 구직활동의 실패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귀국 후 매일 달리기를 해서 현재 5kg 감량을 했고 전공서적을 비롯한 수십 권의 책들을 읽으며 마음을 수양하고 있다. 중국 전국 시대의 병법서에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신체와 마음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예방은 올바르고 건강한 정신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책들을 통해 타인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을 느끼면서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 상대를 알고 내가 온전히 준비되어 있을 때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같이 달리기 하며 찍어논 풍경들


구직활동을 하고, 면접관들과 대화를 하면서  나은 곳에 지원하기 위해서 나의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외국어와 학력이다. 공부한 뒤로 곧바로 사용했던 불어가 귀국과 동시에 많이 퇴화되어 가고 있었고, 언어 자격증을 프랑스에서 취득하지 않아 중기업 이상 회사를 지원할 때 입력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프랑스 학원을 등록했고 2021 3월에 프랑스어 시험을 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4년제 대학교 편입도 알아보고 있다.


벽 한면을 다 책으로 채우기, 버킷리스트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들고 능동적으로 세상과 부딪치지 못했다. 번민하고 주저하는 사이, 세상이 먼저 그러한 주제로 나에게 부딪쳤다. 변화는 다양한 저항을 동반한다. 성장하기 위해서 하지 않았던 것을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는 것이다. 그것들이 때론 불편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귀찮을 때도 있다. 비용이 발생하고 시간을 소비한다. 꾸준한 작은 변화들이 모여 나를 새롭게 만들고 또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미래의 나를 그리는 시간들이다.



 품격


나의 20대는 기쁨이나 즐거움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겠다. 분노와 서러움, 슬픔 그리고 일종의 의무감으로 점철된 막연한 노력의 시간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꿈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었다. 그저 현실에 그때그때마다 잘 적응했다. 그러던 중 삶의 존엄과, 내 가치관 쉽게 말해 일종의 꿈을 찾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품격을 찾으러 떠난 여행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제과점에 있던 르꼬르동 블루 디플롬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나에게 대부분 묻지 않았다. 대부분은 어디에서 일하는지, 직급은 무엇인지, 또는 어떤 일을 하는지에만 관심을 둔다. 문제는 무슨 일을 하는지가 아니다. 왜, 어떤 생각으로 그 일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의 물질이나, 사회 통념이나 타인의 시선, 어떤 이념이나 명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면의 나의 중요한 것을 두었고 프랑스에서 있는 동안 그것들을 보살폈다. 그것들은 작게는 꿈이라 불릴 수 있고 나의 본질적 가치를 의미한다.


어느 가을의 끝자락에서, 경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비범함을 가지고 있거나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품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타인을 존중하고 삶을 존엄하게 생각하며 , 어떤 생각으로 내가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 품성과 인격은 나에게 그런 것이고 전부다.









한 해가 끝날 때쯤이면 사람들은 인사말처럼 "다사다난했던 한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2020년이 그랬다. 인생에서 가장 다사다난했지만 반면 참으로 찬란했던 1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없어서는 안 될 한 해였다. 가지 같았던 프랑스의 시간들과 나를 돌아보며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었던 4개월의 시간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돌이켜 보면  감사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불평보다는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려고 노력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불평과 불만의 언행이 감사의 언행보다  많지는 않았는지. 작은  끝에서도 나는 만들어진다. 내년에도 건강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책과 글을 가까이하며 올바른 삶을 살고 있길 바란다.


힘들었지만 그 만큼 나도 성숙했던 2020년




안녕 2020년, 안녕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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