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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Apr 18. 2022

각자의 글쓰기, 모두의 글쓰기

글은 들이는 시간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는 활동이다. 소재를 찾고, 문단을 구성하고, 끊임없는 퇴고까지.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정신노동의 집합체가 바로 글을 쓰는 행위다.


작가의 역량과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2,000자 내외의 글 하나 완성하는데 대략 5~6시간쯤 소요된다. 물론, 소재 탐색과 머릿속 정리 시간을 뺀 순수한 글 작성 시간이다. 꽤 오래 글을 써왔음에도, 속도는 좀처럼 빨라지지 않는다. 매번 머리를 쥐어뜯으며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뭘 쓸지 몰라 온갖 글을 기웃거린다. 썼다 지웠다를 몇 번이고 반복한 후, 겨우 글 하나를 뽑아낸다. 그러나 이렇게 애써 글을 발행하더라도, 사실 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적으면 수십, 많으면 수백 정도쯤? 가끔, 뭐하러 이리 고생하나 싶다.  


 쓰는 방법과 목적은 저마다 다르다. 출판을 위한 글쓰기,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글쓰기, 마음을 위한 글쓰기, 특별한 목적 없이  대로 되라는 글쓰기 , 목적에 따라 쓰는 주기와 시간, 방법은 달라진다. 굳이 따지면 나는 마지막 케이스에 해당한다. 그때그때 목적 없이 즉흥적으로 소재를 찾고, 쓰이는 데로 글을 완성한다. 물론 글쓰기를 시작하는 단계라면, 나쁘지 않다. 어쩌면 그럴듯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목적의 부재는 가끔 혼란을 유발한다. ‘나는  글을 쓰는 거지?’, ‘무엇을 위해 쓰는 거지?‘, ‘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거지?’,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아닐까? .


그래서 나는, 목적 없는 글쓰기를 유지하기 위해 일종의 의무감을 부여했다. 사람을 모으로, 데드라인을 만들고,  쓰는 루틴을 만들었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아무래도 조금은  신경 쓰이니까. 확정적 독자가 있다는 생각에  자체에  집중했고, 퀄리티를 높이려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마감 시각이 있다는 것도 분명 효과 있었다. 밤을 새더라도 마감을 맞추려 노력했다. 목적의 부재를 메우기 위한 ‘의무감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도구처럼 보였다.


그러나, 의무적인 글쓰기는 언젠가 식는다. 아무리 의욕 충만이라도, 뚜렷한 목표 없는 글쓰기는 유지하기 어렵다. 소재는 바닥나고, 표현에 한계가 오고, 문장의 빈곤함이 드러난다. 그럴 때면, 동료의 존재와 데드라인과 루틴의 작동이 삐걱이기 시작한다. 쓰고 싶은 마음은 분명한데, 서너 줄 채워 나가는 것조차 점점 힘겨워진다. 의미 없는 글을 쓴다는 자괴감에 빠지는 날도 점점 늘어간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을 쓴다는 사실이다. 여타 블로그와 다르게 브런치는 브런치만의 스타일이 확고하다.   글에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작가들끼리의 유대도 끈끈한 편이다. 조회수 늘리기에 급급한 성의 없는 댓글이 아닌, 진정성 넘치는 댓글로 가득하다. 마지못해 의무감으로 글을 쓴다 하더라도,  글을 읽고 응원해주는  벗님들이 있어  힘이 된다. 형편없고 지루한 글이지만, 가끔 남겨주시는 댓글을 보며 식어가던 열정에 불씨를 살린다.


다시  쓰는 목적을 생각해보자. 글에 반드시 어떤 목적성이 있어야만 하는 걸까? 유유자적,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을 때만 쓰면  되는 걸까?  책을 쓰기 위해 글을 써야 할까? 말을 잘하고 싶어 연습하듯이, 글을  쓰고 싶은 욕구만으로도 글쓰기의 동력은 충분하지 않을까? 


글도 말처럼 모든 활동의 필수 요소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말하고 쓰는 것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선생님도, 의사도, 프로그래머도, 공장의 엔지니어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말하고 쓰는 능력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생각을 조금 바꿔 기본적 소양을 강화하는 데 글쓰기의 목적을 둔다면 어떨까? 당장은 아니지만 글의 쓰임이 좀 더 필요할 때를 대비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내 글쓰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어디로 연결될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상상하기도, 예측하기도 어렵다. 다만, 언젠가 뚜렷한 목표를 위한 글쓰기가 분명 나타나리라 믿고 있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때까지, 미래의 결실을 준비하는 농부처럼 밭을 갈고 잡초를 뽑듯이 하나하나 글을 채워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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