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책 쓰는 상상을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브런치의 목적이 출판에 있다 생각하기에 딱히 이상할 건 없다. 졸린 눈 비비며 꾸역꾸역 글을 하나 둘 쌓는 것도, 어찌 보면 언젠가 있을지 모를 출판이라는 기회를 잡기 위함일지 모른다.
막연하게 책을 출간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지만, 여전히 책을 쓰는 행위는 어딘가 비현실적인 구석이 있다. 외계 생명체들이 어딘가에서 작당 모의하듯 책을 찍어낼 것 같다. 그래서 주변의 누군가 책을 썼다는 말을 들으면, 괜히 사람이 달라 보인다.
고등학교 1학년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멋도 모르고 독서토론 모임에 덜컥 가입했다. 책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토론할 만큼은 아니었다. 독서 토론이라는 행위가 멋있다 생각했을까? 아니면 여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당시 그 모임에는 같은 아파트에 살던 친구가 있었다. 특출 날 것 하나 없이 평범했고 나서기 좋아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잘생긴 것도, 키가 큰 것도,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다.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런 보통의 학생이었다. 당시 나와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다. 지나가며 몇 마디 주고받았을 정도? 어쨌든 같은 모임에 있다 보니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게 되었고, 중학생 시절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음?? 중학생이 책을 썼다고??
나는 책을 쓰는 것이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나는 행위라 생각했다. 특별할 것 없는 친구에게 출간한 책이 있다는 것은 꽤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모두 그를 우러러보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모임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주변인으로 밀려났다. 질투가 났을까? 나는 며칠 후 모임을 탈퇴해 버렸다.
‘책이 왜 이렇게 비싼 걸까? 한번 읽으면 끝인데’ 같은 생각이 들면서도, 가끔은 이렇게 저렴해도 괜찮은지 의문이 든다. 출판사의 열악한 경영 사정을 생각하면 조금 비싸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제값 주고 사기 아까운 책도 워낙 많다.
책의 가격은 과연 무엇으로 결정될까? 출판계의 생태계는 잘 모르지만 크게 인세, 마케팅비, 제작비, 유통비, 서점의 마진 등으로 구성된다. 유명 작가가 아니라면 인세는 거기서 거기다. 유통비나 마케팅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점의 마진도 마찬가지. 그래서 결국, 종이의 질과 잉크의 개수가 책값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빳빳하고 무거운 종이와 하드커버로 만들어진 책이 거친 질감의 재생지로 만든 페이퍼북에 보다 비싸고(무거운 데다 비싸기까지?), 컬러 이미지로 가득한 책이 글만 가득한 책 보다 더 비싸게 팔린다.
얼마 전, 웹 서핑하다 우연히 어떤 작가(?) 한 명을 알게 되었다.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이력을 살펴보니 특이한 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책 많이 쓴 걸로 상까지 받았다고?’
‘대체 몇 권이나 썼길래 상까지 주는 걸까?’
찾아보니 대략 200권! 그것도 십수 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뉴스와 유튜브를 뒤져 보았다. 오랜 기간 책을 써왔기 때문에 여러 건 검색되었다. 결론적으로 여론은 딱 두 가지로 나눠졌다. 하나는 홍보, 다른 하는 표절 논란과 사기 혐의 등 온갖 구설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값비싼 책 쓰기 강의를 하고, 유명 작가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교재를 만들어 자기 교재인 양 팔고 있었다. 어떤 책을 쓰는지 보다 많이 파는 데만 관심이 있었고, 강연과 교육 등으로 꽤나 많은 부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비슷한 주제로 제목만 바꿔 출간하고, 유명인의 이름을 빌려 그럴듯한 책을 만들어냈다. 본인 생각보다 남의 말이 더 많이 인용했고,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분량을 채워 넣었다. 말하자면, 비슷한 책을 대량으로 찍어 파는 일종의 ‘장사꾼’ 같은 사람이라고 할까.
사실, 요즘 서점에는 이런 작가의 책이 너무 많다(작가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그럴듯한 제목과 현란한 표지로 소비자를 현혹해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만든다. 속이 텅 비어 있음에도, 불안한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판매고를 늘린다. 가끔 나도 마케팅의 속아 이런 책을 구매한다. 정말 그럴듯해 보이니 쉽게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쯤이면 깨닫는다. ‘또 속았구나’. 그럴 때면, 얼마 되지 않는 만 몇천 원이 그렇게 아까울 수 없다.
누군가는 평생의 연구결과를 300쪽짜리 책 한 권에 담아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짜집기와 반복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운다. 그러나, 책 값은 비슷하다. 고작해야 1,000~2,000원 차이 정도. 얼마나 공들여 썼느냐는 값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무리 지식의 가치가 상대적이라지만, 종이 무게와 잉크 가짓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마치, 고물상에서 종이 무게만큼 값을 치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책과 멀어진 세상이다. 읽는 사람이 늘지 않는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쓰고, 출판하고, 소비하는 것도 소수 사람들의 영역에 불과하다. 그들만의 리그다. 간혹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이 팔리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예전처럼 100만 부 이상 팔리는 일은 드물게 일어난다.
아마 8할 정도는 인터넷 때문 아닐까. 예전에는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책을 봐야 했다.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요리 레시피를 위해, 공부를 하기 위해 책이 필요했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백과사전, 어학사전, 요리책은 필수 소장품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영상을 본다. 핸드폰을 켜고 유튜브에 들어가 타자 몇 번이면 ‘짠’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심지어 공짜다. 게다가 글자를 읽을 필요도 없으니 이 얼마나 편안한 세상인가!
정보가 넘쳐나니, 사고의 형태도 달라진다. 전에는 정보 습득의 창구가 제한적이라,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기억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기억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마다 찾아본다. 한 번 찾아본 내용도 몇 번에 걸쳐 반복해서 찾는다. 언제든 찾을 수 있으니 굳이 힘들게 외울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잘 찾는 방법이다.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키워드를 뽑아내는 것이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다.
하지만 가끔, 넘치는 정보 때문에 피로감이 느껴진다. 단 하루에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정보가 머리를 지나간다. 원하지 않아도 누군가 정보를 마구 집어넣는다. 얼핏 생각하면 편리한 세상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방대한 정보에서 오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진짜 정보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는 것. 게다가 가짜 정보로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가 넘쳐난다. 어떻게든 돈을 갈취하려고 온갖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인다. 잠깐 정신줄 놓으면, 냄새를 맡은 이리 때가 잔뜩 몰려든다. 눈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 물어 뜯기기 싫으면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