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새로고침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효니 Jul 06. 2023

고혹한 활의 노래

박수예

© 이대희 / 헤어 & 메이크업 강다슬 스타일링 김수정


언젠가 가을밤을 수놓은 레지에로(leggiero, 가볍고 경쾌하게)와 피치카토(pizzicato, 현을 손가락으로 퉁기는)가 지금도 가슴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을 상징하는 파워풀한 연주에 길든 귀가 낯선 음악과 강렬히 공명하는 순간이었으니까. 악마의 재능이라 일컫는 파가니니를 이토록 따스하게 재해석한 연주자가 있었는지. 늘 새로운 작풍을 선보인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의 천재성이 재림한 듯 느껴질 정도였다. 이처럼 그날의 기억에 깊숙이 자리한 연주를 선보인 사람은 열여섯 살에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을 녹음해 화제가 된 2000년생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다.


네 살 때 처음 바이올린 활을 움켜쥔 박수예는 2009년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교 울프 발린 교수를 사사하며 본격적으로 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콩쿠르 대신 공연과 음반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했다는 것. 콩쿠르 출전을 반대한 울프 발린의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다. “너무 어린 나이에 콩쿠르에 집중하면 음악을 대하는 감정이 좁아질 수 있다고 하셨어요. 또래 연주자의 콩쿠르 소식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선생님의 가르침 아래 제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기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저를 만든 것은, 기본기를 갖추고 저만의 음악성을 키우기를 바란 선생님 덕이 커요.”


아직 20대 초반의 신예 바이올리니스트지만, 박수예의 이력은 중견 연주자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까지 다섯 장의 인터내셔널 음반을 발매했기 때문. 그중 세 번째 음반 <세기의 여정>(2021)은 영국 잡지 <그라모폰>이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했고, 지난 4월에 발매한 <시마노프스키: 신화>는 섬세한 연주를 선보였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그런 박수예의 음악을 두고 <그라모폰>이 ‘탁월한 해석과 뛰어난 기량,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연주자’라는 평을,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협주곡 리코딩 제안을 한 건 기위 유명한 사실. 일찌감치 차세대 스타 자리를 예약한 박수예의 행보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따뜻하고 솔직한 음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단순히 음만 연주하지 않기 위해 작곡가와 작품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또 경험의 폭도 넓히고 있죠. 제 마음이 음악에 녹아들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2023.07]



매거진의 이전글 Dramaturg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