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ner for 4
한국의 추석이 어김없이 돌아오듯 미국의 추석인 '떙스기빙데이'가 되었다.
'떙스기빙데이'는 미국의 가장 큰 명절이며 매년 11월의 마지막째주 목요일이다.
연휴이기는 하나 학교나 기업체나 개인사업자 들이나 모두 각자만의 룰대로 연휴를 지정한다.
일주일을 통째로 쉬기도 하고, '땡스기빙데이'인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쭉 쉬기도 하고, 야박하게 목요일 하루만 쉬라고 하고 금요일에 출근을 시키기도 한다.
어쨌든 연휴이니 화요일쯤부터 차가 막힌다. 고향집으로 짐을 잔뜩 싣고 운전하여 가기도 하고 공항도 거의 전쟁터 수준이 된다.
모두들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 온 식구를 만나는 날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친척하나 없이 달랑 넷이서 사는 우리는 '떙스기빙데이'가 되면 늘 여행을 떠났었다.
갈 데도 없고 올사람도 없으니 신혼때 살던 바닷가 마을에 호텔을 잡아 연휴 내내 머물렀었다.
식구들을 찾아가느라 난리가 난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마음이 허전하고 이상했었으리라..
그렇게 이상한 명절을 지내던 우리는 몇 년 전부터 명절에 여행을 가지 않게 되었다.
내 생각엔, 넷이서 보내는 명절이 더 이상 쓸쓸하지 않게 된 것 같다.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면서 우리만의 명절을 보내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일단 명절이니 만큼 명절음식을 먹어야 한다.
우리가 추석에 '송편'을 먹듯이 미곳에서는 '땡스기빙데이'에 칠면조 구이를 먹는다.
치킨요리도 못하는 내가 어떻게 그 커다란 칠면조 요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조류요리를 못하는 사람이다. )
칠면조 요리대신 스테이크로 메인을 바꾸고 호박수프 대신 버섯수프로.. 사이드 디쉬로는 가을 사과를 넣은 샐러드와 알감자를 말돈소금을 뿌려 구워낸다. 내 마음대로 파스타도 조금 곁들이고 그래도 한 가지 그들이 '떙스기빙데이'에 꼭 먹는 빵인 콘브레드는 만들어 함께 먹는다. 크렌베리를 흩뿌려 테이블을 장식하고 와인에도 털코트를 입히니 앞서가는 패션에 지나치게 민감한 미녀처럼 자태가 예술이다.
성인이 되어 독립한 큰아이가 하루 자고 간다며 짐을 들고 들어서며 '해피 떙스기빙'을 외친다.
우리들의 파티는 시작이다.
나이프와 포크가 바쁘게 움직이며 음식을 먹는다.
열명은 먹어도 되는 음식을 차려놓은 나에게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덕선이 엄마 냐며.. 웃기려고 그러는 거지? 라며 식구들은 나를 놀린다.
남편과 둘이 유학길에 올라 참 많이도 당황하며 살았다.
우리는 어렸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수 없었고, 우리만 달랐고, 우리만 혼자였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태어나고 자란 땅을 떠나 새 터전에서 자리를 잡고 살았다.
분신 같은 두 아이를 더듬거리며 키워냈고, 수 없이 외로운 날들을 웃픈 농담을 하며 버텨 내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았더니 오늘이 되어 시작한 날이 까마득히 먼 곳에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 산 날들이 태어난 땅에서 산 날보다 많게 되었다.
그 남자와 그 여자는 그렇게나 불편했던 곳이 이제는 집이 되어 그 어느 곳에 있는 것보다 편안하게 되었다.
전쟁터에서 동고동락한 전우처럼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서로를 생각하면 가슴이 늘 저릿하다.
이제는 다 커버린 아이들을 옆에 앉혀두고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다 둘이 눈이 마주치면 그 남자는 그 여자를 보며 싱긋 웃는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