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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주 Jan 13. 2023

민족주의자 김수영 : 묘정의 노래

한국의 근대문학은 초기인 일제 강점기부터 좌우 이념대결의 중심에 있었다. 1925년 카프가 결성되어 사회주의 계급문학운동이 활발해지자 이에 대응해서 우파에서는 국민문학운동을 전개했다. 민족의식의 문학적 형상화를 목표로 했던 국민문학운동은 시조의 부흥과 역사소설의 창조를 실천적 작업으로 내세웠다.


이광수는 계급문학운동의 정치성에 반대하면서 민족의식의 개조를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자신의 이념을 직접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마의태자」(1927), 「단종애사」(1929), 「이순신」(1932), 「이차돈의 사」(1936), 「원효대사」(1942) 등의 역사소설을 잇달아 발표했다.


1930년대 후반의 전통론은 잡지 <문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병기, 이태준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비평적 주제이다. 당시에 일본은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지는 군국주의의 확대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 정책을 전환하고 내선일체(內鮮一體)론이라는 새로운 지배 이념을 내세웠다.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등 신체제론을 통해 일본의 내선일체론과 황민화 정책을 수용하며 이를 추종하는 집단이 생기자, 이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문학 정신을 모색하는 가운데 고전적 전통론이 제기된 것이다.


특히 해방 이후 우파 민족문학론을 주도했던 김동리의 문학은 풍부한 신화적인 모티프에서 출발해서 다양한 설화적 공간을 형성하면서 전통 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그의 등단 작품인 「화랑의 후예」(1935)에서부터 이미 그의 전통 지향적인 특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1930년대 후반 발표한 단편소설 「산화(山火)」(1936), 「무녀도」(1939) 등은 한국인들의 운명적인 삶의 양상을 깊이 있게 천착하고 있다.


권영민 교수의 분석대로 이 작품들은 역동적인 현실보다는 닫혀 있는 설화적인 공간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이 추구하고 있던 근대성의 의미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반근대적인 속성은 이념적 가치로부터의 탈피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주의 문학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역사와 현실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반역사주의 문학으로 비판되기도 한다.


지금 좌파 문학인들이 전면에 내세우는 김수영은 모더니스트이면서도 우파 민족문학으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처녀작인  「묘정의 노래」는 임화의 좌파 계급문학이 아니라 김동리의 우파 민족문학에 가깝기 때문이다.


김수영이 1945탈고한 「묘정의 노래」에는 외세에 맞서 민족의 전통적 정신과 얼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나타나 있다. 1부에서 시적 화자는 해방과 함께 “바람”처럼 몰아닥친 서양 세력들이 우리 민족의 전통을 상징하는 공간인 남묘의 “굳은 쇠 문고리”를 열고 들어와서 결국 남편을 잃은 “과부” 신세처럼 절반을 상실한 민족의 현실을 한탄하고 있다.


여기서 한아(寒鴉), 즉 까마귀가 달빛 아래에서 밤새 울고 있었다는 “그날”은 외세를 상징하는 ‘바람’이나 남북 분단을 상징하는 ‘과부’ 그리고 남방의 수호신인 “주작성”이 북쪽으로 날아가다가 화살을 맞고 “반(半)절”이 되었다는 말, 그리고 이 시가 1946년 3월 1일 《예술부락》에 발표되었다는 사실 등으로 보아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된 1945년 12월 28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는 한국에 임시 민주정부를 세우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창설하며, 5년 기한의 신탁통치를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의 4대국에게 제안한다는 내용의 모스크바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날을 울더라 / 밤을 반이나 울더라”라고 반복하는 것으로 보아 김수영은 신탁통치가 결정된 날을 사실상 민족 분단의 시작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2부에서 시적 화자는 민족 분단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통적 공간인 남묘에서 너무도 “고요히” 잠들어 있는 “관공”의 “얼”을 깨우려고 한다. 그는 관공을 “백화의 의장”과 “만화의 거동”으로 장식된 꽃처럼 아름다운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제시하면서, 신탁통치가 결정된 “지금” 고요히 잠들어 있는 관공의 강인한 얼을 흔들어 깨워 외세가 강요하는 민족 분단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여기서 ‘관공’은 삼국지로 유명한 중국의 관우(關羽) 장군이고, ‘남묘’는 조선시대에 그를 무왕(武王)으로 모신 사당인 남관왕묘를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관우에 대한 신격화가 한대에 시작되어 청대 말까지 이어져 관우의 봉호가 ‘후(侯)-왕(王)-제(帝)-신(神)’으로 격상되어 갔다.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때 파병된 명나라 장군들이 대일본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관우 장군이 도왔기 때문이라고 믿고 관왕묘를 건립하였다. 이후 정조는 무왕(武王)인 관왕묘를 문왕(文王)인 공자의 문묘에 버금가는 국가적 제례로 정착시켜서 문무겸치(文武兼治)를 달성하고자 했다.


