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커머스 1세대 사업자인 큐텐 구영배 대표는 결과적으로 자신이 CEO로 있는 계열사(티몬, 위메프)의 소비자, 공급자(셀러)들에게 소비자 환불금 및 판매자 정산대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과거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사태를 겪으면서 수없이 많은 인터넷 비즈니스 기반의 기업들이 창업과 몰락의 길을 반복해 왔습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1996년 6월 한국 최초의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회사인 인터파크가 출범합니다. 인터파크는 인터넷 테마파크의 약자로 국내에서는 최초로 전자상거래의 기초를 닦은 기업입니다. 구영배 대표도 1999년 인터파크에 합류하여 근무했고 별도로 회사를 차려 나온 게 지금의 G마켓입니다. 당시 별도 법인인 G마켓을 국내 1위의 오픈마켓으로 키워내 나스닥에 상장시키고 미국이베이에 매각했고, 이베이는 인수 조건으로 구영배 대표가 한국에서 10년 간은 동종업계에서 경쟁할 수 없다는 조건을 겁니다.
그리하여 구영배 대표는 싱가포르로 갔고, 거기서 큐텐이라는 이커머스 회사를 세워 새로운 사업을 이어갑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전형적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의 스토리인데요. 근데 문제는 이러한 이커머스 비즈니스의 구조에 있습니다. 전자상거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품을 중개해 주는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서 소비자, 셀러들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소비자가 직접 공급자를 찾아가 가격 협상을 하고 제품을 받는 것보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편하게 검색하고, 비교하고, 구매 및 배송받는 것이 훨씬 비용 대비 편익이 높기에 플랫폼이 중개수수료를 포함시켜도 소비자는 플랫폼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소비마다 건건이 비교하고 구매하는 노력을 들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는 상당히 피곤한 일이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못 했다는 걸 인지했을 때는 커다란 피로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죠. 쿠팡 이용자들이 와우 멤버십을 통해서 락인(Lock-in)되는 것처럼 보통의 소비자들은 주로 사용하는 쇼핑 플랫폼들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대부분의 소비가 이뤄집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부분에서 이번 티메프 사태와 같은 문제의 씨앗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큐텐은 그룹 내 계열사들을 활용하여 무리한 판촉을 해서라도 소비자 거래량(트래픽)을 늘리려고 했습니다. 프로모션에 비용이 더 발생했을 것이고, 애당초 재무 사정이 좋지 않던 티몬, 위메프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나는 그룹 내 회사 흐름을 보면 큐텐이 티몬, 위메프를 인수하면서 티몬, 위메프 각사에 있는 재무/개발/총무부서(GA)를 큐텐 그룹으로 일원화시킨 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즉 티몬, 위메프는 오로지 영업을 위한 MD, 마케팅 조직만 남겨서 계속해서 소비자를 유인하는 역할만 부과했다는 거죠. 여기 직원들도 자신 회사의 재무 상황도 잘 모른 채 오로지 딜에만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이건 분명 정상적인 조직의 회사는 아닐 겁니다.
현재 중점적으로 비판을 받는 부분도 큐텐이 재무상황도 적절치 않은데 거래량을 늘리는 외형 확대를 위해 무리하게 자본잠식 상태의 이커머스회사들을 인수했고 고객들 결제대금을 정산지연을 통해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어제 열린 국회 현안질의에서 큐텐, 티몬, 위메프 대표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이 모두 나왔지만 큐텐 그룹 내에 판매자들 대금 규모를 추산하고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는 것 역시 윤곽이 보이질 않습니다.
금일 자 기사에는 티몬, 위메프 외에 큐텐 그룹 내 이커머스사인 인터파크쇼핑, AK몰 여기 미정산에 대한 리스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소비자대로 판매자들은 판매자대로 매우 답답한 상황이 되었는데요.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방안에 몰두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커머스 업계 전반에 판매자 정산기일, 고객 결제대금 처리방식 등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에서 면밀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
'이베이가 두려워 하는 남자' 큐텐 구영배 대표..."글로벌 마켓 도약, K셀러 힘이 필요해" (techM, 24.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