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집안팎 크리스마스 장식을 쉬기로 했다.
나의 야심 찬 계획을 이야기하였더니 남편이 펄쩍 뛰며 좋아한다.
하기야 나는 방울이나 달며 즐거워 하지만 노동의 몫은 늘 남편 차지였으니 말이다.
생나무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다 나르는 일부터 지붕에 뺑 둘러가며 라이트도 달아야 하고 사다리를 타고 몇 번을 오르내려야 겨우 조금 했다 하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된다.(아무리 해도 저들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발뒤꿈치도 못 따라간다.)
올해는 여러 가지로 마음도 안정이 안되고 하여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며 즐거워할 자신이 없었다.
과감히 생략하고 남의 집 장식을 구경하며 지내기로 하고 나니 마음이 더 편한 것 같다.
일요일에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옆집 G 아저씨가 사다리에 올라가 본인집 지붕밑에 라이트를 달고 있었다.
집에다 차를 세우고 옆집으로 쪼르르 달려가 G아저씨의 사다리 밑으로 가서 쫑알댄다.
'나 이번 연도 크리스마스 장식 생략하려고..'
G아저씨는 쉬지 않고 일하며 사다리 밑에 있는 나한테 크게 소리친다.
'내가 허락할게!'
나는 '고마워! 하고 말하며 집으로 들어간다.
미국은 정말 이벤트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1년의 시간을 이벤트를 하려고 사는 것 같다.
큰 날들만 나열해도 New Year's Day를 시작으로 2월에 발렌타인데이, 4월에 부활절, 7월에 독립기념일, 10월에 할로윈, 11월에 떙스기빙 데이 , 12월엔 크리스마스다. 헥헥...
이 모든 날들을 테마로 하여 집안 장식을 바꾸고 집 밖에도 꾸민다.
발렌타인 데이는 하트로, 부활절은 계란과 토끼로, 독립 기념일은 국기로, 할로윈은 귀신과 괴물로, 떙스기빙은 칠면조로, 크리스마스는 색색의 방울과 산타와 셀 수도 없는 전구로 집을 휘감는다.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이웃이 할로윈 데이를 위해 차고 앞에다 귀신집을 짓는 것을 보고 졌다 싶었다.
진짜 나무를 가져다 집의 형태를 만들고 귀신집을 지어 할로윈날 오픈을 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방문을 했다.
나도 빠질세라 줄을 서서 들어가 봤더니 어디서 모래까지 가져다 깔고 해골을 잔뜩 묻어 두었다. 몇 개의 방을 만들어 각각의 귀신과 괴물로 꾸미고 진짜 사람까지 동원해 흰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이 분은 이 날을 위해 1년을 살았나 싶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귀신의 집보다 재밌는데' 하고 칭찬을 하니 대머리의 이웃 아저씨는 너무 좋아서 귀가 입에 걸린다.
걸어서 집에 오며 생각했다. 저 귀신집을 언제 철거하고 치우냐.. 도와주고 싶다 쩝..
이벤트를 해야 하는 날들 말고도 아이들에게 해줘야 하는 행사들이 또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Tooth fairy' 이빨요정 역할이다.
아이들의 젖니가 빠지게 되면 그 이빨을 베개 밑에 두고 자게 한다. 그러면 부모가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이빨을 가져가고 동전을 놔둔다.
아이들에게는 요정이 와서 너의 헌이를 가져갔으니 조금 기다리면 새이가 나올 거라고 하는 것이다. 너의 헌이를 가져가는 대신 요정이 돈을 두고 갔다고...
큰 아이가 어릴 적 젖니가 빠져서 이를 베개 밑에 두고 자라고 했다. 요정에게 주어야 하니..
밤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얼른 가서 이빨을 가져오고 동전을 두고 오라고 시켰다.
남편은 아이가 깨지 않게 할 자신이 있다며 냉큼 가서 빠른 속도로 일을 수행했다.
아침에 아이가 이상한 얼굴을 하고 안방으로 왔다.
그리고 너무 놀란 목소리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근데 요정이 돈은 두고 갔는데 이빨은 안 가져갔어....'
어째 일의 수행이 너무 빨랐다 싶었다.
베개밑에 동전은 두고 왔지만 아이의 이빨을 안 가져온 것이다.
'아~~~ 어제 이빨이 너무 많았던 모양이네.. 무거워서 못 가져갔나 보다. 오늘은 가져갈 거야~~~~'
당황해서 목소리는 한층 높아지고 아이가 안볼때 남편에게 눈을 흘겼다.
좋아하는 티브이채널에서 크리스마스 날까지 하루종일 크리스마스 영화를 틀어준다.
전기담요를 켜서 따끈하게 만든 다음 고양이를 안고 티브이 속의 크리스마스 영화를 본다.
밖에 눈은 없고 야자나무만 무성하지만 제법 춥고 연말 분위기가 난다.
크리스마스 장식 한번 생략했다고 다른 크리스마스보다 몸이 편하다.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일을 과감히 생략하던지, 아니면 다들 안 하는 일을 나 혼자 해보던지, 하며 나 만의 시간을 살아보자.
다들 하니까 나도 하고 그런 것 말고 말이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시크하게 보내고 싶다는 나의 마음의 편을 들어준다.
'저기 말이야... 그러니까 말이야.. 까짓 거 너 하고 싶은 대로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