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되돌아 보는 2022년
프리지어 향기를 잔뜩 머금은 엘레베이터는 서울 한복판의 빌딩 숲 사이의 한 오피스텔 10층에 멈췄다. 문이 열리면 창문 너머로 서울의 풍경이 보인다. 붉은 구름이 하늘에 흩뿌려진 모습은 항상 다르고 자주 볼수 없어서 엘레베이터가 열리는 순간은 마치 무대의 장막이 열리는것과 같은 기대감을 준다. 하루의 소소한 기다림이자 지친 하루를 보상 받는다는 느낌이 이런기분 일까. 매일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타는것이 재밌고 기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엉뚱해 보이는 행동일지 모른다. 퇴근이 조금 이른날이나, 늦는날 그리고 흐리거나 비오는 날은 볼수 없기에 이런날은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높은곳에서 서울의 풍경을 보거나 사진으로 남겨둔다. 장관이 아닐수 없다. 어릴때는 높은 곳이 무서웠는데, 왜 사람들이 자꾸 높은곳으로 올라가려고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멀리서 바라보면 멈춰 있고 반복되는 일상인 것 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세상은 조금씩 때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얼마전에 자주 걷던 길에 카페가 새로 생겼고, 그곳에서 두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카페는 문을 닫았다. 이제는 무언가가 변화하는것을 의도하지 않고 알아차릴 정도의 눈썰미와 여유를 가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픈했던 매장이 문을 닫기로 결정했을때 마음은 어땠을까?' 괜히 폐업한 사장님에게 감정이입을 해본다. 별것도 아닌 누군가의 일상의 변화와 그들의 감정을 허락없이 멋대로 공유해보고 잠깐이나마 묘한 쾌락에 휩쌓였다.
누군가는 감사해서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분노와 슬픔에 눈물을 흘린다. 건물이 세워지는가 하면 어떤건물은 철거된다. 누군가는 입사를 하고 누군가는 퇴사를 한다. 누군가는 많은 돈을 벌기도 하고 누군가는 많은 돈을 잃기도 한다. 한해동안 사람을 얻기도 했고, 잃기도 했다. 흑백논리로 어떠한 상황을 볼수 없지만, 모든것이 급한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여전히 결과에만 집중된다. 그 결과물은 누군가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그 결과물이 다시 과정이 되기도 한다. 한사람의 인생의 어떤 결과물은 누군가에게 가치관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삶의 방향을 의도하지 않게 바꾸기도 한다. 2022년은 분명히 성장과 도전의 한해였다. 2022년 나의 동향과 결과물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주변사람들에게도 잔잔하게 퍼지길 바래본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위치와 적절한 무게
프랑스 유학시절을 제외하더라도 회사의 과장이라는 직급으로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는 실제로 나의 직급의 명분이 손이 빠르거나, 대단한 제품을 만들거나, 단순히 현장경력이 오래 되어서 얻어진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업무속도가 느린 친구들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조언을 해주면 "과장님은 과장님이잖아요"라고 실제로 대답하는 것을 보면 본인은 경력이 부족하니 당연히 과장인 나보다 느리다는 이야기밖에 안된다.
30살 무렵, 정확히 말하면 프랑스 가기전까지 그랬다. 내가 최고였고, 내 생각이 다 옳았다. 누구보다 내 손이 제일 빨랐고, 누구보다 열정이 넘쳤으며, 한가지의 몰두하는 집중력도 나를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그들처럼 내가 온전히 그런 이유때문에 과장이란 직급을 가질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랑스를 다녀오면서 몇년이 흘렀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셰프들이나 동료들을 만나면서 나의 경력과 직급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프랑스를 기점으로 이전에는 직급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했고, 이후에는 무엇을 더 할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직업과 직급이 꿈이 되지 않으니 조금 더 길이 열렸다.
