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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선 Apr 06. 2020

딸깍발이 이발사

야매 이발소

야매 이발소    


그 시절 등굣길 중고등학교 교문 앞에는 살벌한 진풍경이 종종 연출되곤 했다. 불시에 교문 앞에 학년부장 선생님과 팔뚝에 노란 완장을 찬 선도부 형들이 무섭게 서서 아이들의 규율을 잡곤 했다. 그런 날에는 아이들은 가슴 조마조마하며 교문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삐딱하게 썼던 교모와 교복 옷 매음 새를 다시 한번 고쳐 만졌고 머리를 최대한 납작하게 하여 모자를 꾹 눌러 붙여 썼다. 하지만 영락없이 “학생!”하고 굵은 목소리가 내 등 뒤에 따라붙으면 움찔하고 얼어붙은 듯 우뚝 멈춰 서야만 했다. 일명 독사라고 불리는 학년부장 선생님이 성큼성큼 다가와 다짜고짜 모자를 벗기고는 깐깐하게 막대 자로 머리를 재보곤 구레나룻에 차갑게 이발기를 들이댔다. 바닥 위에 툭 떨어지는 살점 같은 머리카락 뭉치, 눈물이 찔끔 다 날 정도로 가슴이 아렸지만 독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른 아이들한테도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었다. 


교실로 돌아와 보면 이미 머리 한가운데로 시원스레 삼팔선이 생기거나 귀밑 추리가 희끗희끗하고, 뒷머리가 움푹 움푹 파인 아이들로 진상이었다. 마치 전쟁 통에 폭격을 맞고 돌아온 것만 같던 아이들의 까까 머리들 그날 온종일 아이들은 서로의 머리를 보며 낄낄거렸지만 방과 후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너른 운동장이 좁아 보일 정도로 고래고래 고함 소리를 지르고 번드러운 가죽 공을 뻥뻥 차며 놀기에 바빴었다. 


커다란 쟁반같은 새빨간 해가 암캉아지 젖가슴 같은 산 위에 뉘엿뉘엿 걸릴 무렵이면 나는 그제야 생각난 듯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야매 이발소로 향해야만 했다.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지붕이 납작한 스레트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피난촌으로 들어서서 찌그러진 양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엌과 딸린 헛간을 개조해 만든 허름한 야매 이발소가 있었다. 이미 좁은 이발소 안에는 아이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올망졸망 줄지어 앉아 있었고 아저씨는 다리를 찔뚝찔뚝 거리면서도 이발의자에 높다랗게 앉은 아이의 머리를 솜씨 좋게 싹둑싹둑 잘라냈다. 아저씨는 아이의 앞머리와 옆머리가 균형이 잡히고 얼핏 머리가 다 손질되면 양철통의 데워진 물을 찬물과 뒤섞어 비누거품을 부글부글 내고는 쓱쓱 면도를 해주셨다. 


“학생 이젠 됐어. 어허, 장가가도 되겠다. 머리는 수돗가에 가서 감고 가거라.”


아저씨는 아이의 머리 밑에 펼쳐진 흰 보자기를 풀며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 이발소는 야매 이발소라서 마당에 있는 수돗가가 세면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백동전 두 개를 꺼내 돈을 계산하고 인사를 꾸벅하고 문밖으로 나가면 머리카락이 자잔 하게 묻은 흰 보자기를 아저씨는 문밖에다 “탁! 탁!” 털어내곤 “다음 학생!”하고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얼핏 빠져나가고 내 차례가 되어 이발소 의자에 반듯하게 앉으면, 아저씨는 느긋하게 흰 보자기를 내 목에 둘러 집게로 목 부위의 보자기를 집고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어허, 또 머리가 밀렸네.”


커다란 낡은 거울 앞에 앉아있는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예. 오늘 머리 단속이 있어서요.”

“너무 상심하지 마라. 어차피 머리는 다시 자라는 거야. 생각지 않게 너희 학교 머리 단속 때문에 내가 대목을 봤지 뭐냐.”


아저씨는 나무 선반 위에 있던 박카스를 꿀꺽 삼키고는, 번득이는 이발기를 손에 다시 드셨다. 그때 언뜻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야매 이발소에 손님이 뜸할 때 즈음이면 장삿속으로 딸깍발이 이발사가 독사와 뒷거래를 하여 두발 단속을 한다거나, 아니면 딸깍발이 이발사와 독사는 서로 친인척 관계라는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소문이었다. 사실 그런 일은 있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말이다. 


“굳이 공부하는 학생이 머리에 온 신경을 쓰는 건 좋지 않아.”


그는 잘려나간 내 귀밑 추리를 조심스레 이발기로 살짝살짝 올려붙이고, 다리를 찔뚝찔뚝 거리며 내 앞뒤를 왔다 갔다 하며 솜씨 좋게 짤깍짤깍 가위손을 놀리다가, 아이들이 다 빠져나가 한가해지셨는지 자신이 겪었던 하얗게 지나간 옛날 얘기를 넋두리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아저씨는 6⦁25 전쟁이 터지자 고향 땅을 등지고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야만 했다 한다. 주섬주섬 쓸만한 물건들을 챙겨 등에 한 짐 지고 늙은 노모를 모시고 가려했지만 노모는 한사코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나간 아버지가 없는 빈 집을 지키겠다며 손사래를 치셨다고 했다. 아마도 노모는 피난 가는 식구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했던 모양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노모를 두고 어린 동생들과 함께 피난을 떠나야만 했다고 한다. 한참 후 동네에 불길이 치솟고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무섭게 들려왔다고 했다. 그러다 피난길에 폭탄이 떨어져 그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한쪽 다리에 파편을 맞아 절뚝절뚝 거리면서도 논바닥에 굴러 떨어진 이발기를 챙기셨다고 한다.


‘아무리 세상이 그렇다고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는 없지.’


그게 인연이 되어 그는 피난민들이나, 미군들의 머리를 깎아 입에 풀칠을 하며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하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머리가 다 깎일 때 즈음이면  


“머리에 삼팔선이 생겼다고 해서 머리카락이 안 자라는 건 아니야. 결국은 본래대로 되는 거지. 지금은 이렇게 머리카락이 잘려나가 보기 흉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되는 거처럼 말이야. 그게 세상 이치지. 서로 아무 흉, 허물없는 세상을 만드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곧 때가 올 거야. 그런 일들을 너희들이 이다음에 커서 꼭 해줬으면 좋겠다. 이 아저씨 마음은 그래.”


라며 말끝을 맺을 즈음이면 파편 맞은 것 같던 내 머리는 어느새 감쪽같이 변해있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져오곤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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