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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뭄씨 Jun 06. 2023

10년 차 맞벌이 부부가 '캐릭터 도시락' 싸는 법

초보 가사노동 부부의 우당탕탕 첫 도시락 


 


 “우와, 리락쿠마가 있어!”

  “이건 미니언즈야.”     


  서른 중반의 부부가 목소리를 높여가며 캐릭터 이름을 외쳐댄 까닭은 ‘덕질’이나, TV 만화영화를 즐기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 캐릭터를 대면한 곳은 뜻밖에 ‘키즈노트’ 앨범 속 현장학습 사진 속. 한바탕 야외학습을 마친 스무 명 남짓 아이들이 벤치에 둘러앉아 두 볼이 빵빵하게 도시락을 먹고 있는 사진들이었습니다. 땀에 젖은 머리, 친구와 함께 장난기 넘치는 표정, 젓가락질에 집중하는 표정, 동심이 와글대는 이 행복한 사진첩에서 우리 부부는 세상을 온몸으로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에 대한 대견함, 어린 유년기의 소풍에 대한 추억 등 낭만을 읽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한 건 오로지, 하나. 아이들의 화려한 캐릭터 도시락! 휘황찬란하고 다채로운 캐릭터가 테이블 위를 잔뜩 수놓고 있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다정하고 충만한 도시락 속 캐릭터들이 그렇게 섬뜩하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 사진의 지평선 너머로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서 짜낸 부모님들의 수고스러움 원액, 그리고 우리 뱁새부부가 절대 따라가지 못할 그들의 황새 요리실력이 읽히더군요. 오래전부터 계획한 가족여행 일정으로 부득이 결석을 하지 않았더라면, 딸은 이 현장학습에서 가장 초라한 도시락을 펼쳐 들고 있었을 테지... 남편과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피할 수도 없는 법. 이내 우리 부부는 도시락을 싸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청명하고 맑은 제주의 5월을 맞이하여 의욕적인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딸기수확 농촌체험’을 기획한 까닭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호기심, 농업 농촌에 대한 감사함을 키워주시려는 좋은 취지였지만, ‘준비물: 도시락’이라는 안내문은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도시락 자체를 싸본 적 없는 초보 가사노동 부부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왔으며, 그 좋은 취지가 무색하게 공연히 밉살맞게 느껴졌습니다.     



  ‘배우고 때맞춰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공자는 현대 평생 배움의 시대에나 유용할 말을 몇 천 년 앞서서 설파하셨습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인생 2 모작을 위한 평생교육기관이 4,541곳, 프로그램은 28만 1,420개에 달한다고 하네요. 이처럼 많은 수많은 이들이 생소한 분야를 받아들이고 두려움 없이 배움에 뛰어들고 있는 세상입니다. 맞벌이 10년 차, 그간 외식과 밀키트, 친정과 시댁에서 보내주는 반찬으로 연명하는 삶을 살았지만, 까짓 거 우리도 ‘요리’와 ‘도시락’이라는 세계를 못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캐릭터 도시락 쓰기 플랜’에 돌입했습니다. 애초에 프로 주부님, 그녀들의 화려한 스킬 앞에 주름잡을 생각 없습니다. 그저, 성의표출. 초라하지 않게 딸이 식사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① 요리 실력에 비례하는 도시락 크기

  도시락 크기는 우리 능력에 맞게 작은 걸로 준비했습니다. 마트를 한번 둘러보니 2단짜리 보온 도시락 통이 크기가 적당합니다. 벌써 든든하네요. 보온이라는 기능성에 주력했다는 핑계로 채울 요리 실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커버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공간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칸막이 역할을 할 반찬 담는 종이 필수입니다.    


  ② 메뉴전략 1: 간편 식품은 내 친구, 단! 모양을 신경 쓸 것

  색상은 과일이 담당할 것이니, 우리는 간단하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쁘띠 식품’ 위주로 구매하자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를테면 김밥은 번잡스러운 준비과정에 고급스킬을 요하므로, ‘후리카케의 힘을 빌린 형형색색의 주먹밥으로 한다’라는 식이지요.

  클래식은 영원하다. 어린 시절 사랑받았던 스테디셀러인 ‘문어소시지’는 여전히 ‘진리’였습니다. 지난 키즈노트 앨범 속 어머님들의 작품들을 벤치마킹해 보니, 문어 소시지는 여전히 도시락 한 편을 늠름하게 장식하는 ‘믿을 구석’이었습니다. 맛도 있고, 모양도 재미나고, 색감도 화려한 3위 일체가 완벽하거든요. 그 외에 치킨너겟도 모양이 예쁜 것, 독특한 것으로 골라 나름 도시락에 신경을 썼다는 인상을 남기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슴슴하다, ‘야심작 한방’이 필요합니다.     


