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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제 이준서 Sep 20. 2021

닭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는가

의식의 양자도약

본인이 구독하는 점성학 유튜브 채널에서는 2030년을 대공황이 오는 시기로 예측한다. 개인적으로도 수긍이 가는 점은 미국 대공황이 일어난 시기가 1929년이니 대략 100년 후가 되며 지금의 미국 달러를 위시한 이전의 파운드, 스페인 등의 기축통화 주기가 대략 100년이었으니 시기가 적절히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024년 이후 경제 호황이 일어날 것이며 그것은 곧 있을 대공황,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오기 전 전조가 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은 1929년 대공황을 통해 금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완전히 박탈하고 달러 본위의 fiat 체제를 확립한다. 그를 위해 주식 거품은 필연적이었으며 미국의 경제발전보다 더 빠른 월스트리트 금융의 행보가 필요했으며 연준의 서투른 일처리가 필요했다.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 작금의 신용 본위에서 또한 디지털 화폐의 전환을 위해 현재의 난립하는 가상자산들은 제2의 튤립이 될 것이다.


※ 튤립 버블 – 17세기에 네덜란드에서 튤립의 판매를 둘러싸고 일어난 투기 현상. 16세기 중반부터 튤립이 인기를 끌면서 일어났으며, 최초의 경제 버블 현상으로 평가된다. 튤립의 구근이 높은 계약 가격으로 팔리다가 1637년에 튤립의 가격 구조가 붕괴되면서 많은 투자자가 파산하였다.


위기는 항상 누군가에게는 기회이다. 그대는 이 기회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운동역학적 방법에 의해 인간 혹은 그 인간이 만든 저서나 영화 같은 창작물이나 그 인간들이 모여서 생긴 무형의 집단, 국가들의 의식 지도를 완성하였다. 1에서 1000까지 측정되며 인간의 경우 그 극인 1000의 의식지수에 이른 이는 예수나 부처, 크리슈나 등 극히 일부이다. 그리고 긍정과 부정의 의식의 기준은 200이며 최소 200 지수는 넘어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호킨스 박사의 책을 읽어 본 지 오래 됐지만 개인적으로는 200이 아닌 400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본다. 200 지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200의 수준에서는 내면의 참된 잠재력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단계야 말로 인생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구분하여 주는 분기점이다.
이 단계는 탐구, 성취, 결단의 영역이다.
용기의 수준에 이르면 인생이 흥미롭고, 도전적이며, 자극적인 것이 된다.
용기는 우리에게 기꺼이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게 도와주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긍정적으로 전환시켜준다.
이 수준에 이르러 우리는 비로소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기회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이 수준에 이르면 두려움이나 결점에도 불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걱정하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노력 자체를 마비시키지는 않는다.
장애물을 만난다 할지라도 잠재력을 갖기 시작한 이 수준의 사람들은 이를 자극제로서 활용한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성취함으로써 또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힘을 얻고 더욱더 용기백배하게 된다.
바로 이 수준에서 비로소 생산성이 생기기 시작한다.


※ 에너지 수준 700~1000 깨달음


이 수준은 영적 완성자의 수준이다.
강력한 영감의 소유자로서, 이들은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주는 끌개 에너지장을 형성한다.
심오한 가르침은 사람들의 정신을 앙양하고, 인간성의 자각에 눈뜨도록 부추긴다.
이러한 비전을 갖는 것은 은총이라 불리며, 이 은총에 의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육신인 나에 대한 관념이 없어져서, 운명이라는 것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육신이란 마음의 창문을 통한 의식의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몸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자아는 보다 큰 "진아"로 녹아 들어간다.


항상 깨어있는 상태이다.
이들은 손바닥에서 축복의 에너지가 발산되고 머리 뒤에는 후광이 비친다.
이처럼 신성한 은총은 1,000에 이르는 것으로 측정되며, 역사에 기록된 인간으로서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서, 이들에게는 주(Lord)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마땅하다.
예수나 부처의 수준이 이에 해당한다.

※ 7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7000만 명을 상쇄한다.

6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1000만 명을 상쇄한다.

5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75만 명을 상쇄한다.

4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40만 명을 상쇄한다.

300의 한 개인은 200 이하의 인간 9만 명을 상쇄한다.

700의 12명은 한 분의 아바타르와 같다.


