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원래 맞는 걸까
71일이 지났다.
연말인데 가장 바쁜 거 실화일까? 연말이 되니까 일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인사평가 시즌
-연말보고/내년계획 프레젠테이션
-마케터 채용 프로세스
-레귤러 업무
-연말행사
-비자발급 프로세스
-인터뷰 플래닝
+압박/스트레스
이 모든 것들이 12월에 돌아갔다. 12월은 사람들이 일을 많이 안 하는 시즌인 줄 알았는데 이곳은 달랐다. 나는 거의 매일 노트북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밤 10시 11시까지 작업을 하기 일쑤였다.
내가 이렇게까지? 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지난주에는 정말 이러다 쓰러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몸이 안 좋았다. 금요일까지 해야 하는 업무들이 쌓여있어서 월요일부터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수, 목은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월, 화에 어느 정도는 다 해놔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 부담 때문이었는지 오히려 더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월, 화 에너지를 다 끌어다 써서 그런지 수요일 오전부터 컨디션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일은 쌓여있는데 약속을 캔슬할까도 생각했는데 뭔가 한숨 돌릴 시간이 필요한 듯해서 약속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 친구가 집까지 데려다주는데 그때부터 몸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머리는 띵하고 몸을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아주 무겁게 느껴졌다. 헤비 한 음식 때문인지 쉬는 순간 풀어져서 그런 건지 전에 느끼지 못한 피곤함이었다.
어째 저째 목요일이 되었고, 오전에 모두가 내게 피곤해 보인다고 할 정도로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오전을 버티고 반차를 쓰고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고, 그때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검진 결과도 그것을 증명했다.
몸 상태가 메롱 이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거기에다가 허리까지 아파와서 더더욱 집중이 안 됐다. 하지만 내일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었고, 나는 뭔가 보여줘야 된다는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에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완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지만, 나의 기분은 땅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진짜 내일 못 갈 것 같은 몸 상태였지만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구글 시트를 열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자고 마음을 먹고, 하나하나 해나갔다. 공용 테이블에 같이 앉아서 작업하는 사람들을 보며 동지 삼아서 나도 힘을 내봤다. 그게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그때는 첫 스타트를 제대로 못 끊을 것 같았다. 더 이상 물러날 때도 피할 수도 없었다.
온전히 나와의 싸움이었다.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나를 위한 싸움이었다. 그렇게 나는 1차 프레젠테이션 덱을 완성시켰다. 그 시각은 오후 10:30분. 그렇게 나는 노고에 지친 무거운 몸을 끌고 나왔는데 택시 또한 잡히지 않아서 터덜터덜 집까지 돌아왔다.
다음날, 디데이.
상태는 더더욱 안 좋았지만 오늘은 미팅 2개, 프레젠테이션, 면접, 송년회까지 있는 날이라 빠질 수도 없는 날이었다. 오전에 마케팅 미팅-영업마팅 후 나는 제법 날이 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뭔가 날카로워지고 평소에는 아무 의미 없는 한마디가 신경 쓰였다.
점심시간 직후에 바로 면접 심사관으로 들어갔는데 지원자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같이 일할 사람 고르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걸 사업했을 때 이후 오랜만에 느껴본다. 그렇게 힘이 쭉 빠져서는 3시 연말보고 전 마지막까지 프레젠테이션을 손봤다.
3시 정각 대회의실. 팀장, 상무, 대표급만 참여했다.
긴장이 되는 듯하면서도 피곤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나름 파워가 필요해서 파워 블랙 블레이저를 입었다. 웬걸 내가 첫 번째 순서로 정해졌다. 오히려 다행일까? 빨리 이걸 해치워 버리고 싶었다. 나는 프레젠테이션 덱을 열어서 피티를 시작했다.
영문으로 작성해서 두 가지 버전을 만들 시간은 없었기에 영문덱을 보면서 한국어로 피티를 했다. 처음에 미리 덱을 안 보냈다는 점, 다른 팀원 업무 내용을 패스했다는 부분을 코멘팅 하시길래 조금 기분이 상한 상태로 시작을 했다.
쨌든 나는 준비한 것을 쭉 프레젠테이션 진행을 했고, 중간중간 질문 혹은 설명을 요청해서 차분히 답변을 해냈고 한 시간이 소요됐다. 그렇게 끝~!! 내고 나머지 팀장님들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됐다. 다 떠나서 나 스스로에게 대견하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잘 해냈다고.
그렇게 거의 3시간 동안의 보고가 끝나고 작년 올해 매출 관련 대표님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나가니까 다들 송년회에 갈 채비를 하며 분주했다. 각자 와인 한 병씩 선물을 받아서 챙겨서는 송년회 장소로 향했다.
송년회는 중국식당을 전체 대관해서 단체석으로 긴 두 테이블을 사용했다. 랜덤 하게 착석했고 나는 처음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했다. 수고한 나에게 기꺼이 와인과 좋은 음식, 시간을 선사해 줬다. 나름 즐거웠고, 빙고 게임 너무 오랜만이라 재밌었다. 무엇보다 내가 부끄럽지 않게 일을 끝내고 난 뒤라 더 달콤했다.
그렇게 송년회를 끝내고 돌아와서 나는 진정한 꿀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