  ③ 메뉴전략 2: 포인트 메뉴는 블로그 고수 주부님께 따로 배우기

  ‘꿀벌모양 계란말이’가 채택되었습니다. 손가락으로 파워블로그를 들락거리며 심도 깊은 자료조사를 한 후 내린 결론입니다. 딸아이의 입맛에 맞고, 내 능력이 되고, 도구가 많이 필요 없지만 캐릭터 도시락에 걸맞은 ‘포인트’가 되어줄 최상의 메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실전이다! 하루 전날, 계란말이 만드는 법을 예습하고, 김을 동그랗게 자르고 장식하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모의시험도 감행했습니다. 의외로 눈과 꿀벌 줄무늬 모양을 내어 자른 김이 계란말이에 잘 붙지 않더라고요. 고민 끝에, ‘참기름’을 풀처럼 활용해 ‘착붙’ 되도록 하는 노하우도 습득했습니다.      


  드디어 현장학습 당일, 아침 6시. 

  북한미사일 발사로 전국이 떠들썩하던 상황. 우리 집안은 국가 안보상황과 무관하게 ‘꿀벌말이 대작전’을 수행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배운 대로 약불로 계란말이를 돌돌 말 때는 가슴이 두 방망이질 해댔습니다. 종이공예를 하듯 김을 오리고 붙이고 했는데, 야무지지 못한 손끝 덕분에 싱크대 위에 덕지덕지 김천지입니다. 이제, 화룡점정. 케첩으로 꿀벌의 연지곤지를 찍어내는 동안 남편도 옆에서 장인의 손길에 빙의하여 주먹밥을 동그랗게 빚어내고 있습니다. 

  주먹밥, 계란말이, 문어소시지, 치킨너겟, 과일(바나나, 귤)이 도시락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초록색 색감이 부족해 마지막엔 급하게 시금치를 삶아서 여기저기 빈자리에 구겨 넣어주었습니다. 브로콜리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초보 부부는 데코까지 챙길 정도로의 내공은 부족했던 탓입니다. 다음엔 꼭 장바구니에 넣어야 할까 봐요. 당근을 하트모양으로 오려 밥 위에 살포시 얹어 놓으니 나름 완벽합니다. 

  그렇게, 행정안전부에서 서울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를 정정하는 문자를 보낼 즈음 우리 부부의 실전 합동 도시락 싸기 훈련은 끝이 났습니다. 서투른 정성을 담아냈으니, 부디 잘 먹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보냈습니다.      


 

 그날 저녁, 띠링! 키즈노트 앨범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 현장학습 사진입니다. 본말이 전도된 것 같지만, 딸아이가 딸기를 얼마나 재미나게 땄는지는 조금 이따 확인하기로 하고 도시락 먹는 사진을 황급히 찾아봅니다.  

    

  ‘달팽이 무엇!’, ‘우와, 포켓몬이잖아!’

  ‘곰돌이 김밥도 진짜 대단하시다’ 


  역시 우리 어린이집 금손 어머님들의 솜씨는 혀를 내두릅니다. 행여, 우리 꿀벌말이 도시락이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져 우습게 보이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구석에 딸내미의 모습이 보입니다. 딸아이가 도시락을 당당히 앞에 두고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네요. 다행스럽게도 시무룩해 보이거나 울상인 표정이 아닙니다. 물론, 다른 도시락들에 비해 소박한 감은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적어도 부끄러운 도시락으로 인해 딸기수확 농촌체험을 망치진 않은 것 같아 퍽이나 마음이 놓였습니다. 멋진 도시락을 펼쳐 든 다른 아이는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어깨도 으쓱해 보입니다만, 초보 부모가 싼 도시락을 앞에 두고 당당하게 오물거리는 딸내미에게 고마워졌습니다. 캐릭터 도시락의 완성은 딸아이의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다음엔, 진짜 우리가 제대로 기 살려줄게!’ 

  다짐하며, ‘김펀치 메이커’, ‘곰돌이 주먹밥 틀 펀치세트’ 등을 쇼핑 앱 장바구니에 넣어봅니다.  실력도 장비빨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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