이제는 나의 생각을 기술로 풀어내주고, 해결해주는 많은 동료들이 생겼다. 회사와 팀원들을 계속 생각하고 더 나은 방향을 제안하고, 선배로써 그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실수를 줄이는 방법을 알려주고, 문제의 해결능력을 향상 시켜주며, 그들에게 기술과 삶의 경험을 공유하며 그들의 성장을 진심으로 생각해주고 대변하는 일. 이러한 것이 나의 직급의 현위치이자 명분이다. 나는 나를 제외한 모든 회사의 구성원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위치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내가 해야하는 일을 현명하게 처리하는것들의 반복은 나를 업무적 큰 기복없이 이 곳까지 이끌었다. 책임감은 모두가 짊어질수 있는 무게도 아니고 모두가 가지고 싶다고 가질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연하지만 불편한 결정
조직 :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개체나 요소들을 모아서 체계 있는 집단을 이룸. 또는 그 집단 ~직무와 직위를 정하며, 조직은 크게 목표, 기술, 구조, 사회심리체계, 관리 체계로 구성된다.
불과 얼마전의 일이었다. 본사에서 대표님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년 상반기 베이커리 계획에 대한 주제를 잠깐 다뤘다. 구직자들은 취업난을 호소하지만, 회사는 구인난에 힘들어한다. 두 집단의 접점을 찾지 못한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계획과 목표는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이 있어야 하기에 이 부분을 넘어갈수 없었다. 회사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고 싶어하는 것은 본능적인 욕구다. 이제 학교를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을 학교들과 연계하여 채용, 기술과 업무를 알려주는 것과 또 다른 재밌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다. 단순화 시스템이다. 모든 전 제품을 각 매장에서 생산하는 매장들은 기물이나 인건비에 대한 부담이 있으니 일반적으로 규모가 커지면 공장 시스템으로 전환을 한다. 공장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아무래도 일반 매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더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젊고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제과제빵사들은 단순화 된 공장근무를 기피하는 추세고, 다른 조건을 맞춰준다고 해도 호기심이 많은 그들에게 구미가 당기지 않은 제안인 경우가 많다. 생산공정이 체계적으로 분업화 되고 단순화된 업무라면 전문적인 제과제빵사가 아니더라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파트타임으로 고용해도 되고, 연령대에도 조금 더 폭이 넓어진다. 그들의 필요한 시간에 일을 하고 돈을 벌수 있고, 회사의 입장에서는 단순화된 업무를 소화해줄 인원이 필요한 것이다.
누구나 부자나 삶의 여유 같은 비슷한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보기보다 각자들의 꿈은 소박하기도 하고 때로 예상할수 없는 것들도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확고하고 나는 그것을 존중한다. 각자가 어느 공동체에서 머무르는 일정한 기간이 존재하고, 감당할수 있는 그릇이 있다는 말이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지칭하는 말처럼 들려 개인적으로는 불편하고 좋아하지 않는다. 모두에게 기회를 주고, 모두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세상이길 내심 바란다. 모든 조직의 구성원의 근로자들의 급여가 동일하고 직급이 동일할수 없다. 모두의 꿈이 다르듯, 각자가 존재해야 할 위치가 다르다. 동화 같은 꿈을 꾸고 있어 때론 마음 아파하고 조금 느리고 여전히 만년 과장이란 직급으로 지낼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이러한 고민과 생각은 나를 흥미롭게 한다.
베이커리 업계는 악조건에 놓여 있다. 외국에서 수입되는 원재료가격의 인상과 비전문가들의 진입율 증가로 전문성 결여, 상권의 포화등이 그런 이유다. 실제로 최근 면접자들의 대부분은 이전 매장의 폐업과 급여지연등으로 이직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관여할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위치라면,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이바지하며, 모두가 상생할수 있는 도덕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비겁할수 있지만 내 회사가 아니기에 나는 최종 결정권자는 아니지만, 때로는 정확하고 논리적이고 숫자적인 것들보다 시간이 조금 걸리고 늦더라도 여러가지 시선에서 생각해볼 문제도 있다. 내가 한 회사의 대표라면 어떤 결정을 할까?
