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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지 Jun 15. 2022

집단상담의 빌런을 찾아서 (13)

집단원의 문제행동 13 감정화

지성화가 상대적으로 성숙한 방어기제의 일종이라면 감정화는 유아적인 기제에 속한다. 감정화는 가슴만 있고 머리는 없는 양상으로 인지적 측면에서의 변화 작업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다. 밑 빠진 독과 같이 정서적 지지만을 바란다. 


이런 사람은 감정 탐색과 표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나름 활용하나 자기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내가 나 자신을 잘 돌보아줄 수 있다는 믿음, 스스로에게 기댈 수 있는 방법이 내재되어 있지 않다.


책에는 이러한 집단원의 행동이 고통스러운 사건의 결과인지, 단지 주위 사람들의 동정을 얻기 위한 것인지 파악하라고 나와있다. 극심하게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으면 그렇지 않던 사람도 감정화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동정을 얻기 위한 방식으로 감정화를 사용하고 있다면, 좀 다른 처치가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 안에서는 감정화를 보여주는 집단원의 행동을 수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서로를 위해, 좀 더 내밀하고 안전한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집단상담 내에서도 둘씩 짝을 짓게 하여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게 한다던가, 그의 고통을 인정하고 나서 집단 회기 후에 좀 더 이야기를 나누도록 제의할 수 있다. 


집단 내에서는 수용을 거부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감정을 많이 표출하면서도 그 핵심이 없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문제행동 5 사실적 이야기 늘어놓기로 이어질 수 있고, 다른 집단원의 문제행동 4 일시적 구원을 유발할 수 있다. 


사실적 이야기 늘어놓기는 현재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기보다 과거 사건에 관하여 사실을 두서없이 늘어놓는 행위이다. 듣는 이의 경우, 사건에 대한 당사자의 주관적 감정을 잘 알지 못해 도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집단적 무능감 혹은 무력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시적 구원은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이 어려워 피상적인 지지행위로 다른 집단원의 부적 감정 표현을 가로막는 행위이다. ‘반창고 붙이기’, ‘상처 싸매기’로도 불리는데 진정한 도움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감정화를 보이는 사람은 충분한 정서적 지지를 받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인지적 변화 작업에 대한 지식을 얻으면서 충분히 나아질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정에 대한 이해, 공감, 표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아름답게 보여줄 수도 있다. 


유아적이고, 밑 빠진 독이라고 한 표현이 계속 걸린다. 하지만 현재 그런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 그리고 과거의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괜찮다, 괜찮아.” 따뜻함을 바라고 충분한 지지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밑 빠진 독은 다시 감싸주면 되고, 어린아이에게는 사랑을 듬뿍 주면 된다. 캄캄한 밤하늘이 되어서야 비로소 별이 빛난다. 고독한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자. 당신은 충분히 자신을 안아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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