김수영은 1965년의 산문 「연극 하다가 시로 전향」에서 동대문 밖에 있는 동묘(東廟)가 “명절 때마다 참묘를 다닌 어린 시절의 성지”(423)였다고 하면서, 거대한 관공(關公)의 입상(立像)이 어린 영혼에 “이상한 외경과 공포”를 주었다고 회고했다. 이 시에서 그가 남묘의 관왕을 등장시킨 것은 거대한 관공의 입상처럼 외세에게 외경과 공포를 자아낼 만큼 민족의 얼이 떨쳐 일어나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해석할 수있다. 원래 ‘동묘’인데 여기에서 ‘남묘’로 바뀐 것도 남과 북의 분단 상황을 보다 직접적으로 암시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할 수있다.


 그는 관공을 감도는 “향로의 여연(餘烟)”을 찍어 “백련”을 무늬 놓는 “화공”(=시인)으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한다. 그리고 “오늘도 우는 / 아아 짐승이냐 사람이냐”라는 탄식으로 시를 마무리하면서, 분단을 강요하는 외세에 맞서는 자신의 힘이 너무도 미약하다는 한탄과 함께 민족의 얼을 잃으면 짐승으로 전락한다는 경고를 남긴다. 여기의 울음은 그의 초기 시에서 주로 나타나는 ‘설움’과 마찬가지로 절망적인 한탄에 그치지 않고 부정적인 현실을 극복하는 내면적 힘을 상징한다. 그는 민족 분단을 강요하는 외세에 맞서기 위해 관공처럼 강인하고, 백의민족(白衣民族)을 상징하는 백련처럼 순수한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화공=시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김수영은 앞의 산문에서 모더니스트 시인들의 묵살의 대상이었던 ≪예술부락≫에 실린 이 작품 때문에 당시에 박인환으로부터 낡았다는 수모를 받았고, 자신에게도 ‘자학의 재료’가 되어서 자신의 작품 목록에서 지워 버렸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김주연은 “이 작품이 지닌 그의 세계 속에서의 낯선 위치를 생각할 때, 그의 처녀작은 차라리 그 다음번의 작품 「공자의 생활난」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수영이 앞의 산문에서 “나중에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콤플렉스”(423)라고 하면서, “인환의 모더니즘을 벌써부터 불신”(423)하고 있었다고 밝히는 것처럼 그가 이 작품에 담긴 민족주의적 사유를 전적으로 부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시에 대한 그의 부정적 평가는 “대체로 시인들이 자신의 옛 작품을 낯부끄러워하는 것”에 불과하거나, 1960년대의 다원주의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처녀작에 “불길한 곡성”처럼 민족주의가 과도하게 노출되었다는 제한적인 비판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김수영이 「더러운 향로」,「거대한 뿌리」등 민족정신을 추구하는 시들을 196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뒷받침된다. 김수영은 일관성 있게 민족의 전통적 정신과 통일을 추구했던 민족주의자이다.

 


「묘정(廟廷)의 노래」(1945)    

      

1     

남묘(南廟) 문고리 굳은 쇠문고리

기어코 바람이 열고

열사흘 달빛은

이미 과부의 청상(靑裳)이어라     

날아가던 주작성(朱雀星)

깃들인 시전(矢箭)

붉은 주초(柱礎)에 꽂혀 있는

반절이 과하도다     

아- 어인 일이냐

너 주작의 성화(星火)

서리 앚은 호궁(胡弓)에

피어 사위도 스럽구나     

한아(寒鴉)가 와서

그날을 울더라

밤을 반이나 울더라

사람은 영영 잠귀를 잃었더라     


2     

백화(百花)의 의장(意匠)

만화(萬華)의 거동이

지금 고오히 잠드는 얼을 흔드며

관공(關公)의 색대(色帶)로 감도는

향로의 여연(餘烟)이 신비한데     

어드매에 담기려고

칠흑의 벽판(壁板) 위로

향연(香烟)을 찍어

백련(白蓮)을 무늬놓는

이 밤 화공의 소맷자락 무거이 적셔

오늘도 우는

아아 짐승이냐 사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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