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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 수집가 Jan 29. 2021

저의 '프로듀스 백' 을 소개합니다

신입 제로웨이스터의 일기장




프로듀스 백은 produce (농작물) + bag 이 합쳐진 단어로, 농작물을 담는 가방이라는 뜻이다.



처음 나에게는 이 프로듀스 백이 그저 낯설고, 조금은 불편하고, "여기에 담아주세요" 라고 말하기 어려운. 그런 천 주머니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장보기 필수템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이즈별로 손수 만들어 3-4개씩 들고 다녔는데, 몇 번 사용해보니 큰 사이즈가 더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감자, 고구마, 브로콜리 등 묵직한 식재료도 담다 보니, 작은 사이즈보다는 어느 정도 큰 사이즈에 손이 많이 갔다.



또, 꽃무늬 천으로 만든 패턴이 많은 프로듀스 백 보다는, 아무런 무늬 없는 심플한 게 사용하기 편했다. 마트에서는 가격표를 붙여주다 보니, 화려한 주머니의 경우 계산할 때마다 가격표가 어디 있나 찾게 되는 불상사가 생겼다. 그 후로는 가격표가 한눈에 보이시라고, 되도록이면 심플한 프로듀스 백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보기에는 패턴 있는 프로듀스 백이 예쁘지만 말이다.






애초에 큰 사이즈를 더 만들걸, 아쉬워하던 와중에 프로듀스 백 만들기에 딱 좋은 천이 생겼다. 결혼할 때 이케아에서 샀던 키친 크로스인데, 3년이나 썼더니 여기저기 얼룩이 많이 생겼다. 3년 동안의 나는 나름 주방일 좀 하는 새댁이었나 보다. 더러워 못쓰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질 때쯤 이케아에 갈 일이 생겨 새로 사 오게 되었다. 동시에 기존에 있던 키친 크로스는 필요 없게 되었고 -



쓰던 건 버릴 생각으로 새로 사 온 건데, 막상 또 버리자니 아까워서 깨끗한 건 다시 골라내고 있다. 주부의 마음이란... 원래는 몽땅 버릴 계획이었으나, 그나마 얼룩이 덜하고 깨끗한 키친 크로스는 조금만 더 사용하기로 했다. 얼룩이 많아 사용하기 꺼려지는 것만 추려보니 4장이 나왔다. 이 4장도 얼룩만 빼면 아직 튼튼하니 괜찮겠다 싶어, 프로듀스 백으로 만들어 재사용하기로 했다.



써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케아 키친 크로스가 은근히 크다. 한 장은 반으로 딱 접어 가장자리만 박음질했더니, 기존 프로듀스 백 중에서도 제일 큰 사이즈가 되었다. 나머지 세장은 반을 싹둑 잘랐다. 반으로 잘라진 키친 크로스를 다시 반으로 접어 박음질하면, 한 장의 키친 크로스에서 2개의 프로듀스 백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환경을 살리는 프로듀스 백이니, 그 의미를 담아 재봉틀 대신 손바느질로 만들었다. 느린 손으로 하다 보니 꼬박 이틀이 걸렸지만, 튼튼한 7개의 프로듀스 백을 보니 이틀 정성 들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토요일에는 새로 만든 프로듀스 백을 잔뜩 품고 자주 가는 마트에 다녀왔다. 처음엔 직원분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봐서 가기 불편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좋은 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주셔서 비교적 가는 길이 가벼워진 곳이다. 예전 같았으면 지갑 하나만 들고 쫄래쫄래 갔을 텐데, 이제는 장바구니 안에 프로듀스 백,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니 챙기게 되는 밀폐용기까지. 챙겨야 할 짐이 한 보따리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좀 귀찮다.



이 커다란 지구에 나 혼자만 사는 것도 아니고. 고작 나 하나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어서 늘 타협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든다. 그럴 땐 - 이제는 공감의 눈으로 바라봐 주는 상인분들의 변화를 떠올린다. 일회용품 줄이기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대형 마트나 기업에서도 관심을 갖고 좋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를 기대한다. 그러니 기꺼이 오늘도 해보자 다짐한다. 비록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시장에 포장 안된 브로콜리와 시금치가 있길래 기쁘게 구매했다. 내 사랑 시금치 - 전보다 큰 사이즈가 생기니 확실히 장 볼 때 편해졌다. 크고 묵직한 브로콜리도 거뜬히 담긴다. "비닐 대신 여기에 주세요" 라고 말하는 나를 향해 "아이고~ 예쁜 것도 가져왔네~" 라며 좋아해 주시는 사장님도 만났다. 덩달아 나까지 예쁨 받는 기분이었다.



