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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Sep 17. 2022

‘그냥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는 생각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드나 보다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이라는 소설을 읽으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모와 할아버지는 함께 산 세월보다 떨어져 산 세월이 훨씬 길었다. 두 사람의 생활은 많이 달랐다. 할아버지는 술이 밥이고 고기가 반찬이었다. 이모는 밥은 밥이고 고기는 특별한 날에나 먹었다. (…) 할아버지는 걱정이 많았고 이모는 느긋했다. 할아버지는 ‘늘 이렇다’는 말을, 이모는 ‘지나간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 두 말은 결국 같은 말이었을까?


 책을 읽거나 드라마, 영화를 볼 때 각자마다 꽂히는 장면이 다르다. 내가 요즘 평소에 자주 생각해왔거나 생각하는 중이었던 주제가 있는데 그걸 남의 입을 통해 듣게 됐을 때 우린 그 장면에 꽂힌다.

 ‘구의 증명’ 책에 나오는 저 구절은 굉장히 스치듯 나오는 대목인데 요즘 내 생각과 너무 비슷해서, 읽자마자 꽂혀버렸다. 할아버지의 ‘늘 이렇다’와 이모의 ‘지나간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으니까. 체념과 수용 그 사이. 분명 100%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내게 일어난 일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건 온전히 내 몫이라는 거. 아니, 받아들여야만 하는 게 내게 주어진 과제라는 점.


 요즘 부쩍 자주 하는 생각이 있다.

 ‘이건 다 사주팔자에 적힌 일이었겠지.’


 우리 고모는 결혼하자마자 불행했다. 고모도, 고모부도 각자 잘못한 점은 없다. 다만 고모부는 ‘내가 이 집안 살림을 다 책임질 수 있으니 아내는 자식 교육과 내조에만 신경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고모는 ‘나 자신의 자기 계발이 너무 중요하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가정을 유지하지 않았으면’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둘 다 각자의 이유에서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고 이 두 가지 다른 마음은 서로 만날 길이 없었기에 결혼은 언제나 위태로웠다.

 하지만 다행히(?) 고모부는 돈을 굉장히 잘 벌었고 고모 역시 경단녀로서 구한 직업을 통해 돈을 많이 벌었다. 덕분에 두 사람이 꾸린 가정은 윤택했고 고모가 많이 버는 월급은 본인의 화장품, 옷 또는 고모의 엄마(할머니)를 위해 충분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다. 그런 고모를 보고 생각했다, <나와 내 주위 사람이 돈도 많고 여유 있는 삶을 살지만 정작 본인의 행복만은 빠져있는 삶> 이렇게 사주팔자에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을까.


 매일 퇴근길에 그날 일과를 복습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뭐만 하면 안 될 일들 투성이인 하루라고 적혀 있던 날일까?’

 ‘사주에 오늘 하루는 사람으로 인해 힘든 날이다, 이런 게 있지 않았을까?’

 ‘커리어적인 성장을 위해 내게 고난이 주어지는 시기이지 않을까?’


 물론 매일매일 위와 같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건 아니고.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났을 때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일들에 대한 고찰은 대부분 짧은 시간 안에 마무리된다.


 자꾸 무언가를 사주팔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스스로 노력하고 싶지 않고 내 인생에 수동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 내가 오늘 겪은 고난에 대해, 내 탓이 아무것도 없고 그냥 수동적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회피하고 싶은 것도 절대 아니다.

 단지 ‘일어났어야만 했을 일’ 또는 ‘내가 아무리 피하려 했어도 일어났을 일’이니까 그 일이 만약 부정적인 상황이라면 이제는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뭐랄까, 원인과 문제에 큰 힘을 쏟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의 방향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겠다는.. 그런 태도랄까?

 그리고 분명히 그 태도는 나이 듦 에서 나오는 것 같다. ‘구의 증명’ 소설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이모’도 결국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늘 이렇고(=어쩔 수 없이 벌어질 일이었고) 지나간다(=내가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또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다행히 요즘은 ‘내가 받은 사랑과 안정감을 확인하게 되는 시기  같다.  그렇게 사주팔자에 쓰인 것만 같다. 오늘 저녁 엄마와 데이트를 하면서, 어린 시절의 ,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엄마.. 등등 여러 얘길 나누며 기분이 좋았다. 어차피 사주팔자에 쓰인  오늘의 ‘하루 내가 100% 통제하기 어렵다면, 이미 벌어진 기분 좋은 일에 대해선 좋은 에너지를 200% 흡수하려고 노력하고 이미 벌어진  좋은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좋게 바꿔나갈지 고민하면서  에너지를 쓰면 좋겠다. 이미 벌어진  자체에 대해 통제하려 애쓰지 않고 벌어진 일들을 조금씩 바꿔나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전체 도합으로 봤을  훨씬 긍정적인 인생으로 마무리할  있을지 않을까?


 물론 그럴 수도, 안 그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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