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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May 22. 2022

도대체 당신을 뭐라 불러야하죠?

복잡하고 비효율적이고 이상한 한국의 호칭 문화

한국에서는 누군가 처음 만날 때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몇 살이세요?


서양에서는 실례가 되는 질문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존댓말 문화권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관계를 시작할 때 나이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이가 같으냐에 따라 존대 여부를 결정하고, 같으면 친구 많으면 형이나 언니가 된다. 어떤 성격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는 나중 문제다. 일단 나이부터 확인하고 관계를 시작한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나이를 묻는 것이 실례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동서양 문화의 갭이 줄어든 건지 세대가 바뀐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이를 먼저 묻기보다 성향이나 취미 같은 개인적인 부분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서로 존대하고 조심스럽게 관계를 시작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은 나이를 중요시한다. 표면적으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관계를 규정하고 호칭을 결정한다.


한국의 복잡한 호칭 문제는 가족관계에서 절정을 이룬다. 뭐가 그리 많은지 관계를 파악하려면 검색이 필요할 정도다. 삼촌, 이모, 고모까지는 쉬운 편이다 문제는 자주 보지 못한 먼 친척, 또는 결혼으로 맺은 새로운 관계다. 평생 써본 적 없는 말로 누군가를 부르려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어른들의 대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들어봤지만, 막상 내 입으로 발음하려니 괜히 낯간지러운 기분이다. 당숙, 자형(혹은 매형), 아주버님, 올케, 동서, 아가씨, 도련님, 처제, 처형 같은 말은 들을 때마다 늘 어색하다. 누군가 몇 개로 압축시켜주면 좋겠다. 차라리 법안을 만들어 이런 식으로 불러라 공표하면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다. 그것도 안된다면, 서양처럼 호칭 없이 이름을 부르면 안 될까? 안 되겠지.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에선 가당치도 않은 소리에 불과하다.


다른 얘기지만, 이렇게 전통적인 가족 간의 호칭에는 남성이 위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시댁과 처갓집이라는 단어만 해도, 남자 집을 높이고 여자 집을 낮춰 부른다. ‘아가씨’, ‘도련님’과 ‘처제’, ‘처남’ 간의 차이도 비슷한 맥락이다. 남자 집안 식구만 유독 높여서 부른다. 오랜 관습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결코 유쾌하지 않다. 구식 축에도 끼지 못할 사고방식이다.


다시 돌아와서, 처음에는 이런 불편한 호칭 문제가 내 성격 탓인 줄 알았다. 정해진 호칭을 입밖에 내지 못하는 것이,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친해지지 않은 상대에 대한 어색함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정부가 나서서 가족 호칭 토론회를 열 정도니까. 토론회의 결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 간 호칭에 불편함을 가지고 있던 것이 나만은 아닌 것 같아 그나마 안심이 된다(성격 탓이 아니었다. 휴~).





가족처럼 결정된 관계뿐 아니라, 뭐라고 부를지 애매한 관계의 호칭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회사에서는 그나마 낫다. 기업 각자의 문화에 맞는 호칭을 쓰면 그만이니까. 영어 이름을 쓰건, 과장님 같은 전통적 호칭을 쓰건, 뭐가 됐든 시키는 대로 부르면 된다.


근데, 애매한 관계는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만나자마자 ‘우리, 호칭부터 정해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이 친구 아빠나 엄마와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그리 친하지 않다면 딱히 서로 부를 필요 없지만, 술 한잔하고 꽤 가까운 사이가 되면 호칭이 괜히 발목을 잡는다. XX엄마, XX아빠라고 불러야 할지, 형님이나 언니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하다. 반말은 해도 될지, 계속 존대해야 하는지 그것 또한 쉽지 않은 문제다. 호칭이나 존대 여부를 서로 합의했다면 괜찮다. 그러나 애매한 호칭으로 관계를 지속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둘 사이의 거리는 전혀 좁혀지지 않는다.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면 상관없지만..)


그래서 우리는 ‘저기요’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한다. 누군가에게 길을 묻거나, 카페 점원을 부를 때, 식당에서 깍두기 더 달라고 말할 때, 강의실 옆 자리 사람에게 과제 물어볼 때 등 뭐라 부를지 모를 애매한 상대에게 늘 ‘저기요’를 던진다. 편하고 범용적이다. 하지만, 별로다. 게다가 친척과 아이 친구 부모에게 ‘저기요’라 부르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그렇다고 영어의 ‘you’처럼 ‘너’ 또는 ‘당신’이라 지칭했다간 괜한 멱살잡이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바람이 있다면, 우리도 범용적이고 실용적인 적당한 공통 호칭 하나 있으면 좋겠다. 복잡한 호칭 문제를 한꺼번에 타파할 수 있는 그럴듯한 어떤 단어 말이다. 그러면 아마 적절한 호칭이 없어 상대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일은 없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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