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E.
멕시코 사람이다.
그녀를 처음 만나건 18년 전쯤 되는 것 같다.
나는 남편과 둘이 미국에 살고 있으니 아이들을 키우며 친정엄마나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체력까지 약했던 나는 아이들을 혼자 키우며 구석구석 청소까지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정말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빠듯한 생활비를 쪼개 지인의 집에 오는 청소 도우미의 사촌 언니인 E를 소개받게 되었다.
잠깐일 것 같았으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코로나 때를 제외하고 그녀는 2주에 한번 나를 만난다.
18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녀는 2주에 한번 나의 집을 방문하여 침대시트를 갈아주고, 화장실 청소를 해주고, 창문을 닦아주고, 부엌청소와 스팀기로 마룻바닥을 닦아준다.
그녀가 아침 8시 30분 이면 들이닥치기 때문에 나는 7시 30분 정도부터 그녀를 맞이할 채비를 한다.
물건들을 제자리로 들여보내고, 그녀의 청소기에 걸리적거릴만한 것들은 모두 치운다.
새 침대시트를 꺼내 가지런히 두어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게 한다.
화장실의 쓰레기통을 비워놓고, 변기에 혹시 남편씨가 흘린 옐로 물질이 묻어 있는지 확인하고 있으면 물티슈로 닦아 놓는다.
그녀의 손에 더러운 것을 닿게 할 수는 없다.
부엌에는 설거지 거리가 절대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부엌청소를 할 때 자질구레한 일에 그녀의 에너지를 쏟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이렇게까지 못했지만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나도 여유가 생겨 그녀를 최대한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다.
그리고 그녀가 등장하면 나는 그녀의 눈에 띄지 않도록 피해 다닌다.
청소하고 있는데 지켜보고 있지 않는 것은 나의 그녀에 대한 예의이자 의무이다.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들어서며 하는 하이~ 와 청소를 다 끝낸 그녀가 오케이~라고 외치면 페이를 하고 떙큐 소 머치~ 정도의 대화가 전부이다.
몇 년 전 급하게 그녀를 찾아야 할 일이 생겼었다.
갑자기 연락을 했는데도 바로 달려와준 그녀에게 고마워 고마워.. 하고 말했더니 그녀는 단어만 나열한 영어로 수줍어하며 말했다.
'나 너의 집 청소하는 거 좋아'
나는 그녀의 그 대답을 듣고 하루종일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 거리를 지키는 그녀와 딱 한번 살을 비비며 밀착했던 사건이 있었다.
숨 가쁘게 바쁜 날이었고 중요한 미팅이 있었다.
정신이 벌써 그 미팅에 가 있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나는 2층에서 아래층으로 난간만 안 타고 내려왔지 거의 그 정도의 속도로 돌진하며 내려오고 있었고 E가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노!!!!!!!!!!!!!
그녀는 마룻바닥을 닦으려 바닥에 물을 잔뜩 칠해 놓은 참이었고 계단을 달려 내려온 나의 발은 물을 칠해 놓은 미끄러운 바닥에 닿자 발뒤꿈치로 슬라이딩을 하며 몸 전체를 공중에 붕뜨게 했다가 바닥에 떨어지게 했다.
코믹만화에 나오는 장면과 비슷했으리라 여겨진다...
2층에 있었던 남편 말로는 누군가 양지머리 고기를 세게 내다 꽂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나도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살과 뼈가 동시에 내쳐지는 그런 소리...
그리고 처음 느껴보는 지독한 아픔...
그녀는 걸레를 내던지며 달려와 바닥에 엎어져 있는 나를 품에 안았고 나는 너무 아파서 그냥 그녀의 품에 안겨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미팅에 꼭 가야 했던 나는 한쪽팔로 울면서 운전해서 미팅에 갔고 (남편도 일이 있어 데려다줄 수 없었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다. 시꺼먼 멍은 다음날부터 나를 반기며 빙그레 웃고 있었지만...
그때부터 그녀는 나를 위해, 나의 부주의함을 위해, 아무 말 없이 계단 마지막에는 수건을 깔아 두어 나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을 방문할 일이 있어서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 생길 때에 우리 고양이들을 보살펴 주는 사람도 그녀다.
고양이들이 나이를 먹어 지켜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요즘엔 카메라를 설치한 후 여행을 떠난다.
E에게는 카메라를 설치한 이유가 그녀를 감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고양이들을 살펴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 머물던 어느 날 고양이들을 보기 위해 카메라를 켰더니 때마침 그녀가 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녀는 워낙 숫기가 없어 우리 고양이들을 봐도 늘 본척만척이었는데 아무도 없을 때 그녀는 고양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정말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살짝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보는 그녀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몇 주 전, 앞으로의 스케줄에 대해 물어본 날 그녀는 말했다.
고향에 집을 짓고 있다고... 집이 다 지어지는 일 이 년 후면 고향에 돌아갈 거라고..
아... 그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앞으로 일이 년 후에 나는 그녀와 헤어지게 되는 거였다.
우리의 인연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이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 동안 우리 아이들은 다 컸고, 나의 고양이들은 언제 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고, 아마 나와 나이가 비슷할 것 같은 그녀의 머리에도 눈에 띄게 흰머리가 늘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나의 삶은 훨씬 훨씬 고단했으리라는 것을 나는 장담을 하며 말할 수 있다.
그녀가 있어서 나는 깨끗한 욕조에서 아이들을 씻길 수 있었고 아이들은 잘 닦아놓은 바닥에서 놀 수 있었고, 우리는 맑은 창문으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우리 집을 돌봐주지 않는 삶은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 기쁘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녀가 새로 지은 집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며 지내는 상상을 한다.
18년 동안 그녀와 나는 백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그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