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는 2020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속도는 이전 어떤 바이러스보다 빨랐다. 그리고 위협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로 목숨을 잃었고, 또 가족을 잃었다. 건강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늘어난 환자로 병상은 늘 만원이었다. 기존 병원으로 감당할 수 없어 임시 병상을 늘리고 또 늘렸다. 부족한 병상은 충분히 치료 가능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을 악화시켰다. 의료시스템이 붕괴되는 국가가 속출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봐주는 법이 없었다. 순식간에 전 세계를 집어삼켰다. 끊임없이 변이의 변이의 변이가 나타났다.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다시는 시원한 바깥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없을 것 같았다.
끊질기고 끈질겼던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제 정점을 찍고 내리막으로 돌아섰다. 여전히 곳곳에서 새로운 변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예전만큼 위협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언제 또 슈퍼 변이가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다. 도시 곳곳을 봉쇄 중인 중국은 여전히 지옥이겠지만, 마스크를 벗어제끼는 나라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조그만 기다리자. 3년 전의 정상적(?)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시국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나 같은 I형(NBTI)에게는 딱히 바깥으로 나가지 않음이 문제 되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 만나는 것이 그닥 즐겁지 않았기 때문에, 코로나는 그럴싸한 핑계가 되어주었다. 게다가 재택근무가 삶의 질을 확 끌어올렸다. 얼굴을 봐야 일이 된다는 꼰대 상사는 아니꼬울지도 모르겠지만, 일개 말단 사원에게는 그야말로 반가운 일이었다. 근무 시작 5분 전까지 침대에 누워있다 열 걸음이면 출근이 가능했다. 잘 보일 사람도 없으니 입을 옷이나 헤어스타일 같은 온갖 걱정에서 자유로웠다. 결정적으로, 왕복 2시간에 달하는 출퇴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였다. 물론, 몸뚱아리가 비대해지는 단점도 있었지만...
코로나의 해방이 마스크의 자유를 보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상당수 직장인에게 출퇴근의 자유를 빼앗는 결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이미 출근 모드로 변경하는 회사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지하철과 버스는 다시 만원이 되었다. 우리 회사라고 예외일리 없다. 아직까지는 다행스럽게도 재택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언제라도 재택을 종료하고 회사에 출근하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재택근무는 과연 어떤 장점이 있을까? 왜 그리 많은 직장인들이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것일까? 약 2년 간 재택근무를 경험하며 깨달은 사실과 여러 사람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장점을 추려보았다.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금수저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출퇴근은 악몽이다. 콩나물시루처럼 지하철 한쪽을 차지한 채, 숨도 쉬기 어려운 상태로 몇십 분을 버틴다. 그렇게 겨우 지하철을 내려도 다시 걷고, 버스를 갈아타고, 또 지하철을 갈아탄다. 마지막으로 회사 엘리베이터 지옥만 견뎌내면, 드디어 즐겁고 신나는 회사에 도착이다. 아, 출근했을 뿐인데 벌써 피로가 몰려온다. 앞으로 8시간을 어떻게 버텨낼지 막막할 따름이다.
재택근무는 출퇴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옷을 입을 필요도, 화장을 할 필요도, 심지어 씻을 필요도 없다(그래도 가급적 씻는 게 낫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몇 발짝 걸으면 거의 끝이다.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내리고, 의자에 앉아 메신저에 로그인하면 근무 시작이다. 혁명적이다. 마치 검지와 중지를 이마에 대고 순간 이동하는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된 기분이랄까.
꼰대들은 직접 보며 일하기를 선호한다.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직접 봐야 일하는 거라 믿는다. 사실 무얼 하든 관심은 없다. 웹서핑을 하는지 옆자리 직원과 점심메뉴를 고르는 중인지 알게 뭐람. 오로지 책상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 중요할 뿐이다. 북극의 얼음이 녹든 말든 밤늦게까지 회사 불이 켜져 있어야, 일이 돌아간다 생각한다. ‘아직도 이런 꼰대가 있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꼰대력 높은 사람들이 꽤 많이 포진해있다.
회사로 출근하면 자의든 타의든 사람들을 반드시 만난다. 복도에서든 휴게실에서든 만나고 싶든 만나기 싫든 간에 누군가와 마주하는 상황은 늘 발생한다. 금세 휘발되어 없어질 가벼운 관계라도, 평판을 유지하고 쿨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농담을 던지고 어색하게 미소를 짓는다.
재택근무는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대면에 자유를 가져왔다. 회의 같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마주할 필요가 없어졌다. 가식적인 말도, 어색한 웃음도,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도 모두 사라졌다. 주어진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육아는 모든 직장인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다. 특히 맞벌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린이집부터 시작해, 유치원, 초등학교까지 아이는 누군가의 돌봄이 절실하다. 부모님, 베이비시터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보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확실한 해결책은 부부 중 누군가가 퇴직하거나 휴직하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휴직은 한계가 있다. 고작해야 1~2년 정도다. 그렇다고 퇴사하기에는 미래가 불안하다. 경력단절 인력에게 돌아갈 자리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재택근무는 육아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한다. 등교나 하교, 학원에 데려다주는 문제뿐 아니라 아이에게 급한 일이 있을 때 가까이에서 일하는 메리트가 빛을 발한다. 또한, 아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리적으로 큰 위안이 된다. 아마 맞벌이 부모 아래서 자란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재택근무는 회사에게도 여러 장점이 있다. 첫째, 인력 이탈을 막는다. 육아로 인한 이탈뿐 아니라, 재택근무라는 최고의 복지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잡아둘 수 있다. 아무리 높은 연봉을 쥐어주더라도 재택근무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숙련된 직원 한 명의 가치는 그 사람 연봉의 몇 배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헤드헌터 비용, 면접 비용, 그리고 숙련되기 전까지 필요한 교육 기간을 생각하면 이전 사람을 잡아두는 편이 회사 입장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두 번째는 비용 절약이다. 인건비를 제외한다면 아마 공간에 드는 비용이 가장 클 것 같다. 대부분의 회사가 도심이나 주요 거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임대료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만약 고정좌석 없이 최소한의 공간만 필요하다면, 공간 임대를 위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밖에도 사무용품이나 전기세 같은 공공요금, 커피나 간식 등의 복지비 절감도 가능하다. 물론, 큰 비용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일을 처리하기 위한 인력까지 생각한다면 결코 작은 비용은 아닐 것이다.
재택근무는 옳다
우리는 이미 약 2년간 문제없이 재택근무를 이어왔다. 물론 외부환경 탓으로 시작되었지만, 재택근무가 딱히 매출이 떨어뜨리지 않음을 입증했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줄이고, 회사 비용도 줄일 수 있는데, 어째서 다시 이전으로 돌리려 하는지 의문이다. 특히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혜택보다 절실하다. 만약 출근 모드로 변경한다면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종종 블라인드(회사 익명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재택근무가 끝나면 이직하겠다는 사람이 여럿 눈에 띈다. 실제 퇴사율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재택근무의 종료가 퇴직을 결심할 만큼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은 분명하다.
계속 재택근무하고 싶다. 아니, 해야만 한다. 2년 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집에서 일했던 내가, 기억도 흐릿한 출근 시절로 돌아간다 생각하면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게다가 변화된 생활 패턴을 되돌리기에는 다방면에서 리스크가 크다. 어쩌면 나와 와이프 중 누군가 장기 휴직을 해야 할지 모른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인사팀, 또는 회사 대표가 있다면 재택근무만큼 압도적인 복지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