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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Mieum Apr 22. 2022

25. 나는 서른살 되면 죽을 거야.

feat. 나는 늙기 전에 죽을 거야


0.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너무 외롭고 아프고 힘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나이 들어가며 점점 닮고 싶지 않은 모습들의 사람들을 만나면서였을까. 그 시작도 근거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내가 스무살이 되면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스무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지, 하는 구체적인 자살사고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냥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일 예쁠 때가 언제지? 나는 더 늙기 전에 죽고 싶다. 늙어서 아파지고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아무도 날 돌봐주지 않게 되면 속상하겠다, 하는 그런 막연한 생각들이었다. 20대 초반까지도 30대의 나를 상상하기 어려웠고, “나는 28살 쯤 죽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주변에 종종 보였다. 느리지만 꾸준히 나이를 먹으며 어느 순간 아, 나이를 먹어도 살아지는구나. 인생은 더 살수록 재미가 있구나, 내 미래가 기대된다, 하는 생각들이 더 자리를 잡아가며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러나 이 ‘늙기 전 가장 예쁠 때 죽을거야’ 라는 생각에 더 관심을 갖고 되돌아 보게 된 것은 최근 몇 년 전이다. 나 혼자 한 생각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10대와 20대를 거치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흥미로운 사실은 이 말과 생각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성(혹은 젠더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여자들에게 ‘늙기 전에 죽을거야’란 어떤 의미일까? 당장 인터넷 검색창에 서치만 해봐도 “나이 먹어서 늙기 전에 죽고 싶어”, “하고 싶은거 젊을 때 다 해본 다음에 죽을거야”, “서른 전에 죽고 싶어” 등의 (내용 전개상) 여성 작성자로 추정되는 수 많은 글들이 나온다. 조금은 다른 것 같아도 결국 본질은 비슷한 그런 말들을 여자들이 단체로 생각하는 데에는 어떤 사회문화적 요인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1. 


 어쩌면 여성들에게는 ‘나이 든 롤모델’이라는 것이 부재 되어 있기 때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많은 여성들이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거치며 윗 세대 여성들을 접할 때, “나도 나이 들면 저렇게 살아가야지”라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만족스러워 보이는 롤모델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여성들은 그들의 엄마, 할머니의 삶을 보며 나이 들어봐야 별로 멋있지 않고, 저들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자연스럽게 느끼기 쉽다. 우리 윗세대는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에 대한 인식이 우리 때보다 훨씬 덜했던 시대이기에, 지금의 시각으로 봤을 때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요소들도 많을지도 모른다. 여성들도 똑같이 공통 교육을 이수하고 자연스럽게 대학에 진출하며 고등교육을 받기 시작한 우리 세대에는 이제 ‘옛날 기준’에서의 젊은 남성들처럼 사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여성 개인으로서의 자아 실현과 성공 욕구는 커졌는데, 여전히 윗세대에서 사회 기반을 통틀어 잡고 있는 것은 남성들이다. 여전히 사적 영역 (집안일)에 머무를 수 밖에 없어 보이는 윗세대 여성들이 많다. 즉 이 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여성들에게, ‘나이 들었을 때의 나의 모습’ <희망편>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사회적으로 암시되는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 역시 젊은 여성이지, 50대 이상의 이사급 임원진급의 여성 기업인을 떠올리기도 쉽지 않다. 즉 젊고 어린 여성들은 나이든 뒤 성공하여 여유롭고 멋지게 중장년, 노년기를 누릴 본인의 모습을 ‘자연스럽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이런 사회에서 본인의 나이듦을 상상할 수 없는 여성들은, 이내 그 뒤의 삶을 ‘없음’으로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다. 젊을 시절 열심히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누릴 것을 누린 뒤,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플랜을 짜기 난처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육체 노동인 집안일이나 육아 등으로 인해 주부 습진, 관절염, 근육통 등 더 큰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것도 대부분 나이 든 여성들이다. 그들의 자주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나이 들어서 저런 꼴 보이기보단 그냥 젊을 때까지만 인생을 즐기고 죽는게 낫겠다’ 하는 생각에 이르기도 쉬울 것이다. 젊은 여성들은 본인의 나이듦을, 윗세대 여성들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그려 보기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2. 


 또 다른 영향도 있다. 우리 사회가 젊은 여성들을 나이라는 잣대로 얼마나 촘촘하게 가치를 매기는가. 여자 나이 23살부터 25살까지 인기가 많다가, 26살이 되면 인기가 없어진다는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익’ 농담은 이젠 지겨울 지경이고, 여자 나이 30살 넘으면 가치를 잃는다는 ‘상폐녀’ 농담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25살에게 ‘반오십’이라며 “여자 나이 스물다섯이면 너도 이제 꺾였다”고 낄낄대고, 남자는 나이 먹을수록 와인처럼 진국이니 괜찮다는 말도 덤. 비록 이런 부분들은 최근 4~5년간 젊은 사람들을 주축으로 많이 인식적으로 바뀐 측면들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연령주의(Ageism)가 공고한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연령주의적 잣대를 가장 직통으로 맞고 있는 것은 여전히 그 나이대 젊은 여성이다.  


