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동은 제가 근무하는 회사의 사무실에서도 가깝기에 종종 방문하곤 하는데요. 퇴근 후 간단히 저녁을 먹고, 낡은 휴대폰 케이스도 새로 구매할 겸 남포동을 찾았습니다. 자갈치 시장 건너, 남포동 비프광장 거리에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많이 모여있었습니다. 해당 장소가 외국인 단체 관광객 버스가 주로 주정차하는 포인트인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버스 정차 후 내렸고, 가이드로 보이는 분이 손짓으로 외쳤습니다.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여러분, 저쪽은 자갈치시장" "이쪽은 남포동 거리입니다." 정도라고 안내하는 듯했습니다. 무리에 섞여 단체로 온 중국인 관광객들은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가이드의 설명대로 남포동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무리의 단체관광객들이 지나가고 나니 또 다른 대형버스가 정차하여 이번에는 단체관광객들을 버스에 태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와 이러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오버랩되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도 과거 외국에 단체관광을 갈 때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었기 때문입니다. 버스가 내려주는 포인트에 가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새로운 지역을 살펴보고 안내의 흐름대로 따라갔던 경험들이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인바운드 관광(외국인의 국내여행) 시장도 단체관광에서 개별자유여행의 흐름으로 대세가 바뀐 지 꽤나 시간이 흘렀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IT기술의 발달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짜인 일정과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주도적으로 스마트폰만 있으면 다양한 관광지 정보와 후기를 얻고, 나만의 여행을 계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외국인 자유여행객들을 대상으로 국내 BTS 성지순례 투어가 인기를 얻는 것도 그러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다양화된 것이 주요 배경일 것입니다.
아무튼, 소그룹 자유여행이 대세가 됐음에도 단체관광이 존재하는 것은 단체관광만의 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최 측 관점에서 관리상의 편의 이슈일 수도 있고, 단체가 동일한 일정을 하면 공동 비용(차량, 가이드)을 줄일 수 있는 이점도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국인 관광객들을 보고 남포동을 한동안 걸으면서 여러 가지로 씁쓸한 장면들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일단, 남포동 상권이 코로나를 겪으면서 너무나도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남포동은 과거 부산국제영화제의 메인무대로 부산의 상징적인 번화가였습니다. 부산을 다녀가거나, 부산에 거주하는 베이비붐 세대 정도만 하더라도 부산의 시내, 번화가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지역이 남포동이었습니다. 서울의 명동 상권처럼 식음료, 영화관, 연극 공연장 등 다양한 문화체험시설들이 있었고 근처에 용두산공원, 보수동 책방골목, 자갈치시장 등 부산 원도심의 역사와 전통이 서려있는 곳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대표적인 번화가였기에 외국인들이 부산을 찾을 때 꼭 들르는 대표 상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동인구가 많았으니 장사도 잘 되었겠지요.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했나요?
부산의 중심 상권이 서면(전포동), 해운대 쪽으로 이동하면서 원도심인 남포동은 점차 상권의 활기를 잃어갔습니다. 보통 대기업 브랜드 의류 로드샵들이 유동인구가 활발한 상권에 쇼룸 형태의 매장을 많이 열기 마련인데, 그러한 로드샵들도 코로나를 겪으면서 영업을 중단한 곳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중심상권을 뺏기면서 외국인 단체 관광객에 의존했던 가게들도 지속적인 거래를 위한 콘텐츠 개발보다는 단기적인 이윤창출에 집중하게 되며 상권의 다양성을 잃게 된 측면도 있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들이 단기간에 이루어졌다기보다는 꽤나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말이면 남포동 트리축제를 진행하는 광복로 한가운데를 걸으며 수없이 많은 공실의 상가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1층에 줄줄이 임대가 난 곳은 물론이며, 건물 전체가 임대로 붙어있는 곳도 간간이 있었죠.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건물의 임대료는 그다지 낮지는 않을 것입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공실로 그냥 두더라도 임대료를 낮추면 건물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적절한 임차인이 나올 때까지 장시간 기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오프라인 상권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모여들고 나가는 하나의 장터(플랫폼)라고 봤을 때, 좋은 상품(양질의 콘텐츠)이 많아야 당연히 사람들이 몰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좋은 상품이라는 것은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군에서 만들어내는 매끈한 상품도 있지만, 소자본이지만 자신만의 취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나만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고숙련 자영업자(소상공인)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만, 이러한 자영업자들은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부족하기에 상권의 생태계가 계속해서 높은 임대료를 고집한다거나, 외부 환경의 변화로 유동인구를 일시적으로 잃는다고 하면 그러한 변수를 버텨낼 체력이 약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좋은 상품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공공의 지원 혹은 상권을 지속가능한 구조로 관리하는 기획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역관광의 미래는 결국 방문하는 도시 내에 위치한 상권들이 제각각의 색깔을 바탕으로 매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코로나를 통해 부각된 전국의 '00 골목길 열풍'도 결국엔 획일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벗어나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 떠나는 스마트한 여행객들의 소비 흐름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