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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모먼트 Nov 22. 2022

제주도에서 인생 첫 일출 본 이야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속에서 산다는 것


제주에 온 지 4일째 되는 날 여전히 속이 안 좋았던 나는 속이 안 좋은 게 많이 움직이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했고 많이 움직이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간단한 조식을 챙겨 먹고 6시에 30분에 게스트 하우스에서 가장 가까운 사라봉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있던 하르방 벽화 / 등산 초입


천천히 등산을 하는데 옆에서 토끼가 풀을 뜯어먹는 모습이 보였다. 신기해서 조심스럽게 다가가도 토끼는 피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던 토끼


이른 시간이지만 인근 주민들도 꽤 있었는데 토끼도, 주민들도 서로를 신경 쓰지 않았다. 서로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모습이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풍경과 일상이 누군가에겐 흥미로울 수도 있구나.” 


알고 있던 사실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토끼를 보며 조금 쉬다가 정상에 올라갔는데, 정상에 경치가 생각보다 좋았다.


기분 좋게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해가 떠올랐다.


인생 첫 일출


“어…? 해??”


생각지도 못한 일출에 처음엔 기분이 좋기보단 매우 얼떨떨했다.


나는 예전부터 여행을 할 때마다 일출이 보고 싶었는데 항상 실패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일출을 보는 걸 포기했고 제주에서는 일출을 보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계획하지도 않은 일출을 보게 된 것이다.


조금은 황당했고, 이내 좋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일출 보는 거, 타이밍만 맞으면 이렇게 쉬운 거였구나.’


내가 그동안 계획하고 실패한, 혹은 도전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빨리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며 조급해하던 모습들이 일출을 보려고 했던 내 모습에 겹쳐졌다.


“나는 혹시 때가 되면 어련히 손에 넣을 것들을 빨리 얻고 싶은 조바심에 아등바등하고 있는 걸까.”


“원하는 걸 빨리 손에 넣기 위해 애쓰지 않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다 보면 모든 일들이 이 일출처럼 내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나에게 오지 않을까?


조그마한 깨달음이 마음을 울렸다.


사라봉에서 본 바다 뷰


해가 전부 뜬 후 내려가려는데 문득 반대편 길에 눈에 띄었다.


“시간도 많은데 반대편으로 내려가 볼까?”


그렇게 반대편으로 내려가는데 궁도장 표지판이 나왔다. 평소라면 무시하고 지나쳤겠지만 여행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날따라 그 궁도장이 궁금했다. 그래서 궁도장으로 향했다.


궁도장에 도착해보니 두 분의 아저씨들이 계셨고 가볍게 인사 후 둘러봐도 되냐는 허락을 구하고 궁도장 내를 구경했다. 들어가 보니 과녁이 생각보다 더 멀리 있어서 놀랐다.


궁도장 가는 길 / 궁도장 안 모습


안에 강아지가 있었지만 다가가니 짖어서 멀리서 바라만 보고, 아저씨들께 귤을 받아서 나왔다.


제주는 어딜 가나 귤이 있다.


 

그렇게 궁도장을 둘러본 뒤에 다시 하산을 하기 위해 원래의 길로 향하는데, 갑자기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올라가 보니 또 다른 정상이 나왔다.


별도봉 정상


당황해서 지도를 보니 사라봉과 붙어있는 별도봉 정상에 오른 것이었다.


정상을 보고 내려갈 줄 알았는데,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새로운 정상을 만났다.


그 사실이 묘했다.


”정상을 찍고 내려가는 줄 알았는데 또 정상이라니. “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동시에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가벼운 등산에서 조차 정보를 알지 못하면 변수가 이렇게 많은데 아무 정보도 없는 인생은 오죽할까. “


“그래. 너무 마음대로 안된다고 속상해하지 말고, 미래를 알 수 없다고 답답해하지도 말고, 그냥 오늘처럼 눈앞에 보이는 길을 걸어가 보자. 궁도장을 들렸듯 눈에 띄는 길로 가보기도 하고, 그렇게 마음이 끄는 대로 걸어가다 보면 또 이런 좋은 풍경을 만나게 될테니까.“


사라봉이 오르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 후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니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그림을 그리려다 피곤해서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근무 시간 직전까지 잠들었다.


그렇게, 짧은 여행은 끝났다.


이날 이후로 속은 완전히 회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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