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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핀젤리 Aug 16. 2018

입이 뻥 뚫려버린 여자

입이 뻥 뚫려버린 여자



 입 안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버린 여자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구멍이 아니고, 움푹 패인 것에 가까웠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고 난 뒤의 커다랗고 텅 빈 분화구라고 생각하면 딱 맞을 것 같았다. 여자는 가끔 별로 대단치도 않은 듯, 사실은 난 이런 걸 가지고 있다는 정도로 가볍게 말할 뿐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뼛성이 튀어나오듯 안 아프냐고 따지듯 물었다. 여자는 평이한 어조로 아물고 있어서 별로 아프지는 않다고 대답하곤 했다.


 화제는 보통 아프지 않다니 다행이라는 정도로 마무리 된다. 스스로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입 안에 그렇게 큰 상처가 벌어져 있는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실은 말을 할 때 발음이 조금 불편했지만 그 이는 내색하지 않고 잘 숨겼다. 여자가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아마 사람들도 괜찮은 걸 거라 여기는 듯 했다. 그 보다도 본인 자체가 별로 주변에 걱정을 끼치는 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고 나면 그 여자는 어쩐지 조금 서운해지는 기분일 때가 있었다. 정말 아픈 것도 아닌데 왜 그런지는 몰랐다. 무슨 그럴싸한 핑계를 적당히 둘러대어 집에 가고 싶어졌다.


 몇 번은 정말 그렇게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기도 했다. 어쩐지 사람들은 별로 말리는 것 같지 않았다. 핑계가 너무 좋았나, 내 표정이 어땠던가, 뭐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기분은 더 수렁으로 기어 들어갔다.

 이유를 모른 채 나쁜 기분이 들 때는 걷는다. 걸음과 함께 멈추지 않는 미친 생각의 고삐에 끌려 다니다 보면 좀 잊게 된다. 조금 다리가 아프다 싶을 때가 되면 다시 무던하고 좀 편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머릿속은 아직도 생생한 그 날에 다다를 때가 많았다.



 그 날도 어김없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려던 차였다. 그 무엇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낮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엇을 했을지는 뻔한 그런 날이었다. 나른한 육항상 여자를 위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때, 목 언저리에 무언가 낯선 것이 느껴졌다. 손은 성실하고 신속하게 생경한 존재를 감지해냈다.


 이게 뭐지, 무슨 병이라도 생겼나 하는 두려움이 와락 끼쳐왔다. 하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살짝 어루만져보니 무슨 혹 같은 게 아주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언제 생긴 거지? 이렇게 커질 동안 왜 몰랐지? 점차 꾹꾹 눌러봐도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부풀어 오른 팽만감 같은 것만 욱신거렸다. 아프지 않으면 괜찮은 걸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여자는 혹을 이렇게 저렇게 어루만져 보고 있었다. 안 없어지면 어쩌나, 수술을 해야 되는 건가, 약을 먹어야 하나, 아 무슨 죽을 병이면 어떡하지, 잡념들이 무성한 잡초처럼 삽시간에 온 머리를 뒤흔들었다.


 그런데 어라, 혹이 방금 조금 움직인 것 같았다. 잘 못 봤나? 하지만 정말 조금 움직인 것 같은데. 혹 아래쪽을 더듬거리며 지그시 눌러보았다. 이번에는 분명히 보았다. 목에서 턱 쪽으로 분명히 움직였다. 여자는 놀랐지만 자꾸 자꾸 눌러서 이 낯설고 팽팽한 것을 밀어 올렸다. 이제 턱 쪽으로 완전히 올라왔다 싶을 때쯤 여자는 극심한 통증에 주저 앉고 말았다. 아래턱 뼈부터 혀뿌리까지 온통 팽팽하고 시 아픔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너무 아파서 여자는 악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턱을 감싸 쥐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왜 이러지? 팽만감은 이내 더욱 심해지더니 이제 망치 같은 걸로 그냥 턱을 깨부수고 그만 죽고 싶었다. 여자는 악머구리처럼 혓바닥 밑에 손을 집어넣어 입 안을 마구 잡아 뜯었다. 발을 막 허공에 내지르며 온 몸이 나동그라졌다.


 펑, 하는 소리가 났다. 정말 그런 소리가 났다고 했다. 순간 정말 턱뼈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온 정신과 집과 가구와 액자와 거울과 그런 게 다 잠잠해졌다. 차분하게 총 천연색으로 멈춘 거울에 대고 여자는 입을 크게 벌려 보였다. 피 한 방울 없이 건조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아프지는 않았다. 거울에서 얼굴을 떼지 못하고 연신 입 안을 이리저리 들여다 보았다.



 그 때부터였다. 입 속에 그렇게 큰 분화구가 생긴 건, 입이 뻥 뚫려버린 여자가 생긴 건. 집 나온 강아지처럼 한참을 걷다 지쳐 집에 들어오면 그 여자는 거울 앞에 퍼더버리고 앉아 몇 시간이고 입 안을 들어다 보았다. 아마 일상이라도 된 듯, 그러고 나면 잠이 잘 왔다. 여자는 씻지도 않고 입을 두어 번 쩝쩝 다시더니 깊은 잠에 푹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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