 대학교에 가면 그 분위기가 더 심각하다. 돌이켜 보면 그리 크지도 않은 한 살 한 살의 나이, 대학교에서는 한 학번 사이의 선후배 관계가 그렇게 정의되며 위계 권력이 형성된다. 20살들이 22살들을 보며 ‘대선배같다’고 무서워한다. 그런 대학교 문화 속에서 여성인 학생들은 더 지나치게 나이에 따라 판가름되기 쉬워진다. 너도 이제 파릇파릇한 시대는 갔어, 너도 이제 헌내기구나, 등 나이를 가지고 쉽게 말하는 사회에서 비교적 더 관대하지 않게 적용되는 범위는 단연 20대 초반 여학생들이라는 것이다. 22살만 되도 쉽게 “내가 뭐하다 나이만 이렇게 먹었나…”를 한탄하기 일쑤고, (분명 이루고 생각하고 발전한 것이 어떻게든 있을 것임에도, 그 부분들은 축약되어 고려된다.) 20살 여학생들을 바라보며 본인은 이제 ‘한 물 간’ 사람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것이 당연하게 적용되는 사회에서 자란 여성들은 20대가 끝나가는 것, 끝나는 것, 20대 이후의 삶에 대해 훨씬 응축된 공포를 느끼게 되기 쉽다. 지금도 이렇게 본인은 나이 든 사람처럼 느껴지는(여겨지는)데, 30대가 되면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여성들의 연령주의적 측면에서 공포는 사회적으로 만연한 ‘아줌마 혐오’ 현상도 한 몫 한다. ‘아저씨’와 달리 ‘아줌마’는 쉽게 멸칭으로 불려진다. 같은 여성들 안에서 조차 서로를 공격할 때 나이 어린 사람이 비교적 나이 많은 사람에게 ‘아줌마’라고 호칭을 고의로 붙이는 경우들도 그러하다. 여성들은 누구나 어리고, 젊은 시기를 지나며 그 나이에 맞는 ‘여성 역할’, 즉 가치를 매김 당하기 때문에 (ex. 한참 좋을 나이다. 예쁠 나이다. 지금이 제일 예쁠 때구나.) 본인들의 나이 듦에 대해 적응하고 준비하고 기대할 기회를 부여 받지 못한다. 나이 들면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데, 여성은 그 나잇값에 대한 기대 조차 사회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셈이다. ‘아줌마’는 젊은 애들 노는 데 껴서도 안되고, 억척스러우며, 애나 보고 남편이나 부양해야 하는, 그런 제 3의 성으로 일컬어진다. 


'대한민국에는 남성, 여성, 그리고 아줌마가 있다.’는 밈(meme)은 오래 지속되어져 온 여성혐오적 농담이다.


 하지만 여성이라면 누구나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으면 흔히 말하는 ‘아줌마’가 된다. 어리고 젊을 때 미(美)에 대해 칭송을 더 많이 받고 ‘역시 젊고 어리고 예쁘다’는 평가를 많이 받은 여성일수록, 이 주름 잡히고 기미와 잡티가 생긴 중년의 본인에 대해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누구나 칭찬을 받는 것은 좋아하지만, 한편 어떠한 일시적 현상에 기대어 칭찬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그 조건’에만 기대고 기대하도록 만드는 행위다. 그래서 "넌 자체로 멋있고, 사고 방식과 흐름이 똑똑하고, 자신감이 있어." 라는 칭찬과, "넌 정말 예쁘고 피부도 좋아, 너가 지금 한창 예쁠 나이라 그런지 화장 안해도 예뻐, 애가 풋풋하고 귀엽고 예쁘구나”, 하는 칭찬을 지속적으로 들은 두 사람의 마인드셋은 이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뜻이다. 여성의 나이에 이토록 촘촘하게 매겨지는 가치와 그에 따른 판단들이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본인의 중년, 장년, 노년기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싫어하고 ‘늙기 전에, 가장 예쁠 때, 아프지 않을 때’ 죽고 싶어하는 단체 집단적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겠다. 



3. 


못생겨지거나 늙기 전, 가장 예쁠 때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이야기 해 주고 싶다. 

그래, 참 녹록치 않은 세상이다. 나이 든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이 사회에서는 꽤나 익스트림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가진 아름다움과 미모가 빛나던 사람일수록 스스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당신들이 조금 더 상상력을 멋지게 펼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일찍 죽고 싶은 여성의 욕망을 한다고 당신이 잘못 되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사실은 당신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발생하는 생각이라는 것과, 이를 야기한 어떤 문화적인 부분에 대해 내 생각을 이야기한 것이니, 조금은 당신도 ‘멋진 삶’ 에 대해 욕심 부려봐도 괜찮다고. 멋있게 나이들고, 멋있게 살아가고, 젊었을 때 당신이 살아가며 남기는 흔적과 삶의 방식은 미래의 당신을 더 멋지고 견고하게 만들어 줄것이라고.  

그러니, 당신도 현재의 젊음의 가치에 당신의 가치를 걸지 말라고.


나의 10년 뒤, 20년 뒤를 매일 기대하며 사는 여성으로서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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