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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Oct 21. 2020

뷰티 회사 마케팅 이야기 (3) 시장에 제품 내놓기

문과생이 화장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1화, 2화, 벌써 3화째.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일했는지 정리도 되고 마음도 차분해지는 게 아주 좋다. 1,2화에서 각각 ‘~다’와 ‘~이에요’ 2가지 버전 말투로 브런치 글을 써봤는데 ‘~다’ 체를 쓰기로 결정. ‘~이에요’체를 쓰니까 글의 사족이 늘어나는 느낌.


 오늘 쓰고 싶은 주제는, 마케팅이라고 다 같은 마케팅은 아니라는 것. 5년의 마케팅 경력 사이에 내가 겪은 마케팅 직무는 총 3가지 종류다.

 이번 화에서는 그중 첫번째, #제품개발 직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3가지 직무를 한 화에 쓰기엔 양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총 3화에 걸쳐 각각의 직무를 소개할 계획.


 화장품 회사에선 문과생도 개발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연구소와 디자인, 포장재, 공장 등 다양한 유관부서의 도움이 필수적이고 제품 개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내 힘으로, 내 손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구나.’를 종종 느낀다. 하지만 결국 제품을 내 새끼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은 제품 개발자이며 제품에 가장 큰 애정과 공, 책임감을 온전히 짊어지는 존재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스킨케어 제품은 어떻게 개발될까? 솔직히 말하면 2가지의 방법으로 개발은 시작된다. 첫째, 담당자의 아이데이션과 팀 내부 워크샵 등을 통해 bottom-up 의사결정. 둘째,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른바 위에서 시킨 top-down 의사결정. 당연히 둘째보다 첫째 방법을 거쳐야 제품 담당의 애정과 몰입도가 더 높다.

 아주 흔한 성분으로 예를 들어보자. 요즘 탄력 케어가 시장의 대세라던데? 그런데 마침 탄력 케어에 중요한 비타민 C 성분을 활용한 크림이 우리 브랜드에 없네? 그럼 비타민 C 탄력 크림을 만들어보자! 아주 단순하지만 보통 이런 로직으로 제품 개발은 시작된다. 내부 워크샵과 보고 등을 통해 제품을 개발하기로 확정되면 연구소에 개발 의뢰서를 보낸다. 자사 기술은 무엇인지, 해당 성분을 우리 브랜드에서 활용하면 어떤 장점이 있는지, 기존 개발했던 제품들과의 차별 방향성은 무엇인지 등 연구소 관점에서 여러 피드백을 준다. ‘저는 요 크림의 제형이 좋은데 향은 이걸로 하고 싶어요. 발림성은 이렇게 촉촉하게 스며드는 것보다는 살짝 매트하게 마무리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성분도 너무 중요하죠. 한...10 FREE 로 만들어서 성분 소구해볼까요?’ 대략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주고 받으며 제품의 품평품을 ‘끊는다’ (품평은 무한으로 길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일정 기한이 되면 ‘이 정도로 품평품을 끊는다’).

