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나이, K-조선에서 표준화될 수 있을까?
01.
나잇값이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나이에 맞는 행동이나 정신연령 수준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고, 어떠한 표준값을 정해서 개개인에게 그에 따른 기대를 하는 데서 출발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각 나이에 맞게 해야하는 어떠한 행동양식이나 해야 할 일, 이뤄놨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은 우리 사회에서 유독 강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는 ‘연령주의(Ageism)’라는 개념이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쩐지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은 아니기에 낯설 수 있는, 연령주의(Ageism)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연령주의 (Ageism) : 연령에 따라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을 갖거나 차별하는 사상의 표현이나 과정을 말한다. 특히 노인들에 대하여 행해지는 행동들에 적용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 대해 단순히 연령에 의해 야기되는 불합리한 고정관념이나 차별주의를 언급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어렵게 설명했지만, 쉽게 말하자면 어떠한 개인의 능력이나 행동 양식, 사고 방식, 결정 등에 대해 그 사람의 ‘나이’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모든 것들이 연령주의적이라는 뜻이다. "어리게 군다", "나잇값 못한다", "나이 들어서 저게 뭐하는거냐", "그런 것도 다 젊을 때나 하는거다", 등등 수많은 연령주의적 발화와 표현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연령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처음 인지하기 시작한 5~6년 전 이후로 꼭 상대방을 판단할 때 이 연령주의적인 개념을 내 안에서부터 버리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실제로 나이를 서로 아예 모른 채로 친구를 만들어 친하게 지내보는 도전적인(?) 시도도 꽤 오래 했었다. 그래도 스타일이나 외모라든가 말하는 거에서, 그리고 친하게 지내다보면 얻을 수 있는 정보 등으로부터 어느 정도 나이는 쉽게 파악될 것이라고 생각 하는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꽤 그렇지 않았다. 6개월 내내 친구로 지내며 당연히 내 또래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친구 하나는, 술집 들어갈 때 신분증 검사를 하며 우연히 나이를 알게 되었는데, 실제로 나보다 8살이나 더 많은 언니였다. 생각보다 우리는 ‘나이’라는 지표 때문에 편견을 갖고 상대방을 대하고 있으며, 상대방의 어떤 특징들은 ‘그 사람이라서’가 아닌 ‘그 나이라서’로 치환되기 매우 쉽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다. 실제 나이를 알고나서 다시 돌이켜 보니, 어? 그러고 보니 또래라기엔 너무… 싶은 순간들이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던 게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02.
연령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들을 해 보며 살아가는 중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 권력’이 있는 사람 쪽에서 먼저 이를 포기해야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다. 예컨대 나이 차이가 5살 정도 나는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둘 중 한 명만이 연령주의를 타파하고 싶어하는 사람일 경우, 두 사람 관계에서 ‘나이’라는 지표가 권력을 잡지 않을 수 있으려면 그건 연상인 쪽에서 먼저 제안을 해야 가능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사람이 “우리 둘 다 존댓말 해요, 아니면 둘 다 반말하고 친구처럼 지내든가.” 라고 하기는 어려운 사회다. 나이가 더 있는 쪽에서 먼저 “우리는 나이 권력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지내자.”라고 제안을 해야 좀 더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언니, 누나, 오빠, 형 등 청자와 화자 간의 나이관계와 젠더 두 가지 정보를 동시에 드러내는 호칭이 건재한 우리 사회에서 이 같은 관계가 얼마나 많이 존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또 하나 더, 그래도 2~3살 또래 집단 간에는 나이권력과 격차를 최대한 없애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재미있는 점은 <만 나이로 쓰자>와 <만 나이 쓰면 안된다>는 움직임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데에 있다. 아니, 누구나 한 두살씩 어려지는 건데 만 나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누구나 새해가 되면 한 번씩 쉽게 하거나 듣는 말들이 “우리도 일본이나 미국처럼 만 나이로 계산해야 돼. 괜히 한 두살씩 더 먹잖아 한국은.”이기 때문에.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만 나이를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병원이나 약국, 공공기관에서 떼는 공문서, 뉴스 인터뷰 등에서 우리 나이는 만 나이로 표기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그 ‘1살 차이’가 갖는 호칭 권력과 연령주의 때문에, 이와 같은 의식적 계몽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절대 우리는 이 사회에서 공식/비공식적으로 '만 나이'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식적인 부분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평소에도 만 나이로 살게 된다고 가정했을 때 어색한 상황들이 발생하게 된다. 중고등학교 같은 반 학생들은 모두 (대부분) 동갑으로 입학하여 생활하게 되는데, 만 나이로 하게 되면 같은 반 친구들끼리 한 두살씩 나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생일이 지나고 나면 같아지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형, 언니 등의 호칭으로 바꾼다고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문화상 굉장히 어색하다. 나이 차이가 몇 년이나 한 세대 이상 나지 않는 한, 또래집단은 서로 친구로 여기고 이름이나 존중하는 호칭을 공통으로 쓸 수 있는 사회라면 아주 쉬운 움직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본인이 한 두살씩 나이를 줄이고는 싶지만, 나보다 한 두살 어린 동생들과는 친구로 지내고 싶지 않다면 본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나이권력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03.
어쨌든 끝나기는 꽤 힘들 것 같은 이 사회의 연령주의. 이 연령주의의 굴레에 대해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몇 살 어린 사람들에게 나이 권력을 쉽게 휘두른다.
“어린 것들이, 철이 없어서, 너도 나이 먹어봐라, 내가 니 나이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그러다 보니 이에 저항하기 어려운 나이 어린 사람들은 이제 나이를 가지고 나이 많은 사람들을 후려치기 시작한다.
“나이는 삼십살이나 먹어서는 스무살한테 그러고 싶을까, 나이도 많은 게, 결혼이나 할 것이지, 열등감 느끼나, 나잇값좀 하지…”
나는 일년 전, 2021년 새해를 맞아 한국 나이로 한 살을 더 먹어 30살이 됐다. 그리고 딱 한 살 더 많은 지인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주변에 듣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곳에서.
"이제 30대 됐으니까 하루하루 몸이 망가질거에요, 여기저기 쑤시고 진짜. 29살땐 몰랐는데 30살 되자마자, 어휴~ 두고 봐요. 이제 진짜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해요.”
그건 걱정이나 조언이 결코 아니었다. 저주같이 들리는 저런 이야기도 그냥 다같이 웃고 끄덕이며 듣는 얘기가 되는 사회다. 연령에 따른 신체 노화나 변화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어떤 관리를 하느냐에 따라서도 천차 만별인데,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회다. 나는 저 악담같은 이야기가 참 듣기 힘들었고, 주변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사람들의 반응도 참기 힘들었다.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연령주의의 굴레가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