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아쑤아 Apr 04. 2023

첫째가 뭐길래

다둥이 집에서 첫째의 무게 없이 키우기


딸, 아들, 아들.

아이가 셋이라고 하면 거의 듣는 말은 "그래도 딸이 있어서 다행이네!"이다. 어르신들도, 내 또래도, 나보다 어린 육아맘들도 다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만큼 아들이 딸보다 키우기 어렵다는 건 정설인가 보다. 물론 나도 이 말에 백번이고 동의한다. 딸이 첫째라서 너무나 감사하고, 셋 중 한 명이라도 딸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친정에서 첫딸이고 남동생이 하나 있다. 형제가 많지도 않은 가정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자랐지만 나는 왠지 모를 장녀의 무게를 느끼며 컸다. 알아서 해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부모님은 한 번도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시거나 성적으로 야단을 치신 적도 없지만 그랬다. 첫째라는 자리의 부담감이었나..


그래서 내가 첫째로 딸을 낳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생각한 것은 '장녀의 부담은 가지지 않도록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극 까칠한 둘째, 활동적인 셋째. 아들 둘이 줄줄이 낳아 키우다 보니 우리 딸은 어느새 엄마와 육아를 함께하고 있었다. 딸이 없었다면 나는 아들 둘을 키우는 게 훠얼씬 힘들었을 것이다. 고맙고도 미안한 우리 딸.


딸의 선생님들과 상담을 하면 늘 듣는 말은 '라파에게는 뭐라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할 일을 알아서 너무 잘해요.' '어머님, 정말 잘 키우셨어요. 우리 딸이 라파처럼 자랐으면 좋겠어요.' 등등.. 칭찬 일색이다. 그럴 때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며 입꼬리가 올라가면서도 너무 모범생으로 자라는 건 아닌가.. 개구쟁이 남동생이 둘이나 되니 모범생이 되었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늘 딸에게 얘기했다.


"너무 잘하지 않아도 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동생들한테 양보하지 않아도 돼."


이렇게 이야기하면서도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을까? 오늘 아침에 사건이 벌어졌다. 식사시간에도 우리 집은 늘 시끌벅쩍하다. 셋이 앉아서 시끄럽게 떠들며 아침을 먹는데, 그게 재미있게 노는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놀다가 시비가 붙고,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반이다. (솔직히 나는 이 소리가 너무나 듣기 힘들다. 아침부터 짜증을 참느라 내 예민 게이지 상승..)


아침을 먹고 등교 준비를 해야 할 시간에 아들 둘이 장난친다고 붙어서 난리인 것을 떼어 놓고 돌아섰는데, 이번에는 딸이 막내랑 그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라파, 너까지 그래야겠니?!!"


그러자 딸은 매우 억울해하며 소리쳤다.

"왜 나는 장난치면 안 되는데? 왜 나한테만 그렇게 말해?"


순간 '아.. 나도 모르게 딸에게 모범생이기를 바라고 있었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딸이 얌전하면 내가 편하니까.. 딸이 그렇게 소리를 칠 때 내가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짜증이 잔뜩 나 있는 상태라 그러지 못하고 유치하게 말하고 말았다.


"엄마가 언제 너한테만 그래?"

"옛날에도 그렇게 말했잖아! 미카(둘째)한테는 그런 식으로 말 안 하잖아?!!"


이 때라도 사과를 할걸.. 옛날 얘기를 왜 꺼내냐, 이제 너도 9살로 대해주마!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학교를 갈 때는 기분이 풀려서 갔지만 나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다. 어른스럽지 못한 나의 반응이 부끄러웠고, 나도 모르게 딸에게 의젓한 첫째의 모습이기 바란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 이따가 딸이 돌아오면 엄마가 미안했다고 사과해야겠다. 그리고 그렇게 솔직하게 소리쳐줘서 고맙다고도 해야지..




덧.

모범생으로 자란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모범생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며 자랄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우리 딸은 다행히 자기주장이 확실하다. ㅋ


#장녀 #K장녀 #삼남매키우기 #엄마의성장일기

작가의 이전글 담임선생님이랑 상담을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