사랑 받지 못한 꽃은 시든다
사람은 인정 받고, 칭찬 받을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사랑 받기 원한다. 사람마다 조금 다를수 있겠지만, 사랑받지 못한 인간의 내면의 어떻게든 표출된다. 행동패턴이나, 대인관계, 말하는 방식이나, 업무 방식, 심하면 병으로도 이어진다. 한사람의 성향을 바뀌게도 하고 인생의 방향성을 흔들기도 하고 주변을 힘들게 하며, 건강악화로도 이어진다. 나이가 어릴수록 가정 교육이나, 학교에서 학습등을 통해 만들어가는 과정이 빠르고 확고하다고 하지만, 내 경험상 그것은 지금 순간까지도 나에게 영향이 미친다. 나이와 상관없다. 과연 이 모든 것이 사업자와 근로자의 사이에서는 존재하지 않을지 물어보고 싶다.
사장도 사랑받고 싶어한다. 직원들도 사랑받고 싶어한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소통한다고 생각하고, 상대가 이해해주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장과 직원이기 이전에 같은 사람이다. 욕구는 똑같다. 그 발판의 전제하에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이뤄나간다. 의심 받고, 상처 받고, 아픈일이 있는 제과 제빵사는 절대로 좋은 제품을 만들수 없다. 몇몇의 사람들은"프로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라며 이 모든 것을 일축시키려 한다. 그들이 말하는 프로도 사람이고, 그들이 말하는 프로도 상처받을수 있고, 아플수 있고, 칭찬받고 사랑받기 원한다. 프로이기 때문에 환경적인 변화나 외부적인 변화들을 최소화하여 극복할수 있고, 남의 상처를 보듬어 줄수 있지만, 스스로의 마음의 상처는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들중에 무덤덤한 사람들은, 극복한 것이 아니라 무뎌진 것이다.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을때, 내가 사랑 받고 있다고 느낄때, 내가 아직 해야하고 배울것이 있다고 느낄때, 방향성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이 된다면, 충분히 업무적인 성과와 회사의 발전을 도모해볼수 있다. 모든 사람은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한다. 좋은 문화와 정신들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면 좋겠다.
매력 있는 사람의 필요성
어린 아이들 중에 잘생기거나 예쁘지 않아도 하는 행동이 예쁜 아이들이 있다. 그 하는 행동들이 무엇이라고 나열할수 없지만, 우리는 그런 아이들에게 "참 매력있다"라고 한다. 사람을 만나면서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 할때 매력있다는 말을 자주 쓴다. 매력의 사전적인 정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이라고 정의된다. 잘생겼다. 일을 잘한다. 멋있다로 정의 할수 있는 그런 영역이 아니다. 그리고 매력 있는 사람의 대부분 적이 별로 없다.
다양한 사람들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그런 와중에 편견이 있으면 안되겠지만, 실수를 해도 애착이 가고, 더 잘 되길 나도 모르게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서툴러도 다수의 방향성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분위기를 잡아 이끄는 힘이 있고 공과 사를 구분할줄 알며, 그러기에 모두와도 잘 지낸다. 반면에 일은 너무 잘하는데 다른것들이 그 장점을 감출만큼 매력이 없는 사람도 존재한다.
관계에도 상극이 있다. 일종의 어떤 성격과 어떤 성격은 만나면 안되는 것들인데, 학창시절에는 내 선택이었다면, 회사생활은 내가 선택할수 없을때가 더 많다. 일을 잘하는 것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정의하는것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분명 본인의 직업의 특수적인 기능을 뛰어넘는 것이 매력이라고 볼수 있다. 좋은 교육을 하는 교육자, 빵을 잘 만드는 제빵사, 꽃과 나무를 잘 가꾸는 정원사는 그 기술로 돈을 벌어야 하는 단순한 직업이고, 당연하게 잘해야 하는 한 사람을 평가할때 가장 기본이자 기초가 되는 어느 한 영역일 뿐이다. 매력이 있는 교육자, 매력있는 제빵사, 매력있는 정원사. 무엇을 직업으로 삼을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면 '매력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그를 닮아가는 연습을 해보자. 물론 후천적인 교육보다는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향력이 있다. 매력이 있다. 선한 영향력이 있다 처럼 명사가 아닌 형용사에 필요하다. 당장 구체적이지 않아도 된다. 내 꿈은 제과제빵사였으니, 이제 나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할수 없는 것처럼. 자신이 하는일에 전문성은 경력이 쌓이거나, 직급으로 생기는것이 아니다. 이 형용사들이 있어서 스스로를 브랜딩 할수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의 영역이다. 조직에 매력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아주 큰 행운이다.