마트에서도 비닐 대신 프로듀스 백에 감자와 상추를 담아서 가격표를 붙였다. 가격표 붙여주시는 직원분이 전과 다른 분이셨는데, 역시나 프로듀스 백을 보시고는 잠깐 멈칫하셨다. 그래서 "무게 더 나와도 괜찮아요!" 하고 속사포 랩처럼 뱉어냈다. 그러자 "안돼요 안돼" 라고 하시며 안에 담긴 감자와 상추를 몽땅 빼시는 게 아닌가 - 헐, 비닐에 다시 담으시려는 건가? 싶었다.



"저 진짜 괜찮아요! 전에도 그냥 해주셨는데"

"아유, 안돼요"

"아니 진짜 괜찮아요! 그냥 해주시면 안 돼요?"



"아니~ 여기에 담으면 무게 많이 나와서 안돼요. 이렇게 빼야 조금이라도 덜 나와요~"



프로듀스 백은 비닐보다 무게가 더 나오니까, 그 무게라도 빼주시려고 바쁜 와중에 일일이 빼서 무게를 재주시려는 거였다. 뒤에 기다리는 손님도 많았는데 말이다. 괜히 번거롭게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어 "바쁜데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해요" 라는 인사도 꼭 드렸다.



"뭐가 죄송해요! 우리는 마음만 있지, 이렇게 못해요~ 우리가 고맙지~" 라며 웃어주시는데, 인식은 이렇게 바뀌는 거구나, 마음이 뜨거웠다. 이런 곳은 정말이지 상 줘야 한다.





과일처럼 '개당 얼마' 에 파는 식재료 때문에 네트백을 사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프로듀스 백은 속이 보이지 않아 뭐가 얼마큼 담겨있는지 보려면 일일이 열어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망사로 된 프로듀스 백이나 네트백을 이용하면 속이 잘 보여서 하나 있으면 좋겠다 - 싶었는데, 빨래를 하다가 딱 좋은 걸 발견했다.



빨래망!



집에 빨래망이 사이즈별로 넉넉하게 있어서, 하나쯤은 장보기 용으로 사용해도 괜찮겠다 싶어 장바구니에 챙겨갔다. 저기에 사과를 담고 있으니 옆에 계신 아저씨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실제로 사용해보니 완전 찰떡이다. 안사고 계속 고민하길 잘했다,





이번 장보기 목록에는 우유, 소스류 등 사야 할 게 많아서 3만 원이 넘을 것 같았다. 3만 원 넘으면 무료배송인 마트여서 지난번 배송될 때 챙겨뒀던 비닐을 가져갔다. 저 비닐은 엄청 크고 튼튼해서 그동안 재활용 쓰레기 버릴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해왔다. 하지만 비닐이 분해되는 데에 500년이 걸린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이 비닐도 최대한 사용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에 어떤 분께서 '마트에서 발생하는 일회용 비닐도 얼마든 재활용할 수 있다' 는 글을 남겨주셨는데,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이 비닐도 다음번 배송에 재사용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계산할 때, 가져온 비닐을 건네며 "이거 다시 가져왔는데, 여기에 담아서 배송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조심스레 물었는데 예상외로 너무 좋아해 주셨다. 계산하시던 직원분도, 비닐에 물건을 담아주시던 직원분도. 입이 닳도록 나를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머, 비닐 사용 안 하시려고 주머니 갖고 다니시는 거예요?"

"어머 이건 사과네? 진짜 대단하시다!"

"자기야 이거 봐~ 이거 비닐도 다시 가져오셨어, 얼마나 예뻐!"

"와 진짜 신박하다! 대단하세요!"



마음 따뜻했던 피드백은 잊혀지기 전에 꼭꼭 기록해두려 한다. 힘이 되는 따뜻한 말들이니까.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저 제로 웨이스터에요" 라고 말하기에는 완벽하지 않기에 부끄러운 부분이 참 많다. 종종 타협하게 될 때도 많고. 남들 눈에는 '뭐야, 플라스틱을 이렇게나 많이 사용하면서 무슨 제로 웨이스트야?' 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다.



종이팩에 담긴 우유를 집어 들었다가 유통기한이 3일이나 길다는 이유로 바꿔 집은 1+1 테트라팩 우유, 500ml 작은 병 하나만 사도 됐는데 세일한다는 이유로 과소비한 간장, '시장에서 파는 비지는 양이 너무 많으니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산 콩비지까지. 나는 아직도 이렇게나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계속 이렇게 기록을 하는 이유는 -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나의 작은 움직임이 누군가에게도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실제로 블로그에 작성했을 당시, 함께 동참하겠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었다) 나 역시 하면 할수록 삶이 더욱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비록 '페트병'에 담긴 주스와 '플라스틱 컵'에 담긴 편의점 커피의 달달함 앞에서 무너지는 날도 있지만 말이다.



2020. 3. 30. 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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