 제품의 상세페이지를 보면 ‘4주 후 탄력 +0.00% 증가, 2주 후 눈가주름 -00.00%’ 등등의 수치를 볼 수 있다. 작게 각주 달린 걸 보면 00임상센타 등에서 진행한 임상 자료들이다. 이 매우 간단해보이는 몇 가지 내용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아주 많다. 하지만 스킨케어 제품이라면 임상 없이 소구할 수 있는 장점은 많지 않기에 그야말로 제품력을 검증하기 위한 아주 기본이 ‘임상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기에 (시기를 결정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 보습감 충만하고 꾸덕한 제형의 안티에징 제품을 9월에 출시할 계획으로 7-8월을 끼고 임상 실험하면 결과는...똥망되기 쉽다. 7-8월엔 어떤 크림을 발라도 유분감과 피지가 폭발할텐데 안티에이징 크림을 바른다? 설문조사 결과도 좋을 리 없다.) 어떤 피험자들을 몇 명이나 선별할지, 무슨 지표를 검증하고 실험 방식은 어떻게 할지. 임상 결과 잘 나온 몇몇 지표들은 비포 앤 애프터 사진을 구매할 수도 있기 때문에 뭘 촬영할건지 등등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제품 개발자들이 임상 진행에 많이 고달팠다. 임상을 미리 예약해놨더라도 코로나 단계 격상에 따라 일부 임상 스케줄은 기약 없이 지연됐고 피험자 모집도 쉽지 않았다. 일부 채널에 따라서 임상은 가히 필수적이다 - 예를 들어, 홈쇼핑. 세일즈 토크를 원활히 하기 위헤 임상을 해야 할뿐더러 임상 결과 자체도 굉장히 좋아야 한다. 모공 면적 줄었죠? 라고 백번 얘기해봐야, 임상 비포 앤 애프터 사진으로 모공 크기 뽝~ 줄어든 걸 한번 보여주느니만 못할 테니까. 그렇다고 결과 잘 나올 때까지 무한 임상을 할 수도 없다. 한 회당.. 돈이 장난 아니게 드니까.

 엄청난 노력을 통해 임상을 마치고 나면 이제 제형과 관련된 건 거의 마친 셈. 내가 이런 제형과 임상 등의 업무를 하고 있을 때 디자인팀에서는 제품 패키지 디자인을 잡아준다(당연히 제품 개발자와의 소통을 통해 말이다). ‘이번엔 jar 타입의 패키지 어떠세요? 그럼 이미 자사 내부 타 브랜드에서 쓴 패키지 똑같이 써볼까요? 새로운 타입의 용기를 원하세요? 새로운 패키지 개발은 다 돈인 거 아시죠? 그렇게 한다 치면 디자인은 어떻게 잡을까요? 로고가 맨 아래에 나와야 할까요? 우리 브랜드의 디자인 가이드를 적용하되 이 제품은 이게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디자인으로 가시죠...’ 대략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왔다갔다 하면서 디자인이 결정된다.

 디자인이 어느정도 정해지면 제품 패키지에 어떤 말을 쓸지 정해야 한다. 제품명 당연히 쓸 테고 전면부에 한글로? 영어로? 어떤 말을 쓸 건지, 제품 뒷면에는 어떤 말이 나와야 하는지. 집에 있는 스킨케어 제품 하나 딱 들고 보면 거의 모든 제품의 아랫부분은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용량과 재활용 방법, 제조/판매업자 등이 나와있다. 재활용 방법 표기 같은 건 나라에서 정한 법이 있는데 기존 타 제품 따라서 그대로 쓰다가 낭패보는 일이 생기면 안 된다. 가이드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제품 공통으로 들어가는 내용도 혹시나 가이드에 변동 없는지 체크하면서 작성해야 한다. 제품 패키지 원화 작성할 때 마치 학창시절 시험 시간에 OMR 틀린 거 없나 미친듯이 보던 느낌이 새록새록 들었다. 뭐 하나 잘못 들어간 말은 없는지, 이 표현은 여기 쓰는 게 좋을지. 비슷한 pdf 파일을 수십번 혼자 보면, 나중엔 그냥 제발 이게 마지막이길... 하고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원화 작업이 어느덧 마무리되면 포장재 개발이 시작되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컬러로, 모양으로, 뭐 하나의 문제 없이 (이 포장재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공장이 폐업한다거나, 이 포장재가 갑자기 법적으로 못 쓴다거나.. 등등의 ^^ 터져버리는 문제들 말이다) 잘 생산되는 건 쉽지 않다. 제품 개발하는 과정에서 단 한번도 마음을 놓아본 적이 없다. 포장재 꼼꼼하게 확인하려고 오전에 멀리 외근까지 나가면서 업체 감리를 다 다녀왔는데 오후에 갑자기 법적 문안 체크하는 팀에서 ‘포장재 문구 하나 바꿔줄 수 있어요?’ 하고 연락 온다거나,, 발주 프로세스 뭐 하나라도 놓쳐서 일정 미뤄지는 일들은 비일비재.

