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이제 어른이 될게" - 아빠 육아 생각
EBS 다큐멘터리 '학교란 무엇인가'.
우리 부부는 전체 10부작의 이 긴 콘텐츠를 씸씸이가 잠든 시간에 무거운 눈꺼풀을 이겨내면서 열심히 봤다. (하지만 한 달이 넘은 지금도 아직 다 보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직업을 넘은 소명 의식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하려고 노력하는 학교 선생님들과 우리나라 세 고등학교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준 1, 2부가 나에게는 큰 감동을 주었다. 아마도 한창 예민한 감수성으로 방황하던 나의 지난 사춘기 어린 시절의 모습이 그들에게서 문득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1, 2부 '학교란 무엇인가'에서는 흔한 우리나라의 세 고등학교 교실을 보여주면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이고, 어디까지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해주었다.
소위 '문제학생'이라고 부르는 제자와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주는 교장 선생님, 변변한 사교육은커녕 반 학생들이 생업에 끌려가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한 시골학교 담임교사, 그리고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기술자격증 합격이라는 전환점을 만들어 주고 싶어 노력하는 어느 공업 고등학교 담임교사의 모습까지. 이렇게 세 가지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아이들은 이유를 알기도 전에 이미 치열한 경쟁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나마 그 이유를 스스로 깨달은 아이들은 아픈 자신을 다독이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 나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이미 그 경쟁 속에서 상처를 받고 절뚝거리거나 혹은 낙오하기도 한다.
물론 인류의 역사 자체가 경쟁을 통해 성장해 왔고, 지금의 풍요로움도 그런 성장의 결과물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천천히 가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들과 앞자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경쟁해야 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내 친구가 가진 장점을 인정해주고 조금은 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할 수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길 바란다.
누군가의 말처럼, 상처받은 사람과 상처받지 않은 사람 우리 모두 한 공간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서로가 서로를 밟고 올라서서 과실을 따먹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일등주의 사회'에서 살기보다는, 조금 불편하고 천천히 가더라도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일상의 여유 속에서 행복을 찾는 '살맛 나는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부모인 우리들조차도 그런 이유도 모르는 경쟁 속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을지언정 아이들과 자기 자신을 이미 어디엔가 줄 세우고, 그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우월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그런 정서가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비단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교장 선생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만 치는 한 '문제학생'과 약속을 한다. 다시는 수업 시간에 도망을 가거나 이유 없이 지각을 하지 않겠다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한다. 하지만 매일 아침, 이미 등교 시간이 한참을 지난 시간에도 오지 않는 그 아이를 교장 선생님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무엇이 그 학생과 교장 선생님과의 거리를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멀어지게 만든 것일까? 또 그 아이의 부모는 얼마큼 먼 거리에서 돌아오지 않는 내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렇게 멀어진 거리는 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에도 이렇게 멀었을까? 상처받아 절뚝거리는 아이가 같이 가자고 불렀지만 어른의 걸음으로 먼저 가기 바빠서 그 외침을 듣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남들에 비해 비교적 성격이 급한 편인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와 함께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아이와 나와의 서로 다른 시간' 때문이었다.
하루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고 또 쪼개서 짧은 하루를 그나마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 아빠는 이미 훈련된 어른이다. 하지만 씸씸이는 아직 세상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천천히 관찰하면서 용기를 내어보고, 그러다가 또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해볼 수 있는 그런 '충분히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아이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아빠가 익숙한 '어른의 시간'에 쫓겨서 기다리기가 힘들어질 때도 있다. 그런 성질 급한 아빠지만 오늘도 기다리고 또 기다려본다. 차분한 엄마는 가지고 있지 않은 아빠만의 그것을 씸씸이에게 가르쳐 주고 싶기 때문이다.
빨리 간다고 좋은 것도, 천천히 간다고 나쁜 것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세상에는 자기만의 시간 속에서 충분히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 나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이 걸음에 맞춰서 손 잡고 걸으며 이야기해주고 싶다.
오늘도 유치원 등원 시간에 맞춰서 가보려고 씸씸이와 밀당하는 아침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밥 먹다 말고 인형 장난을 해도, 세수하다가 물장난을 쳐도 기다려주고 싶다. 어른인 아빠와 아이인 씸씸의 시간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도록 오늘은 여유를 갖고 기다려주고 싶다.
지금 기다려주지 않으면 나중에는 훨씬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기에... 교문 앞에서 언제 올지 모를 그 지각 학생을 매일 같이 기다리는 그 교장 선생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