14년전 눈물 속의 약속
14년전, 회현역, 신세계 백화점 본점 지하에 있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제과점이 나의 첫 직장이었다. 모든 것이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지하 제과점 계산대 옆의 작은 문을 열면, 7명정도 일하는 공간이었다. 10평정도 되는 주방이었는데, 그 다양하고 큰 기물들이 어떻게 들어갔을지 신기할정도로 좁았다. 회현역 근처에는 남대문시장에서 일주일에 두세번은 매일 함께 일하는 형, 누나들과 저녁에 식사를 하고 퇴근했다. 뜬금 없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일을 그렇게 잘하는 직원이 아니였다. 매일같이 혼났고, 한달에 한번은 억울하고 힘들어서 눈물을 머금었다. 양쪽 팔은 전부 오븐에 데여서 빨갛게 부어있었고, 유니폼은 한겨울에도 늘 땀에 젖어 있었다. 궁금한 것들은 너무 많은데 넘처나는 업무에 체력도 정신도 지쳐 있었다. 학교에서 2년간 이론은 누구보다 완벽했다고 생각한 사회 초년생에게는 그런 자신감은 입사 후 일주일만에 산산조각 깨져버렸고, 학업과 병행하며 어렵게 얻어낸 자격증 2개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와 첫 직장에서 맞이하는 겨울은 지독하게 추웠다. 회사에서 한시간가량 떨어진 서울외곽의 1평짜리 고시원에 들어와 울면서 쪽잠을 자다가 추워서 몇번을 깼다. 집에와도 혼난 이유를 모르면 답답했고, 억울해서 미칠때도 있었다. 출퇴근길에 버스에서 항상 다짐했다. 그때는 그런 다짐조차 까마득했고, 자신감도 없었다. 내가 누군가의 상사가 되고, 선배가 된다면 그들과 공감하고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왜 그랬는지 이해할수 없지만, 그 당시에 제품에 대한 설명, 자세한 교육이나 시연은 기대할수 없었다. 스스로 이겨내야 했고, 이겨내지 못하면 회사를 떠나는 사회초년생들이 수두룩 했다. 잘못된 것에 대해 이겨내라고 할수도, 그들을 지켜낼 힘도, 위치도 아니였다. 나는 그곳에서 가장 몸값이 싼 부속품이었다. 물어보면 혼났고, 그나마 설명을 해주는 것들은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설명이었다. 내 유니폼은 항상 다 찢어져 있었고, 식육점에서 매는 앞치마를 입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 지독했던 겨울을 4번 넘기고, 나는 그 회사의 최연소 부점포장이 되었다.
두번째다. 또 다시 지금의 회사에서 과장으로 재직중이다. 그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사라졌다. 문화가 바뀌고 1세대 제과제빵사들이 이제 중년의 나이가 넘었고 그때 지금의 나 같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제과제빵사들은 이제 없겠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루하루 이직과, 새로운 고민들과 걱정 속에 지낼것이다. 내가 14년전에 다짐한 그 약속을 내 스스로 증명해냈고,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것은 내 철학이 되었고, 가치관이 되었다. 배고프고 기술에 목마른 사람들 중 누군가는 10년이 지나서 베이커리 업계의 문화를 바꾸는데 힘쓰고, 스스로 동료의 소중함을 아는 구성원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베이커리 시장의 변화
베이커리는 트랜드에 민감하다. 세상에서 없던 새로운 것보다 기존의 정통제품을 변형하고 화려하고 자극적인것들로 베이커리 시장을 선도한다. 반면 여전히 본 고장의 프랑스 제품의 가치관을 유지하며 장인정신이라는 명목하에 원칙대로 소탈하게 제품을 만드는 매장들도 있다. 유명했던 제과점들이 몇개월사이에 사라지기도 하고 신상 베이커리들은 우후죽순 생기기도 한다.
