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것은 반성문
요즘은 예전만큼 몰입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진 않는다. 허나, 십수 년 전 크게 유행했던 적 있었다. 우후죽순처럼 몰입에 관한 연구와 책이 출간되었고, 앞다투어 몰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연자가 늘어났다. 사실 몰입은 특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다. ‘무아’, ‘심취’ 또는 ‘초인적 집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심리학자인 미하이 칙세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책의 유행에서 비롯된 밈(meme) 현상의 일종이었다.
몰입이든 집중이든 간에 몰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성과를 위는 방해 요소를 차단하고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부하거나, 글을 쓰거나, 운동하거나, 심지어 회사 일을 할 때도 몰입이 더 큰 성과를 가져올 거라 말한다.
하지만, 언제나 몰입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어떨 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주식투자. 주식투자에 빠져 있는 사람을 보면, 하루 종일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일하면서도 힐끗힐끗 핸드폰을 쳐다보거나, 아예 대놓고 회사 컴퓨터에 주식 프로그램(HTS)을 설치한다. 당장 사고팔지도 않을 거면서 뭐하러 그리 쳐다보는지 모르겠지만(해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아마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을 투자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르면 종일 행복해하다가도,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조울증에 걸린 것 마냥 급격히 우울감에 빠진다.
왜 그런 걸까? 몰입은 늘 긍정적이지 않던가? 그것은 아마, 본인의 노력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 아닐까? 주식의 가격은 절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샀다고 반드시 오르지도 않는다. 하루 종일 쳐다본다고 나아지는 것도 없다. 오히려 흔들리는 가격 때문에 계획에도 없는 뇌동매매에 손이 간다.
편안한 주식 투자를 위해선 몰입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정확히는 시세와 손실의 변화에서 눈을 떼야한다. 온종일 주식창을 쳐다보며 몰두해봤자 사실 실패할 확률만 높아진다. 게다가 본업에 소홀해져 본업의 근간마저 흔들릴 여지가 있다. 소소하게 용돈 벌어볼 생각으로 시장에 참여하다가는, 정말이지 큰코다친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 되려 두 마리 모두 놓쳐 버린다.
사실, 방향이 문제다. 주식 투자 역시 몰입이 필수다. 단지, 시세 변화와 손실액이 그 대상이 아닐 뿐이다. 투자할 회사에 대한 분석, 차트 분석, 뉴스, 투자 서적 읽기, 보고서 읽기, 매매 분석 등 전략을 수립하고 올바른 투자 결정을 위해 공부에 몰입해야 한다. 장이 시작되기 전에는, 그날 주요 뉴스와 이슈를 정리하고 대응 전략을 짠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그날 돈이 몰린 섹터와 종목을 분석하고, 자신의 매매를 분석하고 반성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틈틈이 투자 기본서 읽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십 개나 쏟아지는 증권사 리포트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는 기본적 공부를 게을리한다. 유튜브나 누군가의 추천 종목만으로 쉽게 주식을 매매한다. 제대로 된 전략이 없기 때문에 작은 변화에도 심리가 크게 흔들린다. 그러면서도, 손절은 네버(never). 떨어지는 주가를 바라보며 담배만 연거푸 태울뿐이다. 수익은 작고, 손실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 반복되는 패턴에서 벗어나려면 의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적은 금액부터 투자를 시작한다. 원칙을 세우고, 목숨처럼 손절가를 지킨다. 변동성이 큰 오전 30분과 마감 전 30분에만 매매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본업을 충실히 한다. 퇴근 후에는 그날 이슈를 체크하고, 공부하는데 온 정신을 집중한다.
나도 잘 못하면서, 말은 참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