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동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우리나라의 장화홍련전 등등의 실제 내용을 보면 우리가 아는 내용과 사뭇 다르다. 외설적이고 폭력적이고 잔혹하다. 다수의 동화들이 민담을 근거로 쓰였는데 그렇다 보니 당시 중세시대의 암흑기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러다 20세기 들어 디즈니 자본과 결탁하여 오늘날의 아름다운 동화로 탄생한 것이다.
tv 드라마를 끊은 지 오래 돼었는데 ---막장 드라마가 판치는 세상이 아닌가--- 기회가 되어 오징어 게임이란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오징어 게임'
번외로 오징어 게임을 나타내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는 고조선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원방각을 떠올리게 한다. 최고(最古)의 경전인 천부경도 천지인, 원방각을 기본으로 하며 동그라미는 하늘, 네모는 땅, 세모는 인간을 상징한다. 하늘은 원만하고 땅은 반듯하고 사람은 세모, 사람 인(人)이다. 극 중 성기훈(이정재 분)의 번호가 456번. 4+5+6=15, 1+5=6. 6수는 우리가 사는 지구 즉, 3차원 물질세계를 나타내며 그래서 천부경 가운데에도 6이 자리한다. 6수를 중심으로 하여 움직이는 물질세계 지구. 그러나 물질만능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천부경, 가운데 6이 들어있다
원방각을 말하려던 건 아니지만 보는 순간 원방각이 떠올랐기에 덧붙여 보았다. 더 많은 정보를 원방각을 검색해 알아보기 바란다.
처음 말했다시피 우리가 아는 동화들 상당수가 사실 잔혹동화이다. 오징어 게임 또한 우리에게 친숙한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콘텐츠로 가져왔지만 게임의 승패에 따라 죽음이 갈리고 최후의 승자는 피 묻은 돈을 가져간다는 잔혹하고 냉혹한 현실의 축소판이다. 내용도 자극적이지만 혈흔이라든지 장기적출하는 등의 표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다소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표현의 자유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어쨌든 각인이라는 점에서는 효과를 최대로 끌어올린 듯하다.
사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어보진 않았다. 나무위키에 있는 책에 대한 설명 중 일부를 옮긴다.
"아이히만은 슈츠슈타펠 중령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인 학살 계획의 실무를 책임졌던 인물인데, 그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은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시킨 대로만 했을 뿐이라며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 책이 충격적인 이유는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아이히만이 아주 사악하고 악마적인 인물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매우 평범했다는 점이다.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엄청난 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서 결론을 내린 것은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쉽게 말해서 악의 평범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악이 특별히 악마적인 어떤 것에 기원하는 게 아니라는 아렌트의 주장은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이 책이 출간된 후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아렌트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무사유(thoughtless) 그 자체가 바로 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 아이히만의 사례를 들며 기계적으로 행하던 일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언급한다."
재판받는 아이히만
이스라엘은 종전 후 아르헨티나에 숨어 지내던 아이히만을 잡기 위해 국제법까지 어겨가며 그를 체포하여 이스라엘에 데려오고 공개재판을 통해 그의 유죄를 추정한다. 여기서 통탄할 점은 일본인이 아닌 같은 민족이면서 민족을 배신한 민족반역자들을 단 한 명도 단죄하지 못한 이 대한민국이 생각나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어쨌든 이스라엘에 끌려온 아이히만은 무뇌충이었는지 아니면 철저한 고도의 술수였는지 모르겠지만 모르쇠로 일관, 비겁한 변명만을 늘어놓는다.
그의 거짓말은 무수한 증인들의 출현으로 일단락되지만 이렇든 모든 사이코패스들의 공통점은 그에 대한 죄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좌뇌가 극단이 되면 지배 정복욕이 극단이 되어 아무 죄의식 없이 사람들을 해하고 감금하고 고문하고 죽이게 된다. 반대로 우뇌가 극하게 되면 피지배의식이 극에 달하게 되어 신의 이름으로 성전을 치르는, 극좌와 비슷한 성향을 띄게 된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하게 되니, 따뜻한 남쪽에 얼음대륙이 있는 것과 같이 보면 되겠다. 영어문법에도 지나친 부정은 긍정이라 했던가. 달을 상징하고 신에 대한 복종을 뜻하는 이슬람이 신의 이름으로 성전을 치르는 것이나 기독교 십자군 전쟁이 맥락이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악의 평범성은 아무 죄의식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 죄의식 없는 이가 권력을 갖고 신념을 갖는다면? 이 한 장의 사진으로 대신한다.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 주최자 중 한 명이 이정재에게 한 말에서 또한 그 악의 평범성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의 재미를 위해 살인게임을 고안하게 되었고 그러한 행위들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행해지게 되며 그 게임에 참여한 일반인들조차 그러한 집단 광기에 동조하게 된다. 일단의 그룹을 범죄자 집단과 교도관 집단으로 나누어 실험을 했을 때의 그 동조화 실험에서처럼, 여타의 사이코패스 영화에 나오는 사이코패스들처럼 절대악이란 사실 절대선이란 페르소나를 쓰고 도처에 숨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인간은 스스로를 점검하고 철저한 자기반성과 통찰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두 얼굴의 가면을 쓴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항상 나의 입장을 벗어나서 타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명징하게 바라보는 힘을 키워야 한다.그들은 무엇이 두려워서 저런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인가? 자기와 같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집단최면에 걸린 가면, 페르소나를 쓴 자들의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을 통해 자신의 눈(양심)과 마주치기 때문이다. 몸이라는 큰 가면을 벗어던지면 나의 영혼이 남는다. 얼굴이라는, 몸이라는 매트릭스는 방패막이 아니라 나의 영혼을 외부에 드러내는 그릇이다. 그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의 문제는 개개인의 깨달음의 정도와 비례한다. 그 깨달음의 정도와 비례하여 당신의 그릇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