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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르찌르 Dec 31. 2018

6. 폐지 줍는 노인과 밀레니얼 둘째

유튜브에 조회수가 500만건에 달하는 영상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한 명은 봤다는 이야기이다. 지난 10월 중순 삼성생명이 올린 '인생사진관' 영상은 실제 커플과 친구, 모녀가 특수 분장을 통해 미래를 경험해보는 내용이다. 출연자들은 60~70대 노인이 된 모습을 보고 "왜 이렇게 늙었어"라며 울컥하거나 "너무 속상해"라고 외치며 눈물을 터뜨린다. 사전 연출이나 대본 없이 촬영했다는 이 영상은 출연자들의 감정이 여과 없이 전해지며 보는 이들의 가슴도 먹먹하게 만든다.   


'인생사진관' 동영상


왜 출연자들은 눈물을 보였을까. 왜 우리는 이 영상을 보면서 먹먹해질까. 우리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잊고 산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젊고 건강할 때는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흔히 청년들이 생산활동을 하고 돈을 모아야 하는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든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 하고, 아기를 낳아 키워야 하니까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이에 대처하는 청년들의 방안은 간단했다. 일찌감치 포기를 선언하고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 또는 'N포세대'(N가지를 포기한 세대)로 불리며 현재를 즐기기로 했다.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다. 개인의 판단 하에 안 하는 쪽을 택할 수 있고 이런 결정을 비난하거나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삼포세대의 중심에 있는 밀레니얼 꼰대가 또다시 "미래를 준비해라", "소비습관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모두가 맞이해야 하는 미래를 지금의 20대들은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듣고 있어 불안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20대부터 소비가 늘기 시작해 40대에 가장 높아진 후, 50대부터 뚝 떨어진다고 한다. 60대에는 이보다 더 낮아진다. 50대 이후부터 소득이 줄거나 사라지는 탓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50대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노후자금을 모은다.



그런데 최근 섬찟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30대부터 급격한 소득 감소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신한은행 빅데이터센터가 최근 전국 만 20~64세 경제생활자 1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기혼 가구 중 30대 응답자의 38%가 가구소득 급감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40대는 32%였다. 30대와 40대의 10명 중 3명은 가장 활발히 소비할 시기에 소득 급감을 겪는다는 이야기이다. 소득 급감의 이유는 퇴직과 실직, 그리고 경기 침체로 인한 소득 감소가 가장 많았다. 이제 경제가 우리의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보장해주지 않고, 40대까지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평균 수명은 늘어가는데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진다. 몇몇 20대는 지금이 생애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시기일 수도 있겠다. 짧은 시간 버는 돈으로 우리는 이 긴 이후의 삶을 지탱해야 한다. '오늘만 사는' 20대들의 소비는 그래서 위험하다.   


현재 상황에서는 빠른 자각 말고 다른 대책을 기대하는 것이 어렵다. 정부가 소득 하위 70% 이하의 만 65세 이상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최대 25만원이다. 국민연금 월평균 수령액도 고작 38만원에 불과하다.


지금보다 경제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도 사그라들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021년부터 한국의 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로 인해 아태 지역에서 한국의 소매금융 성장 가능성이 가장 낮을 것으로 진단했다. 주머니가 얇아져 소비가 부진해지고, 기업은 또다시 투자와 고용을 줄이는 악순환 구조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에 인구 감소로 생산가능인구가 부담해야 하는 노인 부양 비용도 커진다.  



전국고물상협회는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노인을 150만명가량으로 추정한다. 서울에서 폐지를 주우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의 절반 가량은 월 10만원도 못 번다. 그럼에도 마땅한 생계수단이 없으니 폭염에도, 강추위에도 노인들은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다. 폐지 줍는 노인은 딴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이 든다는 것>의 저자 헨리 나우웬은 "나이 듦은 비할 데 없이 중요한 삶의 과정 중 하나이다. 이를 부정하면 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나 재발견한 이라면 누구나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풍요롭게 할 독특한 기회를 갖는다"고 말했다. 삶을 풍요롭게 할 이 기회를 밀레니얼 둘째들이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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