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떠밀려 떠나는 제주일년살이 프로젝트
1년짜리 큰 프로젝트가 던져졌다. 가진 자원과 멘토도 없는데, 팀원이라고는 글자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 하나뿐이다.
아이와의 제주일년살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짙어지는 새벽의 적막만큼 내 안의 두려움도 더 짙어져갔다. 세상 평온하게 잠든 아이와 남편의 얼굴을 살폈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발 뒤꿈치를 한껏 쳐들고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왔다. 컴퓨터를 켜고 의자 위로 툭 몸을 내던졌다.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초록 검색창을 띄우고 키보드 위로 열 손가락을 올린 채, 모니터 째려보기를 한참.
“뭐부터 알아봐야 하나?”
신기하리만큼 무지했다. 내가 책임지고 계획하는 첫 여행이긴 했지만, 8번째 제주 여행이기도 했다. 그동안 여행에 얼마나 무관심했고 여행을 이끄는 남편에게 무심했던 것인가?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굵은 사슬 되어 온몸을 옭아맸다. 거기에 막막함이라는 무거운 봇짐까지 짊어매고, 감상주의의 늪에 깊이 빠져들었다.
방 안 가득한 시계 초침 소리가 내 귀를 두드렸다. 정신을 차려야지 어쩌겠는가. 남편의 연차 일정에 맞춘 출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딱히 돌이킬 방법은 없으니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일단 단순하게 ’제주일년살이‘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몇 개 안 되는 글과 연관 정보로 뜬 ’제주한달살이‘를 생각 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 무의미한 시간 때우기도 잠시, 나는 또 한참을 멈춰 서야 했다. 티끌 같은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와 머리를 헤집고 가슴을 후벼팠다.
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 천국이라고?
아니, 나의 현주소는 ’지옥‘이었다. 육아 우울증부터 고부 갈등과 이혼 위기 그리고 남편 병간호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이 제안한 제주일년살이는 사실상 ‘별거’의 허울 좋은 포장이 아닌가? 그러나 거절할만한 핑곗거리가 없었다. 그가 앞세운 아이와 건강 보다 더 큰 대의명분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 인생 가장 밑바닥에서 등 떠밀려 결정된 제주행.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딴섬으로 강제 귀양살이를 떠나는 억울한 기분이었다. 그 나락의 순간에서 ‘파라다이스’를 마주하다니! 슬쩍 엿본 그 누군가의 천국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했고, 낯설면서도 부러웠다. 복잡한 심경에 또 다시 머리가 멍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천국과 지옥의 괴리를 느끼며 현실로 돌아왔다. 볼품없이 일그러진 내가 보였다. 쪼그라든 풍선에 바람을 밀어넣듯, 온몸 가득 빵빵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그 숨에 실어 내 속 안의 부정적인 것들을 밖으로 뱉어냈다. 있는 힘껏 뱃속 장기 구석구석까지 쥐어짰다. 심장이 뛴다. 멎었던 뇌와 팔다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그 순간 결단했다. 바꿀 수 없는 상황은 받아들이고 내 마음을 바꾸기로.
“귀양살이면 어때? 오히려 좋아! 남편이 허락해준 합법적 현실 도피인데, 다 내려놓고 좀 쉬다 오자. 그 옛날 귀양살이를 떠났던 선조들에게도, 제주는 재기를 꿈꾸며 자신에게 몰두하고 충전하는 힐링 명소이지 않았겠나?“
현실을 잊기로 했다. 나만의 파라다이스를 찾아 제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