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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이 Jan 28. 2022

어린이 책을 읽습니다

마음에 창문을 달 수 있다면

책은 정말이지 신기한 물건이다.


좋아하는 책이 무엇이냐 물으면 어느새 대화는 서로의 마음속 내밀한 곳까지 닿아버린다.​

책을 소재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건 몇 안되는 즐거운 '일'이 될 듯하다.


아이들의 문장은 훨씬 더 투명하고 본질에 가깝다.무엇을 얻었는지, 혹은 무엇을 얻고자 책을 읽었는지 설명하는 어른의 문장과는 다르다.


아이들은 그저 이 책을 왜 좋아하는지 말하는데 충실하다.


좋아하는 책 세 권을 꼽아 만나자는 말에,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책을 가지고 왔다.

게임 마인크래프트 책부터 제인에어까지.

아이들은 열띤 표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조각을 내게 나눠주기 바빴다.


가만히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보며 대화를 좇다보면, 어느새 아이의 마음에 닿는다.


<위풍당당 여우꼬리>라는 책을 가져온 진이는 주인공이 외모 컴플렉스를 멋지게 소화해서 재밌게 읽었더랬다.


진이의 고민은 짙은 눈썹.


갈매기처럼 생긴 눈썹이 싫어 반토막을 날렸던 스무살 시절의 이야기를 진이에게 들려줬다.

마스크 속에서 낮게 웃는 아이의 모습에 덩달아 웃음이 난다.


'나중에 너도 예쁘게 그리면 돼'라고 말하려다 마음을 바꿨다.

"동그랗게 생긴 내 눈썹, 예쁘지 않니? 동그란 내 얼굴에 딱인 것 같아"

웃으며 끄덕이는 진이에게 네 눈썹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덧붙이려다 다시 참는다.

"거울보고 웃으면서 매일 예쁘다고 했더니 진짜 예뻐진 것 같아. 진이도 한 번 해보렴."

진하게 화장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눈썹만큼은 누구보다 심혈을 기울여 그리는 나로서는 퍽 자기기만적인 순간이다.


그러나 <위풍당당 여우꼬리>의 주인공은 누구나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진이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나갔다.

우주의 요즘 고민은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이따금씩 본인을 '당기는 것'이다.


문득 길을 걷다가 옛날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우울해질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럴 때면 그 이상한 기분이 본인을 아래로 쑥 당기는 기분이 든댄다.

무슨 기분인지 알 것만 같았다. 초등학생이던 나도 그랬으니까.

특별한 고민이 있는 상황이 아닐지언정 이상한 순간적 우울감이 나를 덮치곤 했다.


이를테면 할머니 댁에서 돌아오는 길, 자동차 뒷자석에 누워 규칙적으로 스치는 전봇대를 보다가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할머니와 같이 살던 시절이 생각나다가도, 놀이터에서 하나 둘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갈 때의 아쉬움도 섞여서 밀려들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들은 말끔히 사라졌다. 어른의 삶을 살아내면서부터는 이유 모를 감정 덩어리들을 겪을 일은 없었기에.


다만 본가에 내려가 집 앞 초등학교를 지나칠 때면 스쳐지나가는 잔상이 있었다.


뒷자석에 누워 바라본 전봇대들, 놀이터의 그네 그림자 같은 것들.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그 감정덩어리들이 향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주야, 그건 그리움이라는 감정같아. 꼭 누군가가 그립지 않아도 이따금씩 기억이나 느낌이 스쳐지나가는 순간에 무엇인가가 그리울 수 있거든.

내가 보기엔 우주가 잘 자라고 있다는 뜻인 것 같아. 자란다는 건 과거가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우주의 예전 기억들이 많이 행복했던 것 같아, 그리울 만큼."

우주는 무척이나 공감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를 향수라 부르기도 한다며, 향수의 감정을 다룬 책을 읽어보기로 우주와 약속했다.

아이들은 신기하다. 단어나 적절한 표현을 몰라도 감정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다.


많은 단어를 알아도 내 감정을 알아채기 어려운 나로서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눈을 바라보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귀 기울이면 정확하게 표현해내는 아이들이 신기해 온 에너지를 쏟았다.

건이는 내 에너지를 느꼈는지, 문득 물어본다.

"선생님은 뭐하는 사람이에요? 작가에요? 오은영 박사님 같은 사람이에요?"​


한참을 웃다가 뭐하는 사람인 것 같으냐 물어보니, 작가 아니면 심리 상담사 같댔다.

나는 그냥 친구하고 싶은데, 부담스러울까 차마 그리 말하지는 못했다.


대화가 마음에 든다는 표현도 어쩜 저렇게 신박하게 할 수 있을까.

건이의 순수함에 반하고 말았다.


인간관계에 지쳤을 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창문을 달아서 훤히 보고 싶다는 생각을 더러 했었다.

책으로 대화한다면, 그리고 아이들처럼 책으로 '나'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책 내용에 그저 집중하는 대화라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앞으로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 생길 듯하다.

마음에 창문을 달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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