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면 해야 하는 게으른 성격인지라, 뭐든 몰아서 한다. 미리 하는 경우란 없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시험기간이 임박해야 마지못해 책을 펼쳤다. 여유를 두고 공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딱히 성적에 민감한 편은 아니어서 최소한의 성적만 받으면 된다 생각했다. 그래서, 늘 남은 시간에 맞도록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우선 시험까지 남은 시간을 체크했다. 그리고 시험 보는 과목 순서대로 시간을 할당했다. 그리고 자신 있는 과목과 그렇지 않은 과목을 나눠 비중을 조절했다. 선생님들이 강조하는 예습과 복습은 산만한 나와는 맞지 않았다. 잠깐 공부하는가 싶다가도 곧장 딴짓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들인 노력에 비해 성적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예습과 복습 따위에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았다.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 스물이 되어서도 습관은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벼락치기라는 가성비를 택했다. 발표를 준비할 때도, 레포트를 쓸 때도, 시험기간에도 마감 직전에 달렸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노력에 비해 좋은 점수를 받았다. 물론, 학점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도 한 못했겠지만.
그런데, 언젠가부터 벼락치기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어 공부, 운동,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까. 지속적이지 않은 영어 학습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다. 외국인 앞에 서면 늘 어버버거렸고, 한 문장 내뱉으려 뇌를 풀가동했다. 공부를 해도 늘 제자리걸음 같았다. 운동도 마찬가지.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두세 번 운동한다고 뱃살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늘어가는 듯했다. 기분 탓인가? 아니면 운동하는 날보단 술 마시는 날이 많아서였을까?
벼락치기는 글쓰기에도 적용되었다. 늘 마감 전 주말에만 몰아 썼다. 나름 규칙적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몸은 갈수록 견디기 힘들었다. 여유가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일이라도 있는 주말은 고역이었다. 거의 눈을 감은 채 자판을 두드렸다.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부어도 눈꺼풀은 계속 내려왔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새벽을 훌쩍 넘겨 잠들었다. 그래서 월요일에는 늘 머릿속에 구름이 낀 것처럼 멍했다. 일이 잘 될 리 없었다. 하루 종일 침대로 뛰어들고픈 마음뿐이었다. 이렇게까지 글을 써야 하나 싶었다. 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인데, 점점 짐짝처럼 되고 있었다.
운동처럼 글쓰기도 일종의 체력이 필요하다. 몸의 체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부터 손 끝으로 이어지는 글쓰기 메커니즘의 원활함을 의미한다. 꾸준한 운동이 몸을 개선시키듯, 문장을 만들고 글을 쓰는 것도 반복하면 늘기 마련이다. 가끔 하는 운동은 피로만 쌓인다. 마찬가지로 가끔 쓰는 글은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몰아 쓰기는 소재 발굴에도 불리하다. 일주일 내내 고민하나 없다가 토요일에 갑자기,
뭐 쓰지?
하는 고민을 시작하다가는, 소재 찾는 데만 한나절 소요된다. 미뤄뒀던 에세이집과 브런치를 마구 뒤지며 소재를 찾아보아도, 그럴듯한 소재가 훅하고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언제나 글을 쓰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좋은 소재가 순간 찾아오는 법이다.
글을 고쳐 쓰는 것, 즉 퇴고도 여러 날을 두고 하는 편이 낫다. 확고한 주관이 있다고 믿는 사람조차 환경이나 날씨, 장소에 따라 사고의 결은 달라진다. 몰아 쓰고, 몰아서 퇴고하다 보면 그날의 생각에 갇혀 글을 마무리하기 쉽다. 많은 작가들이 경험했듯이, 이전에 발행한 글을 다시 읽으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어색한 문장이 곳곳에 눈에 띄고, 문단 구성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이렇게 글을 마무리했나 싶다. 싹 다 고쳐 쓰고 싶지만, 이미 발행한 걸 되돌릴 순 없다.
매일 조금씩 써볼까 싶다. 시간 날 때마다 무작정 쓰는 타입은 아니라, 시간을 정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아침 일찍 또는 잠들기 전 30분 등 언제든 정해진 시간에 조금이라도 써보자. 어떤 방법이 더 나을지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 같은 몰아치는 글쓰기는 나를 조금씩 갉아먹을 뿐이다.
이 글은 꼭 여러 날 동안 나눠 쓰고 싶었다. 결심과 실천이 동시에 되면 좋으니까. 하지만,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다. 잠깐 눈 깜빡하니 벌써 토요일이다. 어쩔 수 없다. 이번에도 몰아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