불과 10년전에는 토탈 베이커리라고 이것저것 다 파는 제과점이 많았다. 아이스크림이나 모나카, 사탕이나 캔디, 젤리등도 파는 제과점이 많았다. 그러나 점차 그런 제과점은 사라지고 있고, 회사나 오너셰프의 색깔이 확실한 매장들이 많아진다. 화장품업체와 콜라보를 하거나 유명 브랜드와 계약 협업을 하는 제과점도 있고, 프랑스처럼 제과점, 제빵점, 초코릿매장, 샐러드 매장 등으로 더 세분화 되고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조금더 전문적으로 제품을 접할수 있어 좋고, 경영자 입장에서도 전문적으로 마케팅 할수 있다. 고객들이 이제는 배고파서 제품을 찾는 시대는 끝났다. 시간과 돈을 쓰더라도 그 가치를 느끼고 싶어한다. 제품이 진열된 가구 회사를 검색해보기도 하고,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며, 서비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셰프가 누구인지 검색해보기도 하고 회사의 이념이나 슬로건을 찾아보기도 한다. 제품을 분석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공간의 가치를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스토리가 없고, 가치관이 없는 제과점은 매번 선도하지 못하고 뒤따라가다가 뒤쳐지고 결국엔 문을 닫는다. 드라마의 다음 회차가 궁금한 것처럼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고객들은 제품의 탄생 스토리가 궁금하고, 어떤 제품이 아닌,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회사에서 만들었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모든제품에는 역사가 있고 과정과 원인이 있다. 그 이야기는 프랑스에 있을때부터 내가 그려오던 베이커리 사업의 본질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렇기에 프랑스가 여전히 디저트와 제빵의 강국이고 수 많은 사람들이 제과제빵 유학길에 오르고 불어를 배우는 이유 아닐까. 세상에 없던것을 창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충분히 그것들을 조합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다. 나는 내가 서 있는 이 직업에 그 힘이 있다고 믿는다.
2022년에는 확실히 나를 찾은 한해다. 내가 무엇을 할때 가장 빛을 발하고 생동감이 넘치며, 내가 가장잘하는 것에 대해 주변으로 부터 가장 진심어린 응원과 격려를 들었던 한해이기도 하다. 회사도 작년에 비해 많은 성장을 했고, 나도 그렇다. 좋은 상황이다. 회사일과 병행하며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 3학년으로 편입한 학교도 올 한해 무탈하게 잘 마무리했다. 사람들은 항상 계획과 상상은 무궁무진하다. 연말이면 다이어리를 사거나 내년 계획을 세우며 들뜬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이뤄내는 사람은 극소수다. 다들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집은 아니지만, 1평짜리 고시원에서 서울한복판의 역세권 10층 오피스텔에 거주하기까지 14년의 시간이 걸렸다.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쓰는것에 신중해졌다. 침착하고 현명하게 맡은 일은 처리해가며 워라벨을 지키며 삶의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한다. 두달에 한번정도는 여행을 다니며 생각을 정리하고 흐트러진 나를 정돈했다. 가장 안정적일때가 가장 위험할때이다. 그리고 그 위험은 다시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순환 사이클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2022년의 나의 마지막 글이 나의 영웅담처럼 보여질지 모르겠지만, 여느글처럼 나를 되돌아보고, 나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거만해질때면, 지칠때면 여전히 예전글을 꺼내어 읽어본다. 여전히 폭풍처럼 소란스럽고 우당탕탕 2022년 이었지만, 나는 글을 쓸때 가장 나답고, 이 시간 만큼은 온전히 나의 시간임에 틀림 없다.
안녕 2022년, 안녕 2023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