 제품 개발하는 팀의 바깥에서 개발자들을 볼 땐 막연히 일이 재밌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첫 제품 개발을 할 땐 제품 개발자들이 다 천재처럼 보였다. 이렇게 수많은 유관부서를 통해 다들 제품을 무사히 만든다고? 나만 어려운 거야? 너무 유치한 비유일 수 있지만, 교환학생 준비를 하면서 이런저런 서류와 등록 과정이 많을 때 이미 교환학생을 다녀온 사람들은 다 천재인가?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제품 개발자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거쳐야 할 프로세스와 조율해야 할 유관부서가 많기 때문. 동기한테 이런 고충을 얘기했을 때 동기가 팩폭을 날리더라.

 “제품 개발 힘들지. 그래서 제품개발자가 한번 잘못하면 유관부서들한테 파급력이 엄청나거든. 제품 개발자들 뒤에서 욕 먹는 경우 참 많지.”

 포장재까지 완료가 되면 공장에 생산 발주를 넣어야 하는데 이 과정도... (헥헥) 만만치 않다. 수요 계획팀과 협의해서 초도 수량을 얼마나 할지 정해야 하고 본격 공장에 생산을 요청하기 앞서 모든 사전 준비가 철저하게 완료되어야 한다. 하나의 실수라도 있으면 생산은 당연히 바로바로 밀려버리고. 생산 일정이 밀린다는 것은 제품 출시 일자가 밀린다는 것. 이 팀에 있으면서 제품 개발이 취소되거나 일정이 밀리는 케이스는 흔하게 봤다. (쉽지 않아...)


 나에게 제품 개발자 역할이란 백조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내 제품이란 걸 갖고 있어서 대단해보이고 질투도 난다. 하지만 그 제품을 만들기까지 과정은 정말 쉽지 않다. 유관부서와의 협업과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나 하나 잘났다고 할 수 있는 일 하나 없고 가끔 나는 일정 챙기는 기계 정도밖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시장에 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그거 누가 만들었어?”라고 하면 제품 개발자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 점 하나만 봐도, 제품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개발자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 수 있다.


 나는 실제로 제품 개발 업무를 오래하지 않았는데 솔직히 제품 1개 처음으로 내봤을 땐 너무너무 재미있더라. pdf 파일로 수없이 보던 렌더링 이미지가 실제 제품으로 탄생해서, 제품 패키지부터도 너무 예뻐보인다. 영업팀에서 판매가 시작되면 누군가가 내 제품을 사간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이커머스는 구매 고객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하루에 몇 개씩 팔리고 어떤 시간대엔 많이 팔린 걸 확인할 때 뿌듯하다. 물론,, 생각보다 반응이 없을 땐 한없이 울적해진다. 일희일비 안 하고자 사업 안 하고 회사 다니는 건데 이렇게 로얄티 가지고 일희일비 해야 하나 싶지만.. 오래 공을 들인 제품인 만큼 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지.

 제품을 1번이라도 개발해보면 그 이후에 내가 접하는 화장품 하나하나에 눈길이 간다. 이 제품은 어떤 요인으로 잘 되었을까, 어떤 성분을 가지고 있나, 미용법은 어떻게 정리했나 등등. 시야가 넓어지는 건 좋은 일이다. 그리고 문과생인 내가 어떤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솔직히 내가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 전자기기나 자동차, 가전 등을 만드는 것보다는 화장품 만드는 게 더 쉽고 재미있을? 것 같다 (나의 지극히 주관적 생각)


 다음 화엔 내가 경험했던 또다른 마케팅 직무를 적어봐야지. 아마 1화에서 살짝 적었던 것처럼 커뮤니케이션 직무 관련 4화 글을 쓰지 않을까.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이렇게 쓰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5년간 왜 브런치에 글을 안 썼지?

 앞으로는 그날 그날 겪은 일들도 생동감 있게 기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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