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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블루 Dec 05. 2024

브런치북 '널 보낼 용기'의 송지영 작가님께 드립니다.

어제는 글을 단 한자도 쓰지 못했다.

가슴이 먹먹해서 식구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 혼자 딴 세상에 있었다.

내 마음은 브런치 작가인 '송지영 작가'의 옆에 있었다.

송지영 작가는 브런치 스토리 요일별 연재에 글을 쓰는 작가이다.

작가님은 스스로 삶을 마감한 딸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을 담담하게 글로 적었다.

유가족들에 대한 책을 찾아보다가 찾을 수가 없어서 직접 적어보기로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이에 대한 기억이 조금이라도 잊혀질까봐 .. 그래서 또 글로 남기기로 했다고 한다.


나의 루틴인 밤 샤워를 마치고 룰룰루 책상에 앉아 글을 쓰려고 했다.

잠깐 둘러본 브런치 스토리의 메인 페이지 중에 나와있는  '송지영 작가'의 브런치스토리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녀의 숨 막히는 마음의 이야기를 읽다가 오늘은 더 읽을 수가 없어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의 페이지를 펼쳐 글을 쓰려고 했지만..... 단 한자도 적지 못했다. 그리고 그냥 침대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새벽 6시에 눈을 뜬 나는 그제야 흘러내리는 눈물에  베개를 한가득 적셨다.

어제는 감히 그녀 앞에서 울지 못했다.


몇 년 전 지인의 대학생 딸아이가 스스로 삶을 버렸다.

가장 친한 단짝 친구가 삶을 버린 방법 그대로 기숙사 방에서 일을 벌였고, 그 일은 실패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인은 살이 10kg쯤 빠졌고 바스러질 것처럼 연약해졌다.

성경의 '욥기'를 읽으며 버티다가 욥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자식까지 빼앗긴 고난을 모두 참아낸 욥에게 하느님은 자식을 다시 주셨지만,  자신에게 그렇게 해주신다고 하여도 하나도 기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다시 주신 자식이 그 아이는 아니잖아요..'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날부터 1년째 그녀의 딸아이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얼마 전 브런치 스토리에서 읽게 된 어느 작가님의 글에 댓글을 달았다.

그 작가님은 자식을 잃고 있는 있는 힘을 다해 본업에 복귀해 살아가고 계셨다.

태명이 '튼튼이'라고 하셨는데, 맨 먼저 댓글을 다신 어느 작가님이 자신의 아이도 태명이 '튼튼이'였는데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나의 둘째 아이도 태명이 '튼튼이' 다.

나의 댓글은 이랬다.

'태명이 튼튼이였던 제 아이는 튼튼하지 못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늘 깊은 슬픔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습니다. 애써 잘 지냅니다.'

내 댓글에 작가님은 나를 위로한다.

'작가님 힘내세요.. 제가 위로가 되지는 못하지만 그 슬픔이 글을 쓰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연히 만난 세 사람의 아이의 태명은 모두 같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이를 먼저 보냈고, 한 사람은 슬픔과 아이를 함께 데리고 살아간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글 몇 자로 서로를 위로한다.

그 몇 자의 글은 얼굴 맞대고 앉아 반나절씩 받는 위로보다 나을 때가 있다.

위로가 오히려 상처가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지인들의 모임이 있었다.

한 지인이 가출했다 돌아온 아들 때문에 속상하다며 울고불고 하자 다른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너 보다 누구가 ( 그 누구는 나였다.) 훨씬 더 힘들어...

이 말은 나를 위로함이었을까... 가출했던 아들을 둔 지인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을까...

가만히 있다가 소환되어 이상한 위로를 받은 나는 며칠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으로 살았다.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처음엔 믿지 않았다.

그다음엔 분노였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그러고 나서 밞는 수순은 체념과 지독한 우울감이었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들은 모두가 똑같이 이런 수순을 밞는다고 한다.

그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 PTSD를 격은 것과 똑같은 정신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극심한 정신적 외상을 경험하고 나서 제대로 삶을 이어나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 아픈 아이를 매일 보며 어떻게 제정신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한 부류는 그대로 삶이 망가져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되고, 다른 한 부류는 경험한 그 외상으로 인하여 자신의 삶을 한층 더 높이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시야와 생각의 폭이 엄청나게 넓어져 정말 잘 살 수 있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두 번째 부류에 속해 내 아픔에 나의 삶을 송두리째 잡아 먹히게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 준비가 되면 내 아이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 이런 대사가 있다.

남편에게 늘 맞고 사는 '현남'이 하는 말이다.

'저는 남편에게 맞고 살지만 명랑한 년이여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저는 튼튼하지 못한 아이가 있지만 명랑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윌리엄 해밍턴의 시를 생각하며 매일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부디, 송지영 작가님도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나시길.. 그리고 찾아낸 천 개의 지역에서 얻어온 마음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끊임없이 들려주시기를  바란다. 내내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너의 시선을 안으로 돌려라.

그러면 너는 마음속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을 여행하라.

그리하면 마음속 우주지리학의 전문가가 되리라.

(윌리엄 해밍턴의 시 나의 명예로운 친구. 기사에드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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