※ 세종대왕 550 김구 455 마더데레사 720 소크라테스 540 마하라지 700


※ 3공화국 새마을 운동의 파급력 310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 180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사과 태도 350

박근혜 대통령 당선 당시 최순실씨 350(이후 180으로 하락)  


자세한 내용은 검색을 통하거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저서를 읽으면 된다. 특히 특정 인물이나 그 외 여러 유무형의 의식 정도를 측정하였는데 이 측정값을 100% 신뢰하지는 않으나 그 의의는 충분히 긍정할 만하다.


종교를 특정해서 집으면 초기 기독교 의식지수는 980이다. 대승불교는 960 박티요가 935 이슬람 수피교 700. 정확한 측정치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이와 확연히 대비되게 700으로 측정되는 코란과 달리 수니파 255, 시아파 250 와히브파 30이다. 순혈주의는 이래서 무섭다. 자연은 순수를 혐오하나 인간만이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 질서에 반하면 이단으로 간주한다. 오늘날 선진국의 집단의식지수는 400 이상인데 현재 아프간을 장악한 원리주의 탈레반의 상당수 문맹이라고 한다. 한 명의 깨어난 지도자는 한 국가를 다스릴 수 있으나 깨닫지 못한 다수의 위정자는 붕괴를 초래한다. 그래서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며 한 숟가락의 밥보다 한 마디의 법문이 실질적인 의식의 양자도약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다.

한 집단 또한 하나하나 개인이 모여 하나의 의식체를 이루며 그 의식체의 의식 수준, 파장, 진동수 이름은 어 되었든 그 의식의 성장이 한 집단의 성장을 부르는 것이지 그 집단에 돈이 많건 자원이 많고는 부수적인 것이다. 자원이 많고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 나라가 현재 다 선진국인가? 오히려 힘없는 나라에 자원부국은 비극을 부른다.


현재 경제상황과 비트코인 관련하여 나에게 이렇게 묻는 이가 있다. 그래서 뭘 사야 좋을까요? 아마 이 질문의 의식지수를 측정하면 200 이하일 것이다. 좀 더 높은 수준의 질문은 이렇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질문의 주체는 나가 아닌 우리여야 한다. 그리고 방법론적 질문이어야 한다. 이 질문엔 스스럼없이 답을 해 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정답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높은 수준의 대화는 이어질 것이고 현재 나와 같은 대처법을 알려 줄 것이다. 그래서 항상 나는 나의 대처법을 알려주기 전에 내가 정진하는 명상을 권한다. 부자가 되기 위한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함과 부자는 분명히 다른-- 공부는 두 가지이다. 돈 공부와 그 그릇을 넓히기 위한 마음공부. 돈 공부는 누가 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마음공부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특히 획기적인 의식도약은 명상을 권장하는 바이나 진실로 응하는 이는 거의 없다. 단순히 마음의 평화가 아닌 의식의 도약을 통해 원하는 현실을 창조하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권유이나 스스로의 깨침이 없다면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호킨스 박사의 저서들이 측정지수 800~900대이니 책을 읽어보는 것도 무방하다. 그 외 여러 종교적 경전들, 에크하르트 톨레, 유발 하라리, 인도의 여러 구루들의 말씀, 서양 철학자들 등등등. 아침 일찍 산책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하거나 여러 다큐멘터리를 섭렵하거나...... 요즘엔 유튜브에 좋은 강의나 영상들이 넘쳐난다. 방법은 넘쳐난다. 실천이 문제이다. 마음이 고요해질수록 인체를 이루는 입자들은 진동수가 증폭된다. 그리하여 생명력이 고양되고 면역력 또한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진동수 높은 물이 비싸고 고급이다.

언제 읽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현재 홍콩의 중국화, 미얀마 사태, 아프간 사태를 보며...... 과연 닭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올 것인가? 앞으로의 대공황을 대다수의 인류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나는 반드시 대공황은 온다고 믿는다. 설령 이에 대한 해답이 있다한들 인류는 과연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까? 종래의 과학이 진보가 누적적이라는 과학관을 뿌리째 흔든 토마스 쿤의 책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발전에 있어서의 혁명적 변환, 즉 패러다임의 변환을 이야기한다. 하나의 정상과학이 또 다른 혁명적 진보관을 만나 이전의 정상과학을 대체하려면 종래의 귀납적 변화가 아닌 패러다임의 혁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공황이 필요악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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