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 번 더 할 수 있을 때 표현하기
표현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부부의 날 특집이었나, 90대 노부부가 커플 한복을 입고 나와서 오래도록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힘을 다해 입을 떼시면서도 행복한 표정으로 "남자가 잘하면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90대의 노부부가 숨이 벅차더라도 즐겁게 대화하고, 느린 걸음이지만 함께 산책도 한다면 사람들은 "정정하시다"라고 표현한다.
50대의 중년 부부가 아닌 90대의 노부부를 인터뷰한다는 것은 90대의 노부부가 더 흔치 않은 케이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90이 되도록 배우자와 함께 걷고, 손잡고,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 일인 동시에 흔치 않은 일인가. 문득 나는 내 아내와 얼마나 오래도록 사랑하고 표현하며 살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버지는 40이 되면 노안이 시작되어 책을 읽기 불편하니, 30대까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눈이 불편해지면 읽는 것은 물론, 쓰는 것 역시 불편해질 것이다. 나는 결혼 전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말로 하기엔 낯 간지러운 표현들도 글로 써내면 괜한 감동이 되어,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깊은 표현들과 속 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한 뒤로는 나만의 공간이 없을 뿐 아니라 몰래 쓸 시간이 없어 자주 쓰지 못했지만 편지를 쓰는 것 역시 언젠가 힘들고 불편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지금부터라도 손에 힘이 없어지기 전까지 부지런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외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집을 떠날 때면 옛날 사람 답지 않게 "권혁준 사랑해"라고 말씀하시며 꼭 안아주시곤 했다. 키가 큰 할아버지가 그렇게 안아주시고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해주시던 것이 나는 참 좋았다. 나도 언젠가 자녀가 생기면 그렇게 이름을 불러주며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사랑 표현을 아끼지 않으시던 할아버지는 70 중반을 넘기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족히 20년은 더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던 할아버지의 사랑 표현을 그렇게 빠르게 듣지 못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랑을 표현하고 받을 수 있는 것도 기회가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기회는 여느 기회와 마찬가지로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을.
나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 감사한 일이다. 편지를 쓸 수 있을 때 한 장이라도 더 쓰는 것, 말할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표현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감사하게 잘 활용하는 길이 아닐까. 피곤하고, 낯 간지럽고, 내일 해도 될 것 같은 마음에 미루는 표현들은 결국 닿지 못하고 후회로 남겨질 뿐이니까.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다. 브런치에 내 소소한 감정들을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감사한 일이다. 90대 노부부를 보며 문득 느낀 표현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과, 이 기회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잘 기억하며 하루하루 부지런히 기록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표현하는 일들을 미루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