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들과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다양한 추억을 쌓아왔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 많은 친구들은 부산을 떠났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 때문이었죠. 저야 어떻게 하다 보니 전국구 종합여행사에 입사하여 현재까지 부산을 지키고 있지만 대다수의 친구들은 가깝게는 울산, 창원으로 멀리는 서울, 수원 등 수도권으로 직장을 찾아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난 친구들이 명절이나 가끔 부모님을 뵈러 부산 고향 동네에 올 때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객지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을 하기 위해 인프라가 구축된 지역으로 떠난 경우들이 많았기에 새로운 환경에서 치열하게 살아나간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친구집 가는 길에 영도대교에서 바라본 풍경
이런 흐름에서 부산에 있는 동창들은 몇 안되었는데 몇 년 전에 살던 동네에서 영도로 이사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영도에 있는 오래된 주택을 매매해서 리모델링한 후 1층에는 고양이 콘셉트의 잡화점을 운영하고 아내와 나름의 개인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요. 영도 청학동에 위치한 주택을 개조한 홈바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역에서 청년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여러 의견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일단 영도로 이주한 지 약 2년 정도 된 친구는 영도에서의 생활에 매우 만족하는 편이었습니다. 부산 영도구가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소멸위험지역에 선정될 정도로 정주인구가 빠져나가는 지역이긴 하나,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사업, 문체부 문화도시사업 등 다양한 공적자본에 의한 지역활성화 사업들이 진행되면서 로컬에 기반한 청년 창업가들이 많이 들어와 F&B를 비롯한 스몰브랜드를 창업하여 인프라를 만들었고 원래 영도에 연고가 있지 않던 청년들이 영도로 들어와서 다양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었죠.
친구 역시 홈바 사장님과 그림 그리기 클래스에서 처음 만나 새로운 공간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분들과 다양한 교류를 해나가는 것이 즐겁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요즘은 아파트 같은 공간에 살며 주변에 어떤 이웃이 사는 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궁금했던 건 잡화점을 운영하면서 나름의 경제적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길에 버려진 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다 현재는 여덟 마리 고양이 집사가 된 친구는 말했습니다. 물론 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몇 년 간 아내와 함께 고양이 소품, 인테리어 등으로 온라인에 쌓아온 포트폴리오 덕에 좋은 입지의 가게는 아니지만 오프라인으로 그리고 온라인으로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꽤나 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포탈에서 가게를 검색해 보니 너무나 감성적이고 이쁜 이미지들 덕에 굿즈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쯤 방문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자, 이번에 제가 이런 일상을 소개하는 건 전체 면적의 10%에 인구의 절반이 모여사는 나라 바로 대한민국의 상황에 대해서 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수도권 과밀화, 저출산, 고령화, 지역균형발전 이런 단어들이 단순히 정부 정책 포럼에서나 나올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정말 필수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수도권은 수도권 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정말 다 어려워지는 결과를 초래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관련해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배경을 보면 가장 큰 원인은 2010년대부터 시작된 급격한 산업구조의 변화 흐름이었습니다. 기존에 지역을 기반으로 운영되던 제조업 기반에서 ICT 기술을 필두로 하는 첨단 혁신 서비스 사업들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전함에 따라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됐습니다. 안 그래도 인구가 많은 서울은 사람들이 몰림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강남불패'라는 말이 상용화될 만큼 거대한 기업과 양질의 정주여건을 가진 지역의 부동산은 어떠한 정부의 정책에도 떨어지지 않았죠.
이러한 집중화 현상은 결국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 집 마련의 어려움,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표출되고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심리적으로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서도 심리적 장벽을 높였음이 분명합니다. 또한 평생을 서울에서 일한 베이비부머 세대들도 은퇴 후 막상 노후에 대한 준비들이 충분치 않으니 가지고 있는 한두 채의 부동산을 노후자금 마련의 수단으로 생각하며 귀향하여 다른 삶을 준비하는 흐름을 보이지 않았죠. 물론, 이는 귀향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측면도 크긴 합니다.
퇴직한 베이비부모 세대들의 귀향 지원 정책 예시(경남 하동군)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NABIS 균형발전 로컬 큐레이터로 활동하게 되면서 과연 지역에서 살면서도 원하는 일을 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방안들이 있겠지만 여행업에 몸 담은 지 11년 차인 직업인으로서 정주인구가 아닌 *생활인구의 유입을 증대시킬 수 있는 지역특화관광에 애정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지역관광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의식 있는 창업자(로컬크리에이터)분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여행트렌드와 콘텐츠에 대해서이야기하는 창작자로서 균형발전이라는 것이 단순히 지방을 살리기 위한 관점의 정책만이 아니라 과밀화된 수도권의 생활여건을 개선하고 활력을 잃어가는 지방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상생해 나갈 수 있는 바탕의 어젠다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생활인구: 해당 지역에 주민등록상 정주하는 인구에 더해 통근, 통학, 여행하며 해당 지역에 체류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한 개념의 인구)
참고자료:
서울은 울트라 슈퍼 메가시티?! 광역연합 도시개발 지방소멸 해법될까 #이슈픽쌤과함께 [하이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