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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용 Dec 17. 2024

엄마 여기 있어

doing 아닌 being

수안이가 6개월 즈음 되었을 때 삶은 달걀을 만지작거리다가 달걀 껍질을 먹어 응급실에 갔었다. 당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 보호자 1명만 출입이 돼서 내가 수안이의 보호자로 옆을 지켰었다. 옆 침대엔 예쁜 여자아이와 아빠가 있었는데 간호사가 검사를 위해 피를 한 통 뽑아가자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 아빠는 아이를 달래려 안고 토닥였다. "괜찮아, 아빠 여기 있어"라고 말하며 아이를 꼭 안아줬다.

그 말은 나도 줄곧 아이를 달랠 때 하는 말이었다. 아이가 곤경에 처해 울거나 힘들어 할 때 "엄마 여기 있어"라고 하면 아이는 차차 울음이 잦아들었다. 엄마가 옆에 있다는 말이 최고의 위안인 듯 했다. 그 어떤 효력 있는 약보다 엄마가 곁에 있는 게 제일이었다.

내가 최근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엄마표'다. 육아를 하다보면 엄마표라는 말을 진절머리나게 듣는다. 엄마표 이유식, 엄마표 유아식, 엄마표 놀이, 엄마표 영어, 엄마표 수학 등 오만 데에다가 엄마표를 붙인다. 엄마의 양육효능감을 위해 아이가 도구가 된 느낌이다.

엄마는 존재로 충분하다. 아이들은 엄마가 뭔갈 해주는 것보다 엄마가 곁에 있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육아를 하면서 엄마의 자존감만큼 중요한 게 없다. 엄마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란 확신이 없으면 더운 아이에게 계속 옷을 입히고, 배부른 아이에게 계속 먹인다. 우리는 존재 자체로 아이에게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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