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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의 시대, 경제 주간지를 구독했다.

인터넷에서 다시 아날로그로

by 젊은 느티나무

짧았던 약 9개월 간의 백수 생활(이자 취업준비생)이 끝나고 나는 작년 말, 직장인이 되었다.


직장인이 되면, 재정 문제나 커리어가 해결되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요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난 휴식기는 나 스스로에게 모처럼 집중할 수 있고 삶이 평온했던 시기였다. 외부에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니 나를 방해할 사람도 없었고, 내 식대로 내 속도대로 삶을 걸어 나가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었다. 지금은 타인의 방식대로, 타인의 속도대로 삶을 산다. 지금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나를 다시 다잡아야겠다.


일단, 집 구조를 조금 바꿨다.

홈트레이닝을 한다고 공간을 무리하게 비워두느라 집의 가구 배치가 엉망이었는데 효율적이면서, 이 집에서 4년 사는 동안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바꿨다. 삶을 나아지게 하는 거랑 가구 배치랑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다. 운동하기, 독서하기, 건강한 음식 먹기 외에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우리가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생각을 하는 가장 많이 머무는 이 공간이 쾌적할수록 사소하게 부딪히고 불편해하는 것들이 사라질수록 우리의 마음과 뇌가 쾌적해진다.


근처 도서관엘 갔다. 도서관에 간 이유는 연속발행물을 보기 위함인데, 직장에서 남의 돈 벌어먹기가 녹록지 않다는 걸 여실히 깨닫는 중이라,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기 위해 경제 주간지를 구독하려던 참이다. 예전에는 무조건 저금, 적금만 했다. 경제에 무지했다. 그런데 모은 돈을 단순히 차곡차곡 쌓아두는 게 아니라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요새 많이 느낀다. 물론 내 성격상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투자는 못하겠지만. 어떤 게 나와 맞을지 비교하기 위해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는 다양한 경제 주간지가 있진 않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후보 중에는 이코노미스트, 매경 이코노미, 한경 비즈니스가 있었다. 요새 정치가 워낙 불구덩이라 시사주간지를 구독할까도 생각했는데, 내 경제 상황이 불구덩이라 경제 주간지를 구독하기로 했다.


모든 것은 돌고 돈다. 옛날에는 신문으로 시사, 경제, 칼럼, 연예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 인터넷 뉴스를 보면서 신문을 보지 않는다. 인터넷 뉴스는 무료이고 어디서든 휴대폰만 있으면 볼 수 있지만, 너무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 누군가 필요한 정보만 정리해서 큐레이션 된 전문 정보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주간지로 돌아왔다. (요즘은 집 전화를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집에 있을 때만 내가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돌아와서 음성사서함으로 확인한다. 얼마나 로맨틱한지.) 주간지를 비교해 봐도 사실 눈에 띄는 차이는 모르겠다. 가장 최근 호의 편집자 레터를 읽어본다. 커버스토리도 둘러본다. 보고 온 것이 잘 기억이 안 나서 홈페이지에 나온 최신 호를 적어보자면, 매경은 은행이 이자로 배 불리는 현상에 대해 커버로 다루고, 한경은 K반도체의 퇴색에 대해 다룬다. 편집자 레터에서도 매경이 좀 더 폭넓은 사회 이슈들을 다루고 한경이 좀 더 기업, 투자 집약적인 이야기를 다룬다고 느껴졌다. 나는 경제에 대해 알고 싶은 것도 있지만 사회 전반 이슈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발행부수가 훨씬 높길래(매경) 일단 1위 잡지부터 구독해서 읽고 마음에 안 들면 갈아타야지,라는 마음으로 그 옆 인터넷 검색 부스로 가서 구독신청을 했다. 어릴 때 영어공부 한답시고 타임스 매거진을 구독해서 한 글자도 안 읽고 쌓아둬서 혼났던 안 좋은 기억이 있긴 한데, 이건 한글이니까 좀 낫겠지라는 마음이다. 주간지니까 매일 아침에 읽고 출근하던지, 아님 쉬는 날 몰아보던지 해야겠다.


구독의 시대이다. 너무 많은 정보들과 너무 많은 취향,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나한테 맞는 서비스들을 내 집까지, 내 코 앞까지 가져와주길 원한다. 서점에서 직접 이리저리 둘러가며 책을 고르던 때가, 더 앞서 비디오 가게에서 점원 추천 코너에서 비디오를 고르던 때가 그립긴 하지만. 집에서 한 발짝도 뻗지 않아도 알아서 가져다주니까. 매년 누구나 하는 결심인 '독서'도 구독 비슷한 것을 하기 시작해서 주기적으로 책이 집으로 온다. 아직까지 다 읽어낸 책이 한 권 밖에 없지만. 그래도 해본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야채들도 좀 주문했다. 양배추 같은 것도 사서, 건강한 식단을 해볼 작정이다. 아까 도서관에서 집에 오는 길에 늘 궁금했던 반찬 가게에 들렀는데, 가게의 절반 이상이 오픈 주방이고 직원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굉장히 체계적이고 대량으로 생산되는 반찬가게라는데에 놀라서 뭔가 믿음직한 마음에 반찬을 좀 사들고 왔다. 예전에는 반찬 같은 것 사 먹는 게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원재료 얼마 하지도 않는데 내가 만들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 시도해 보니 맛을 내기가 쉽지 않아서 재료도 망치고 시간과 에너지도 망친다. 못하는 건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 먹자. 다른 음식은 해 먹으면 되니까.


입사하고 4개월 정도가 지났는데, 아직도 쉽지 않다. 나답지 않게 지치고 우울해하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내려놨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할 수 없는 것은 내려두자. 최악의 상황이라 해봤자 해고다. (그럴 일도 잘 없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어마어마한 일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닌데 걱정은 내려두기로 했다. 특히 사람 관련된 일은, 내 뜻대로 되지도 않고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짧았던 휴일이 지나가고 또 내일은 출근을 한다. 나 자신이 나아지는 모습을 다시 또 기록해 본다. 길을 끝까지 가봐야 잘못 들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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